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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
[시론/서해성] 자승, 제곱으로 남긴 업장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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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02  17:26:25
수정 2023.12.02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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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自乘은 제곱이다. 저를 스스로 곱한 게 제곱이다. 자비를 곱한다는 이름을 가진 이도 있다. 승려 자승慈乘이다. 그가 스스로 죽었다. 절집을 태워 제 몸도 함께 살랐다. 삭발도 목욕도 없이 승려로서 세상 인연을 가혹하게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승려, 불자뿐 아니라 그 소식을 듣는 귀와 눈을 가진 사람들을 송두리째 참혹하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택한 죽음에서 어느 것 하나 좋은 기별이 들려오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죽음은 죽음마저 탐욕이고 권력일 때가 있다. 죽음에 겸손이 없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다. 놀랍게도 그의 죽음은 무언가 과시하는 형세다. 두루 알다시피 살아서 세속 권력자보다 못하지 않는 권력을 탐하더니 죽는 행위에서도 도반들과 세상을 고려한 구석이 전혀 없다. 자기 죽음이 이 세상에 충격과 상처로 전달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이러한 일을 자행했다. 한 생명이 끝을 맞는 일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지만 천하 권세에 올라타 만복을 향유하던 승려의 죽음으로서는 혀끝이 갈라지도록 퍼붓는 대중의 매리잡언을 들어도 서운하다고 할 게 없다. 이러한 항간 인심과는 달리 정작 절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다.

우선 절집에서는 그가 함부로 남기고 간 업장을 조금이라도 소멸케 하기 위해서는 소신공양燒身供養 운운하는 말부터 고쳐 잡아야 한다. 소신이란 생명을 지닌 자로서 이루지 못할 뜻이 있을 때 이를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약한 자의 마지막 실천일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종교 이전에 온전하지 못한 그릇된 생명관이다. 이마저도 힘없는 타인을 위하고, 공동체를 구하고자 할 때 가까스로 명분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승려 자승의 죽음 안팎에 대중을 도탄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뜻이나 오묘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제 몸에 불을 붙여 생명을 거두는 행위는 적어도 권세를 누린 자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스스로 몸을 태우기에 앞서 절집들을 마구니 소굴로 만들고 주무르던 돈을 바쳤는가, 누리던 권력을 사부대중에게 돌려주었는가. 어떤 연유로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알 길도 없다. 이렇게 해서는 업장 소멸은커녕 저승길에 참혹한 광경과 지탄의 말이 더 두껍게 쌓일 뿐이다. 이것이 어찌 니르바나(열반)의 세계이겠는가.

한 생을 살면서 그는 수행자로서 본분보다는 집요하게 권력과 권력 사이에 거처하다가 이내 절집 최고 권력을 양손에 쥐고 현실 정치에까지 개입하면서 불교 퇴행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이름을 얻은 이래 하루도 권력 아닌 적이 없었다. 세상과 인연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그는 이를 성찰하는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편가름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서도 삶과 죽음의 도리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여러 사람에게 두루 남겼다는 마지막 말에도 성찰보다는 부하들에게 하듯 지시와 의무를 적시해놓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수행자가 아니라 권력자로서 언행이 지배하고 있다.

자승은 절집을 불싸지르고 자신을 태웠다. 이는 도량을 방화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런 죽음의 언어도, 이토록 단말마 같은 죽음의 행위도 일찍이 듣지 못했다. 생명과 죽음을 차별하고자 하는 뜻은 조금도 없지만 이처럼 반상식, 반생명, 반불성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파괴에 바탕을 둔 죽음은 한 치도 옹호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게 만약 소신공양이라고 한다면 절박한 경우에 이를 따라해도 좋다는 말과 같다. 절집 권력은 이 죽음을 미화하는 언설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첫 번째 자세다. 이러한 파탄 앞에 종교집단이 성찰이 아닌 다른 말을 꾸미는 것은 이 죽음을 다시 권력화하여 재구성하는 일이자 대중에게 저지르는 커다란 죄다.

   
▲ 서해성 작가

승려 자승은 자기 이름이 뜻하는 자비를 곱하기는커녕 불교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제곱하는 가해를 하고 떠나갔다. 기운 옷과 구멍난 발우를 전수하지는 못할망정 무책임하게도 짊어지기 어려운 짐을 세상에 떠넘기고 가버린 것이다. 불에 탄 절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겠지만 사람들 가슴에 저지른 모진 행위는 다비를 치러도 불에 다 타지 않은 채 이 세상에 먼지가 되어 오래 떠돌 터이다. 업장이 제곱으로 남은 끔찍한 죽음이다. 절집 사람들에게서 화두를 타파하듯 성찰 언어가 터져나오길 깊이 비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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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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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민호 2023-12-05 21:44:44

    누군가는 꼭 말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글을 보고
    가슴한켠에 있던,무거움이 좀가벼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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