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과 기초의원(시·군·구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여부가 정치권 쟁점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정당 공천을 없애 지방자치가 확대되는 장점도 있지만 돈과 조직망을 앞세운 지역 토호들의 ‘유전당선’이 득세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야의 정치적 셈법도 달라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2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기초의회 및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기초공천제) 폐지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학용 의원은 총회가 끝난 후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지키는 게 맞지만 위헌 시비가 있고 효과도 없는데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단순히 공약만 지키는 것은 공당으로서 옳지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공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국민에 이해를 구하고 당에서 필요하다면 사과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이 같은 결정은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기초 선거 정당 공천을 폐지하면 인지도가 높은 현역 단체장이 유리해지는데 현재 기초단체장의 60% 정도가 야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당 이재오 의원 등은 “기초공천제 폐지는 여야 합의가 어렵고 여러 부작용도 있지만, 정치불신을 해소하는 원천적 책임은 여당에 있는 것이니 여당이 약속한 대로 기초공천제를 없애야 한다. 그게 국민들에게 여당이 해야 할 책무”라며 당의 결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김용태 의원도 24일 오전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들한테 대통령 선거 때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지금 뒤집는 얘기이고 공천을 한다는 말은 솔직히 정당 공천은 국회의원이 기초의원들을 공천한다는 뜻”이라며 “지금 공천해 달라고 줄을 섰다. 기초단체장 뿐만 아니라 기초의원들이 사람을 살지 못할 정도로 수십 명이 와서 공천해 달라고 괴롭힌다” 반대했다. 기초선고 정당공천제 폐지를 두고 여당 내부 잡음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특히 새누리당의 기초공천제 폐지를 ‘박 대통령 공약 파기’로 규정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민주당 한정애 대변인은 23일 “새누리당은 이번 의총을 통해 사실상 정당공천을 유지하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정개특위에 위임한다는데, 정개특위가 과연 어떻게 논의할지 너무나 뻔하다”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이어 “기초고천제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공약 사기”로 규정하고, 의원총회와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들과 함께 규탄대회를 여는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김한길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 24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 등 정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할 예정이어서 향후 이 문제를 두고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지난 7일 국회 정치개혁특위 개최한 지방자치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신여대 정연주 교수는 ‘정당 책임주의’를 강조하며 기초공천제폐지를 반대했다. 그는 “정당을 특정 선거에서 강제로 배제하는 것은 정당의 자유와 기능 등 정당 민주주의와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는 “정당공천은 여성 등 정치적 소수자와 신인의 의회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며 “정당공천 비리는 주민소환제 강화, 의정감시활동 활성화 등 사후관리제도로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기초공천제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정당공천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기초선거 공천권을 중앙당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어,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에게 돈을 주거나 서로 충성도 경쟁을 하는 등 공천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정당공천을 하면 중앙정치의 현안 때문에 지방자치의 생활정치 의제가 가려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역주의와 정당공천이 결합돼, 영호남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특정정당으로 100% 당선되는 일당지배가 계속된다. 이러면 지역에서 혁신역량도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정당공천 폐지에 내포된 위헌요소의 대안으로 ‘정당표방제’를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자유롭게 출마하되, 정당 이력을 표시하도록 해 유권자의 판단을 돕자는 것이다. 또한 여성 몫의 공천이 가능하던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여성의 기초의원 진출이 제한되는 문제의 보완책으로, ‘여성명부제’도 함께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