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故 채명신(예비역 중장)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27일 고인의 뜻을 받아들여 그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했다.

고인은 별세하기 전 유족에게 사병 묘역에 묻히길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연합뉴스>에 “사령관님이 평소 ‘장군 묘역에 안 간다. 월남전(베트남전) 전우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사후에 이들과 서울 동작동에 같이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처음에 장군이 사병묘역에 안장된 전례가 없어 난색을 표명했다. 현재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르면 군인과 군무원의 묘역을 ‘장군 묘역’, ‘장교 묘역’, ‘사병 묘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의 부인 문정인 씨가 남편의 유언을 받아들여 달라는 취지로 청와대에 편지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런 사연을 전해 듣고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고인의 유언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는 28일 서울현충원에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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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 당시 “100명의 베트공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등 베트남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한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채 전 사령관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를 졸업하고 이듬해 6·25 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다. 1953년에는 미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0년 5.16 쿠데타에 참여해 혁명 5인위원회 멤버로 선임됐으며, 그해 7월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면서 국가재건최고회의 감찰위원장으로 발탁됐다. 

1965년에는 주월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했고 그해 중장으로 예편했다.

당시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에게 집권연장의 뜻을 보이고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신의(信義)가 정치인의 생명이라며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인사 불이익을 받고 대장 진급에서 탈락했으며 1972년 6월 1일 제2군사령관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한편 故 채명신 장군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에) 베트남전에 관심이 있어 그의 전기를 읽어봤다”며 “초기에 빨리 베트남전의 성격을 파악해 ‘이 전쟁은 지는 전쟁이다’라는 것을 알아채고 아군 희생을 줄이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띄었다. 공명심 넘치는 지휘관이었다면 우리의 희생이 훨씬 커졌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채 전 사령관이) 두코 전투와 짜빈동 전투를 통해 현대전에 ‘중대 전술기지’ 개념을 정립한 점은 군사학적으로 최대 공적”이라며 “정글의 여우처럼 돈 되는 거점을 잘 파악하고 확보해 베트남전을 경제적으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고 기자는 “하지만 생전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점은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서해성 교수(@jiksseol)도 트위터에 “채명신. 사병 묘역에 묻히기로 한 그는 죽어서 진짜 장군이 되었다. 죽음에는 계급이 없다”며 “친일파가 묻혀 있는 일과 함께 국립묘지의 비애는 죽음의 서열에 있었다. 그의 죽음에 거수경례를 올려 붙인다”고 고인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