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예술대학 학생들이 교육부에 예술대학의 취업률 평가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1만여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학생들은 문화예술계는 보통 교육부가 제시하는 취업기준인 ‘4대 보험’ 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관련 학과가 폐지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11일 오후 전국의 예술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예술계열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는 교육부 앞에서 “예술대학 취업률 평가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대학에 재학 중인 1만명의 학생으로부터 받은 서명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이들은 “예술학과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배움을 추구해야하는 대학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수학문을 폐지하는 것은 심각한 정체성 상실을 의미한다”며 “정부와 교과부의 대학평가 취업률 평가 지표로 인한 줄 세우기식 구조조정은 학문의 다양성을 파괴한다.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 예술학과의 폐지는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술학과의 폐지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달에도 청주대 회화학과가 갑작스럽게 폐지돼 논란이 일었었고, 경남대에서는 3년 전 유보했던 철학과 폐지를 다시 추진하는 등 최근 예술대의 ‘취업률’로 인한 구조조정 및 학과 폐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평가기준에 따르면, 재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은 각각 30%와 2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정부의 대학평가에서 부실대학으로 선정되지 않기 위해 평가지표에 부합하지 않는 학과를 폐지하는 등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 연석회의는 “정부와 교과부는 예술관련 학과의 취업률 평가지표를 완전히 폐기하고 지금의 대학교육 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며 “미래의 예술인이 될 예술관련 학과 학생들이 더 이상 정부와 교과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 지난달 22일 청주대 회화학과 학생들이 학과 폐지를 반대한다는 플랜카드를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 김서희

연석회의 소속 학생들은 기자회견 후 1만479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이 서명에서 한 영화학과 학생은 “대학이 배움의 터가 아닌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에 반대합니다”라며 “취업률이 낮다고 폐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 전공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에 머리를 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마디를 남겼다.

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세계 어느 나라도 예술을 취업률로 따지지 않습니다”라고 일침을 날렸고, 이 밖에도 “예술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존재의 가치를 떠나 어딘가에 소속 될 수 없습니다”(10학번·공대), “학문과 예술을 ‘실용’의 잣대로 훼손시키는 것은 인간정신에 대한 적나라한 폭력이다”(10학번·법대),

“취업을 하려면 취업학교에 갔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우러 온 것이지 대학교의 위상을 높이러 온 것이 아닙니다”(12학번·서양화학과), “고흐가, 앤디워홀이 취직하던가?”(08학번·서양화과) 등의 글들을 남겼다.

예술대학의 ‘취업률’ 지표 논란은 폐과 문제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도 ‘실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예술대학의 한 교수는 ‘go발뉴스’에 “취업률이 낮은 과는 늘 본부에서 압박이 들어온다”며 “취업률로 학과의 지원 예산 등이 결정되기에 (본부) 눈치 보는 게 어렵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조교로 근무 중인 한 대학원생은 ‘go발뉴스’에 “교수님들이 매년 졸업·입학 시즌이 다가오면 취업 여부에 늘 매달린다”며 “오죽하면 부모님이 가게를 하신다고 하면 자영업이라고 적으라고 시키겠나”며 예술대학의 취업률 지표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