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초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하는 신한민보新韓民報에 이런 해화諧畵가 실렸다. ‘해화’는 오늘날 일본어를 빌려와 쓰고 있는 ‘만화’를 한국인들이 처음 사용한 낱말이다. 인쇄 상태가 선명한 신한민보를 접근할 수 없어서 해화에 나오는 한자를 다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뜻을 헤아리는 데는 그닥 지장이 없다. 이 해화는 한국어, 한국문화권에서 사실상 ‘만화’, ‘만평’ 따위의 기원이라고 봐도 좋다. 

제목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한국 사람의 생각’. 이는 일본 만화잡지 Tokyo Puck(東京パック)에 실린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일본 사람의 생각’에 반박하는 해화다. 해화이므로 그림부터 살펴보는 게 맞다.

권총에는 ‘김척金尺’ 글자와 총열을 따라 눈금자, 손잡이에는 태극문양과 대한제국 이화李花문장이 박혀 있다. ‘金尺’은 해화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이자 금척이다. 황금 잣대는 금척설화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역사의 정통성과 불변의 기준, 곧 정의를 뜻한다. 육혈포(6연발 리벌버 단총) 연기 속에는 ‘봉봉봉’을 써넣었다. 총구에서 연기는 봉봉봉 나오고 총소리는 탕탕탕탕탕 들린다. 총소리를 ‘탕탕’으로 표현한 첫 기록 또한 이 해화로 알고 있다. 이전 기록은 찾질 못했다. 해화인지라 의성어는 필수라고 하겠다.

한반도 지도를 드리운 몸통에는 ‘삼천리’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 뒤집힌 모양은 분노를 뜻할 게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묘지 앞에 세우는 비목이다. 한자로 ‘천도 공법 天道 公㳒’이라고 했고 죽은 자의 이름을 표기하는 곳에는 ‘종판’(끝판)이라고 써넣었다. 이는 하늘 도리와 만국 공법에 따라 일제 침략을 끝장내고 만국공법을 무시하고 망나니 노릇을 하는 ‘종판’인 욱일을 처치하고 묘비를 세운다는 뜻이다. 법을 나타내는 법㳒자는 부러 고어를 사용했다. 예로부터 그렇다는 뜻이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쓴 ‘신한기’는 신한이 세웠다는 주체를 밝혀 놓았다. ‘신한’은 신한민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한국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총을 맞고 있는 얼굴은 해 모양인데 오른쪽 관자놀이와 코에 ‘욱일旭日’을 써넣었다. 손에는 지팡이와 망치를 들고 있다. 지팡이에는 ‘전법戰法’이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걸로 사람을 두들겨 팬다는 의미일 게다. 망치에 있는 글자는 판독하지 못했으나 망치가 폭력을 뜻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력 좋은 이들이 글자를 함께 밝혀냈으면 한다. 오른발 나막신 굽에는 한자로 ‘철도’, 왼발에는 ‘외교’라고 되어 있다. 외교라는 형식과 철도를 타고 침략해 왔다는 말이다. 완장에는 ‘한韓’, 목에는 광산을 뜻하는 ‘광鑛(?)’이 보인다. 일제는 한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있었다. 외투 엉덩이쪽에는 ‘0정부庭部’라는 글씨가 있는데 알아보기 어렵다.

해화의 말풍선은 이렇다. 욱일을 아이로 표현하고 말투 또한 그렇다. 욕심만 많은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렷다. 요새 말로 바꾸어 읽는다. 

욱일. “먹을수록 맛이가 좋아 나머지 마저 주구려.” 
금척. “옛다 자 받아라. 하나 둘 셋 넷 탕탕탕탕탕.” 

아랫동을 벌거벗고 저 나막신짝을 짤짤 끌고 다니는 아이가 우리의 잠 자는 틈을 타서 마음대로 다 빼앗아 갔지마는 동방예의지국의 충효가 겸전한 우리 부여족이 한번 눈 뜨고 일어서는 날에는 내종 결국은 천리 공도에 마땅히 이러할지니라. 

한국인들 사이에 반反욱일은 이렇게 등장했다. 미국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그해 1909년 초 미주 공립협회와 하와이 한인합성협회를 통합하여 국민회가 출범했다. 한 해 전 장인환과 전명운이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D.W.를 처단한 것이 계기였다. 신한민보도 이 과정에서 발행된 것이다. 이 의거에는 이강을 비롯한 몇몇 기획자가 있었다. 이강은 이 경험을 가지고 해삼위(블라디보스톡)로 건너갔다. 이는 안중근 의거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달포 뒤에 안중근 의거가 일어났다. 

이 해화諧畵는 그저 그림으로 나타낸 감정 표현만은 아니었다. 일제의 한국 지배가 정당하다는 스티븐스나 침략자 거두인 이토 히로부미 따위는 제거할 수 있다는 의기가 함께 깃들어 있는 작업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욱일’을 대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탄생했다. 

▲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이 지난 6일 오전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에서 실시됐다. 우리 해군도 최신예 군수지원함 소양함을 파견했다. 사진은 소양함에 오른 우리 해군이 일본 이즈모함을 향해 거수 경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일본 방위성 해상자위대 유튜브 공식 채널 생중계 갈무리/뉴시스>

며칠 전 한국 해군들이 ‘욱일’ 일본 군함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한국 군인들이 이 전통을 알았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지 의문이다. 군인들에게 군사기술만 가르치는 건 그들을 단지 도구화하는 일이다. 우리 청년들이 군복을 입을 때는 무엇을 위해 훈련하고 연합하고 싸우는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 ‘욱일’을 대하는 기원, 해화나 해평諧評의 기원을 알려주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그걸 알게끔 하는 건 이 민족과 국가와 사회의 의무다. 이 참에 ‘만화’를 ‘해화’로, ‘만평’을 ‘해평’으로 바꿔 부르고 싶은 게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정명正名, 존재를 규정하는 바른 이름은 단지 뜻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어떤 내력에서 나왔느냐에 달려 있다. 

▲ 서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