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이용객들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습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일본 일당 정권을 장기간에 걸쳐 장악해온 아베 신조 安部晋三 전 총리 대신이 거리 유세 도중 사제 총기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일본 재무장 노선을 추구해온 그를 조악한 무기로 백주에 암살한 건 오래 전 해상 자위대 자위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였다. 암살자는 간사이関西지방 미에三重현 출신으로 나라奈良시에 살고 있었다.

일본 총리가 암살당한 것은 이전에도 두 번 있었다. ‘평화외교’를 내걸고 활동했던 제27대 총리 하마구치 오사치 濱口 雄幸가 1930년 도쿄역에서 극우 청년 사고야 도메오佐郷屋留雄가 쏜 총에 맞아 1년 뒤 사망했다. 사고야는 길림성에서 태어나 충청도 대전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현양사玄洋社 계열의 극우단체 맹원이었다. 하마구치 총리는 대공황시기인 1929년 취임해서 빈사 직전 일본을 가까스로 끌어가고 있었다. 이때 ‘평화’란 전쟁을 결단코 반대한다기보다 국제적 긴장 상태를 당장은 평화 태세로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미국보다 앞서 일본에서 금융 공황이 터진 게 1927년이었다. 시중 은행 10%가 쓰러졌고, 일본, 타이완, 조선 사람들을 곧 ‘窮民궁민’으로 전락 케 한 쇼와昭和 금융 공황이다. 공황을 예고하는 몇몇 양태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전쟁물자 수출 등으로 찾아온 호경기 거품이 꺼져내리면서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1927년 봄 공황에 대한 불안이 대중 사이에 유포되면서 현금 인출 사태가 터지자 일본은행은 지폐 뒷면을 미처 인쇄하지 못한 우라지로裏白(‘속이 하얗다’)까지 찍어댔다. 돈이 사쿠라 꽃잎처럼 그 해 봄 바람에 높은 물가 속을 날아다녔다. 제25대 총리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郞 내각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주군벌 장쭤린張作霖 폭살 사건이 일어난 건 1928년이었다. 주동자들을 벌하고자 하는 제26대 총리 다나카 기이치田中 義一 내각의 뜻은 일본 육군의 저지로 이뤄지지 못했다. 군부 힘 때문에 최소한의 국제적 신뢰조차 지킬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군인들이 정치를 누르는 위치로 빠르게 올라서고 있었다.

만주 침략과 중일전쟁, 진주만 공격으로 전개되는 일제의 군사행동 배후에는 일본 국민들이 있었다. 공황이 닥쳐오자 일본인들은 전쟁으로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군부를 지지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성공’이 그들 뇌리에 박혀 있었다. 워싱턴 군축회의, 이를 재확인한 런던군축회의 등을 통해 일본 군비 확장을 막고 있는 미국을 향한 반미감정은 극점으로 치달아갔다. 일본 제국 국민들은 총리와 내각에 ‘굴욕외교’ 책임을 묻고 있었다.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빠르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암살은 1932년에 일어났다. 제29대 총리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를 관저에서 쏜 건 해군장교와 육군 사관생도들이었다. 이를 5.15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누카이가 방일 중이던 배우 찰리 채플린을 관저로 초청했다는 것을 알고 군인들은 그를 함께 죽여 미국과 갈등을 증폭시키고자 했다. 그날 채플린은 튀김을 먹다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을 처형하지 말고 석방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한 일본인이 35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암살 가담자들은 행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1931년 만주사변은 관동군이 일으킨 사건이다. 이누카이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힘으로 통제권을 벗어나고 있는 군부를 제어하고자 하다가 제거되었다. 이누카이는 이봉창 의사 의거로 총리 직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결국 군국주의를 요구하는 극우 군인들 손에 목숨을 잃었다. 짧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사실상 이날 끝났다.

만주사변이 침략이라는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자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서슴없이 탈퇴했다.(1933년) 곧 군축 조약을 전면 폐기하고 해군력 증강 등으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2.26사건이 터졌다.(1936년) 일왕 덴노가 친정하는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여기에 연루되었던 장교들이 주로 배치된 곳이 만주, 곧 관동군이었다. 한국 정치군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쿠데타의 기원이 여기에 닿아 있다.

총리를 두 번 암살하면서 일제는 군국주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이 진짜 암살한 것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부르는 정당 중심의 허약한 민주체제였다. 이후 전개된 군국주의는 공황으로 침체되어 있던 일본 국민들의 동의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쿄대학 법학과 저명한 교수들까지 나서서 덴노의 통치, 조선에 이은 만주와 중국 침략이 합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판이었다. 이들이 바로 법비法匪들이었다. 군부와 대중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광기는 헌정 체제를 붕괴시키고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성을 무참히 유린하는 씨앗이 되어 퍼져나갔다.

정치인 아베 신조가 이루고자 한 필생의 목표는 큐조(日本国憲法 第9条 니혼코쿠켄포 다이큐조)를 바꾸는 개헌이었다. 아베의 행보는 앞서 암살된 두 총리보다는 암살 세력들이 추종했던 노선과 더 가깝다고 보는 게 틀린 말만은 아닐 게다. 그런 점에서 총리 암살이라고 할지라도 둘은 성격이 서로 다르다.

▲ 서해성 작가

세 번째 총리 암살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어설픈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떤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일본인과 주변국 사람들의 자세다. 암살이라는 폭력을 규탄하고 추방하는 중심 가치는 다른 데가 아니라 일본 평화헌법에서 찾아야 한다. 한낱 사제 무기가 큐조(9조)를 찢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큐조는 오래도록 일본을 발전시키고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지렛대 구실을 해왔다. 이 가치를 재창조해내는 게 아베의 명복을 진정으로 비는 길이다. 비폭력과 평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