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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
[시론/서해성] 글씨는 곧 시대정신이다새싹체를 읽어내기 위한 내력.. ‘봉초’ 이상호 전시를 보고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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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8  07:44:08
수정 2022.06.18  09: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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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서법이 있고 일본에는 서도가 있고 한국에는 서예가 있다. 서예라는 말은 광복 뒤 손재형이 일본 용어인 서도를 벗어버리고자 붙인 이름이다. 그는 김정희 세한도를 일본에서 가져온 사람이기도 하다. 일본은 칼 쓰는 걸 검도, 차 마시는 걸 차도라고 하듯 흔히 ‘도’자를 를 붙인다. 예로부터 우리네는 검술·궁술·기마·택견·한 발로만 뛰는 앙감질·헤엄 따위를 닦는 일을 무예라고 하였으니 남산 북쪽 기슭에 있는 무예를 수련하던 자리가 예장(동)이다. ‘법’, ‘도’, ‘예’ 셋 중 무예, 서예라는 말이 가장 멋스럽다고 해야 하겠다. 

글씨는 그저 솜씨만은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붓글씨는 일찍부터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걸 넘어 가치를 나타내왔다. 글에 담긴 뜻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삶과 얼을 두루 반영하는 게 붓글씨다. 그러므로 잘 쓴 글씨란 솜씨와 함께 그 사람의 생이 먹으로 녹아 스며야 한다. 언제든 솜씨가 없으면 글씨에 미치지 못하지만 얼이 없는 글씨는 또한 글씨가 못 되고 만다.

글씨는 그림과는 다르다. 글씨는 말 그대로 뜻을 나타내는 기호이므로 글씨를 쓴 사람을 빼고 말할 수가 없다. 흰 종이에 글씨를 쓴 뒤 서명, 또 두인頭印 유인游印 등 낙성관지라는 도장을 거듭 찍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글씨를 본 사람도 도장을 찍었으니 감상인鑑賞印이다. 사람은 누구나 시대에 살고, 따라서 글씨는 시대정신을 담지하는 양식일 수밖에 없다. 

이완용은 붓글씨를 잘 썼다. 글씨 쓰는 사람들 모임도 만들었다. 서화미술회는 조선 총독부가 기획하고 그가 주도하여 조직하였다. 친일 귀족들과 유명 서화인들을 끌어들였다. 그저 글씨만 쓴 건 아니었다. 거기서 다수 친일 서화가들이 나왔다. 그는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鮮展선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천자문 책도 출판했다. 자기 글씨를 교본으로 삼으라는 뜻이었다. 어설픈 여러 말들이 있지만 서대문 밖에 있는 독립문 이마 돌에 새긴 글씨도 이완용이 쓴 게 확실하다. 문을 세울 때 그는 독립협회 책임을 맡고 있었다. 재능은 있었으나 그에게는 민족이나 족속의 운명을 지켜내겠다는 생각 따위는 부재했다. 이를 매국노라고 한다. 

   
▲ 이완용이 말년인 1922년 경성 巖松堂에서 석인본으로 발행한 천자문. 문양이 있는 비단으로 사치스럽게 장정했다.

김돈희가 쓴 글씨는 지금 보아도 썩 재주가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창간 동아일보 제호를 쓴 것도 그였다. 1회에서 10회까지만 진행된 선전 서예부에서 김돈희는 한 번도 빠지질 않고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그에게 이런 이력은 하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사가 존재하는 한 그의 이름 석 자를 지울 수 없는 일이 있다. 경술년(1910)에 당한 병탄조약문, 곧 국치문서를 그가 붓을 들어 썼다. 기록된 역사 이천년 이래로 가장 큰 치욕을 기록한 문서는 그의 붓끝에서 나왔다. 가히 나라와 민족에 두고두고 먹칠을 한 잔재주다. 

굳이 이렇게까지 글씨와 글씨 쓰는 사람을 구별해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예술이나 재능은 있는 대로 보고 사람은 따로 분별하자는 말들도 한다. 재능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족을 능멸하는 일에 동원된 일은 역사가 우선하지 재능이 결코 그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 그 붓은 민족의 숨을 끊어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사후에라도 만일 옥석을 가려내지 않으면 끝내는 모두 돌이 되고 마는 까닭이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이들과 전혀 다른 길을 개척한 이들도 있다. 독립운동가 이만규의 딸들인 각경, 철경, 미경은 한글 글꼴을 재창조해낸 이들이다. 각경 철경은 쌍둥이었다. 이들은 조선 궁궐에서 궁녀들이 쓰던 글씨 본을 얻어다가 갈고 닦아 마침내 유려한 글꼴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바로 궁서체다. 이순신 장군 묘비를 새로 단장할 때 글씨를 쓴 이도 각경이었다. 분단은 쌍둥이를 갈라놓아 각경은 북으로 갔고 다른 형제들은 남았다. 자매들의 운명은 갈렸지만 남과 북이 이름은 달라도 거의 같은 글꼴을 사용하게 된 내력이다. 더구나 한자가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따라 쓸 수 있는 우리말 글꼴이었다. 이를 어찌 잔재주 따위와 견주겠는가. 

붓을 쓰는 시대가 끝나고 연필과 볼펜과 만년필 시대를 넘어 디지털시대에 나타난 글꼴도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뒤로 뜻있는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쓰던 여러 글꼴을 공들여 만들어 돈 한 푼 받지 않고 나누어주었다. 독립서체라고 묶어서 부르는 안중근체, 윤봉길체, 백범김구체, 한용운체들이다. 이들은 과연 명필이었는가. 손끝 잔재주보다 가슴으로 이들의 삶을 우러르고 기릴 수 있는 까닭에 다시 없는 글씨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체제 감옥에서 나온 글씨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백성 민 민체民體다. 신영복이 쓴 글씨를 말한다. 

언론인 이상호가 글씨를 썼다. 듣건대 일찍부터 써왔다고 한다. 소싯적에 어느 대회에서 상도 받고 한 모양이었다. 흥미로운 건 성장기에 글씨를 가르쳐준 선생에게서 그가 받았다는 아호다. 봉초烽樵. 서예인 이상호의 말로는 ‘봉화불 피우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자어로 초樵는 나무 같은 땔감을 베는 일이나 나무꾼을 이르기도 한다. 서예를 떠나 봉초는 이상호의 삶을 응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세상에 소식을 알리고 전파하는 일로 지금껏 부지런히 살아온 터다. 그는 아예 자기 삶을 땔감 삼아 신호와 진실을 지펴올렸다.  

   
▲ 운필중인 봉초 이상호 기자 <사진출처= '봉초' 이상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ngcho_lee/>

우리 국토에 이름자가 붙은 산이 4천여개 쯤 되고 조선시대에 설치한 봉수대가 673개에 이른다. 봉수는 횃불(烽)과 연기(燧)를 피워 소식을 알렸다. 해가 지면 불꽃으로 낮에는 연기를 피웠다. 파발은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그 봉수와 봉수 사이를 누비어 소식을 이었다. 봉초烽樵란 봉화를 다루는 사람일 테니 이상호와 잘 들어맞는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봉화 올리는 사람’이면 될 듯하다. 

봉초 글씨는 첫 획에서 서슴없이 붓을 눌러 먹이 번지고 두 번째 세 번째 획에서 유연하게 빠져 아래로 향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 글자들은 모여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필시 어디선가 본 듯한 형상이다. 우리네 보통 삶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듯한 익숙한 모양이다. 봉초가 가장 흔한 곳에서 글꼴을 가져오고 있다는 뜻이다. 봄날 흙을 파내본 사람이라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서체다. 글씨들은 언 흙 밑에서 새로 움 터 올라오는 기세를 품고 있다. 그래서 두 해 전 열린 전시(<봉초 이상호, 새싹을 키우다>) 때 이를 새싹체라로 이름 붙인 적이 있다. (☞ 관련기사 : [거리의 시/서해성] 도란도란새싹체를 위하여)

   
▲ 새싹이 자라나는 형상과 기운을 닮았다고 하여 서해성 선생이 '새싹체'라고 명명해 세상에 알려진 봉초 이상호의 새싹체 연작들 중 대표작인 '희망이 자라는 콩시루' (2020, 화선지에 먹물, 36*36)

봉초가 쓴 글 내용은 어느 거룩한 말씀보다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슬픔과 그늘이다. 억압과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글씨다. 그래서 이 글씨들은 누가 썼다기보다는 절로 돋아나는 느낌이 생생하다. 이는 시대와 민중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슬픈 것들은 슬픈 것으로, 아픈 것들은 아픈 것을 통해 새 세상을 열게 되리라는 확신이다. 봄풀은 대지를 이긴다. 이 새싹체가 형성된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라는 건 여러 가지를 상기하게 한다. 

그 때 이상호는 세상의 첨병이었다. 신음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절망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근거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그는 고통스런 시대에 봉화를 올렸고, 때로 봉화와 봉화 사이를 내달렸다. 
실로 봉초였다. 새싹체는 거기서 태어났다. 새싹체가 지닌 역동성은 봉초가 지닌 재능이 시대와 만나 뿜어내는 힘이다. 좋은 글씨가 갖춰야 할 덕목과 외연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얼마 전 끝난 두 번째 전시는 <그래도 꽃은 핀다>다. 시루 속에 든 콩나물 같은 글씨들이 무거운 시대를 들고 일어나고 있다. 화선지와 캔버스를 찢고 나온 글자들이 내지르고 있는 함성소리가 들린다. 그리하여 그의 글씨와 글씨그림은 전시장에 걸려 있지만 글씨를 보고 있는 공간을 광장으로 바꿔내고 있다. 세상을, 또 진실을, 그리고 정의를 떠받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단박 알 수 있는 작업들이다. 

   
▲ 봉초 이상호,  솥뚜껑을 밀어내는 '희망이 자라는 콩시루' (2022. 4 캔버스에 아크릴, 162*112) <이미지 출처='봉초' 이상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ngcho_lee/>

새싹체는 그저 새롭거나 한낱 고운 글씨가 아니다. 억압을 뚫고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잉태한 글꼴이다. 쓰러진 자들이 기어이 일어나 내지르는 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잘 쓴 글씨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시대의 어둠을 찍어서 쓰는 글씨다. 가장 좋은 먹과 물감이 바로 그 시대다.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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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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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시민 2022-06-24 13:12:48

    우리집에서 콩나물시루 가방이....
    배고파서 댓글 길게 쓰고 싶은데 못 쓰겟어요.밥 먹고...신고 | 삭제

    • 판단은 각자의 몫 2022-06-19 20:02:56

      윤 대통령, 오늘 용산 대통령실 '집들이'…지역 주민 초청

      시민들과 소통 행보...김건희 여사 다른 일정 생겨 불참

      http://www.upinews.kr/newsView/upi202206190030

      ====
      청와대 민원창구 연풍문 관리 '구멍'…화장실에는 쓰레기 가득
      https://www.yna.co.kr/view/AKR20220617146100004?input=1179m

      =====
      서울의소리 - 아크로비스타 집회 현장 6일차
      https://moonsrever.tistory.com/51831신고 | 삭제

      • 자 이제 국힘당이 대답하라 2022-06-19 19:31:01

        ◀우상호, 월북자 정보 국내 정보자산 다 붕괴시킬거 각오하고
        국회의원 동의받아 다 공개하자▶

        https://youtu.be/EvUdXXzGbDw

        https://cafe.daum.net/10in10/Evug/13708?q=

        "내가 처음에 첩보 내용 공개 반대한다고 한 건 실수한 거 같다

        내가 반대한건 이 첩보내용을 공개하면
        우리나라가 북한에 감청하는 루트. 방법이 다 들통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감청 내용 다 봤다신고 | 삭제

        • ★ 심봉사 쎄컨드 뺑덕 엄마 2022-06-18 23:35:01

          ‘본-부-장’ 비리... 곧 시대정신인가 ?!!
          vop.co.kr/A00001614876.html

          【사진】 ‘윤석열本人-부인-장모’ 각각의 범죄의혹
          i.ytimg.com/vi/-Zq9y-JF27w/maxresdefault.jpg

          민주당 “尹 일가족 주변은 비리 지뢰밭.. ‘가족 사기단’ 말 과하지 않아”
          v.daum.net/v/20211119113539111

          일가족 사기단
          vop.co.kr/A00001603194.html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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