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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
[서해성의 사람] 송해하다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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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5  15:23:27
수정 2022.06.15  15: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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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리 어른들은 테레비에서 노래자랑 방송을 시작하면 ‘송해한다’고 했다. 그건 차라리 한 개 ‘보통 동사’였다. 숱한 개발로 산천도 바뀌고, 대통령이 몇 번이나 떠나고 죽고, 방송 프로그램은 헤아릴 수 없이 변해 가도 송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송해하면서. ‘빨리빨리’ 세상에서 송해는 불변으로 위치를 지켰다. 거기가 송해의 좌표였고 대중들 또한 그가 그곳에 내내 거처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한국인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건 틀림없다. 고대 역사기록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전국 노래방 숫자는 한때 3만5천여 곳에 이르렀다. 상가 골목에서는 두어 집 건너마다 노래 부르는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단란주점 따위에도 모조리 노래 기계가 들어 있었으니 그 숫자는 적어도 곱을 해야 할 터이다. 성장하면서 60,70년대 마을마다 열리던 콩클대회들도 마찬가지다. 대개 공회당 마당에 무릎 높이 간이무대를 만든 뒤 차일을 치고 해가 진 뒤에 노래 대회는 열렸다. 낮에는 조명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정 받은 처녀 총각들은 공개방송에 나가 경연을 해서 더러 가수가 되기도 했다.

방송이 이 노래 좋아하는 족속들의 꿈과 일상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게 맞을 게다. 몇 번 진행자가 바뀌기는 했지만 노래자랑 방송은 송해가 맡은 뒤로는 바뀐 적이 없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34년을 넘는다. 일제강점기가 34년 11개월 보름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될 터이다. 송해는 막히는 아침 출근길을 말로 터주는 라디오 방송 또한 17년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일요일날에는 공개방송이 있었다.

송해는 진작부터 오래된 사람이었다. 늙었다거나 낡았다거나 옛날 사람이라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급변하는 속도로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는 차라리 경이다. 그 방송의 상당 부분이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소식과 안부, 어디서나 듣고 흥얼거릴 수 있는 대중가요였다.

   
▲ 전국노래자랑 MC 故 송해 씨의 노제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렸다. <사진제공=뉴시스>

나이를 떠나 모든 이의 벗이었고, 허물 없는 삼촌이었던 송해가 떠났다. 그는 애 끓는 분단 상처와 외동아들을 잃는 참척慘慽을 본 상명喪明을 끌어안은 채로 세상에 온기를 전해주는 일을 그치지 않은 대중문화인이었다. 누군들 그의 따스함에 빚지지 않은 자 있겠는가. 이 땅에 방송이란 게 생기고 나서 송해는 가장 가깝게, 가장 오래도록 회초리 들지 않은 아버지 노릇을 해주었다. 그가 쓰다듬는 꾸중도 달았다. 그 지혜는 쓰라린 고통을 마침내 온기로 바꿔내 온 그의 삶에서 나왔다.

송해는 죽기 전에 통일은 몰라도 고향만은 꼭 가보고, 거기서 노래자랑을 진행하고자 소망했다. 비록 황해도 재령 땅은 아니었지만 평양노래자랑(2004년)은 그의 삶에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터이다. 함께 진행한 북한 방송인이 아바이 건강하시라요 했다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좋은 정치란 고통과 비극을 줄이는 일이다. 그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어디 송해 같은 이가 그뿐이던가. 분단고통을 심화시키는 건 권력으로서 자격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다.

국민학교(결코 초등학교가 아니다!) 시절 여름 우연히 송해를 만난 적이 있다. 다시 본 것은 몇 십년이 지난 뒤 어떤 수상식에서 함께 상을 받는 자리였다. 거기서 큰절을 할 수 없어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건 어떤 기둥에게, 어떤 나침반에게, 어떤 눈물에게 절을 하는 일처럼 뭉클하였다. 일생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에게서 스며 나오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앞으로 늦게 일어난 일요일 오정 직후를 송해 없이 맞아야 한다. 몇 십년 만에 공공의 아버지 없는, 공공의 할아버지 없는 일요일이 될 것이다. 송해가 화면에서 떠났으므로 테레비는 비로소 텔레비전이 되었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사회는 동사 하나를 얻었다. 송해하다. 형용사는 무엇을 꾸미지만 동사는 살아서 움직인다. 이제 누가, 무엇으로 송해할 것인가.

   
▲ 현역 최고령 MC 송해 씨가 지난 8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사진은 지난달 23일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된 송해 씨가 기념패 전달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KBS 제공/뉴시스>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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