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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서해성] 서서 죽은 사람들42주년 오월에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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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10  14:54:21
수정 2022.05.10  15: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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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유튜브 채널 '후아유TV' 영상 캡처>

1982년 11월4일. 주먹에 맞아 링 위에서 뒤로 넘어진 김득구는 붉은 권투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먼저 흰 로프를 잡고 다시 왼손으로 파란 로프를 끌어당기면서 가까스로 일어섰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직립이었다. 

식당 보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가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 챔피언 김기수가 운영하는 명동 참피언다방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꿈을 다지던 청년이었다. 챔피언이 되지 못하면 걸어서 링을 내려오지 않겠다면서 성냥갑으로 만든 관을 가방에 넣고 떠난 아메리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경기가 끝나고도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가난은 나의 스승이다. 봉천동 달동네 단칸방 바람벽에 매직펜으로 굵게 쓴 글씨가 그를 쓸쓸히 기다리고 있었다. 

진작에 군산이 된 옥구 옥산 당북리, 쌀이 넘쳐나 쌀둑 같은 저수지 쌀 미 자 미제米堤께에서 태어나 배 곯던 이득구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입먹고 살기 위해 다시 혼인한 어머니가 만난 사내가 김씨라서 그는 김득구가 되었다. 삼팔선보다 북쪽 강원도 해변 마을 고성 거진으로 올라가 자라면서 소년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주먹으로 부숴버리고자 했다. 가진 것이라곤 맨 몸뿐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온누리를 비추는 고향 동해바다 태양이 되리라는 다짐을 그는 일기에 쓰곤 하였다.  

간성에 있는 큰아들네 집에 가서 테레비로 중계방송을 보다가 정전이 되어 정작 아들이 쓰러지는 건 보지 못했던 어머니 양선녀는 머잖아 아들을 따라 스스로 세상을 저버릴 때도 유언 한 마디 없었다. 둘 다 캄캄한 암전이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자주 중얼거리곤 했다. 가난이 내 아들을 죽였다. 

구겨진 흰 한복을 입고 라스베이거스 병원 복도에서 통곡하던 여인은 아들 얼굴에서 산소 마스크를 떼어내기 전 불쑥 각막, 신장, 심장 등 장기를 미국인들에게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 무렵 한국인들에게는 퍽도 낯선 결정이었다. 누군가 그걸 집요하게 설득하고 채근했다는 말도 돌았다. 권투 경기 탓에 미국을 향한 악감정 같은 게 생기거나 도지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게다. 광주학살 두 해째 되는 가을이었고, 학살 당시 미군 대응이나 항공모함 파견 등 최상급 배후 책임을 한국 청년학생과 시민들은 미국에 묻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미국 언론은 이 장기 기증을 동서양을 초월한 생명의 외경을 보여줘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했다. 이윽고 그 권투경기 심판을 했던 이도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거둬들였다. 

   
▲ <이미지 출처=유튜브 채널 '차도르' 영상 캡처>

이득구 김득구 박득구 천득구 만득구. 가난을 샌드백으로 치던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경기를 한다기보다 차라리 목숨을 거는 쪽이었다. 집에는 버짐 핀 어린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먹으로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일은 곧 가난을 쓰러뜨리는 일이었다. 권투 체육관에는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년, 청년들이 몰려들어서 제대로 연습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영혼들이 헤쳐간 신산스런 길을 한낱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어쩌구 따위 싸구려 향수로 기만할 수는 없다. 

권투 경기에서 지느니 죽는 게 낫다고 여겨야 하는 세상은 하루 하루 생존이 이미 끔찍한 전장터였다는 뜻이다. 그 시절 한국인들 피가 유난히 뜨거웠던 게 아니라 숨통을 조여오는 빈곤을 돌파해야 하는 운명이 가혹한 만큼 승부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링 밖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피 흘리는 링에 호응한 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민주주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살벌한 군사독재가 스무 해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자유는 위험천만한 허영이거나 무모한 사치였다. 이를 원할 때 독재권력은 생명과 피를 요구했고, 민주를 갈구하는 영혼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피투성이 김득구의 몸이 미합중국 사막도시에서 총에 맞은 듯 곧장 뒤로 넘어갈 때 남녘 사람들은 광주에서 쓰러지던 사람들을 겹쳐 보았다. 찢어지고 일그러진 얼굴은 공수부대에게 살해당해 손수레에 실려온 이들과 닮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흰 로프, 붉은 장갑, 파란 로프는 오월 그날 금남로에서 피에 젖은 태극 깃발처럼 휘청이고 흔들렸다. 그 참혹함은 인간 생명체가 지닌 실존의 극한이었다. 신군부 하사품인 양 송출되기 시작한 컬러 텔레비전은 이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중계했다. 

그해 오월에 먼저 보았다. 그 거리와 그 광장에서 어떤 이들은 머리가 으깨어지고도 영혼이 먼저 일어서고 몸이 따라와 마지막으로 직립하였다. 오직 서서 죽기 위하여. 

*’온누리를 비추는 태양’은 김득구 일기에 나오는 말.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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