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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
[서해성의 사람] 지하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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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9  14:53:36
수정 2022.05.09  22: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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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의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 <사진제공=뉴시스>

지하地下시대에 지하芝河는 보통명사였다. 70년대는 박모와 지하의 시대였다. 일천구백70년대는 차라리 지하라는 말로 바꿔도 좋았다. 지하, 그건 자연인 김영일의 필명만은 아니었다. 지하라는 이름이 곧 자유를 향한 열망이었다. 

저 시대 그의 언어는 군사독재와 분단체제 땅거죽을 뚫고 나와서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명줄 다한 산비탈 노을마저 펄펄 끓게 하였다. 그는 숨죽인 모국어가 근육을 가져야 한다는 걸 뜨거운 시어로 노래했다. 정녕 칼을 품은 소월素月이었다. 서슬퍼런 폭력을 견뎌내야 하는 운명을 지하는 기꺼이 비장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냈고 쓰라린 분노마저 가락에 얹어 유장했다. 그가 있어 굴욕이 이름을 얻고 무릎 꿇은 좌절이 승리를 향한 치열한 예언일 수 있다는 걸 관절 마디마디 깨우치게 했다. 

지하의 시는 언어의 행동이었고, 감시와 투옥을 거듭한 지하의 삶은 그 자체로 행동의 언어였다. 지하는 피 묻은 연꽃 같은 한없는 절창이었다. 어두운 시대 그를 암송하는 골방도 광장으로 열리게끔 하는 주술사였다. 늘 떨리는 가슴 같은 사람, 칠흑 어둠 속에서도 명료한 글자로 보이던 시어가 다 주린 세상 먹이는 밥이요, 살림이었다. 

암흑시대 지하는 노여운 저항의 중심이었다. 숨어 부르는 노래의 박동하는 중심이었다. 민족민중문화와 연희가 마당에서 놀게 하는 목판화 속에서 걸어나온 광대 중심이었다. 벽화였다. 사표였고, 나침반이었고, 지침이었고, 강령이었고, 가장 뱃머리이자 돛이었고, 동시에 선미에 있어도 방향을 제시하는 키였다. 

옥을 나온 뒤 그는 사상의 중심이고자 했고, 시나브로 현실보다 높은 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처처에 두루 말들이 있었지만 그 말들보다 언제부터인가는 그의 말이 칼끝을 세워 어렵게 한 걸음 내딛으려 하는 세상을 들쑤셨다. 

지하가 70년 토해낸 오적을 처음 읽은 건 몇 년 지난 중학생 때였다. 뜻을 온전히 헤아렸을 리 만무했지만 그 독설과 용기와 풍자에 이끌려 글을 읽은 소년은 제 삶의 방향을 저도 모르게 거의 결정짓고 있었다. 숱한 학생, 청년들이 그러하였다. 91년 그가 저 가혹한 문장을 발표했을 때는 연세대 학생회관에 마련한 투쟁본부에서 몇 날을 잠 들지 못한 채 싸우고 있었다. 죽음이 지워지지 않는 물감처럼 손에 묻어나던 봄날이었다. 대학 교문 들머리에서는 꽃이 피어나질 못하고 곤충이 사라지고 새가 떠나고 없었다. 경찰이 날마다 하오 내내 지독하게 쏘아대는 최루탄 탓이었다. 

그리하여 지하는 둘이 되었다. 독재와 싸우는 지하와 벗들과 싸우는 지하, 수인번호 508번을 달고 정면으로 서 있는 사형수 지하와 모로 돌아앉은 지하, 맑은 지하와 탁한 지하, 산 지하와 죽은 지하였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쨌든 저마다의 그날 지하는 죽었다. 지하 스스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시대와 벗들을 저버렸다. 알고 있던 지하는 가고 다른 지하가 불쑥 돋아났다. 그건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던 지하를 지하에게 익힌 칼노래로 모질게 끊어내게 하는 일이었다. 그가 생성시켜내 온 숱한 순결과 이별해야 하는 뼈 저리는 노정이었다. 언어의 순결, 행동의 순결, 죽음의 순결 따위였다. 가파른 세상은 그걸 배신이라고들 불러서 그가 건너가고 있던 강을 돌아오지 못하게끔 했다. 그 뒤로 그는 더 엇걸음질을 했다. 아무리 이해하고자 해도 지하는 다른 지하가 되어 있었다. 한번 더 말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렇게 지하는 둘로 나뉘어 갔다. 

한참 뒤에 몇몇과 책보만한 땅뙈기에 주말이면 풋고추, 상추서껀 심고 놀았다. 서툰 농부 일이 끝나면 흙 묻은 손으로 같이 소주를 마시고 삼겹살을 굽곤 하였다. 지하도 거기 있었다. 그건 그냥 소박한 일상에서 함께 하게 된 김영일이었다. 그해 조금 취한 가을날 고향 목포를 생각하면 스스로 구덩이를 판 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흙 묻은 눈이 먼저 떠올라서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그 지하는 못내 쓸쓸한 지하였다. 얼굴은 부어 있었고 몸은 무거웠다. 그는 그 고향에서 두 이름을 다 얻었다. 김영일은 수배시절 도망쳐 남도 목포로 내려가서 지하라고 자호하였다. 

   

오늘 지하는 산 지하, 죽은 지하가 하나가 되어 떠나갔다. 분단과 군사독재시대는 지하라는 피 끓는 모국어를 얻었고, 여전히 더 억압을 뚫고 가야 했던 울분에 찬 그 시대는 또 지하를 내쳐야 했다. 그는 맨 척후에서 거대한 모국어로 서슴없이 독재와 싸웠고, 끝나지 않은 저항시대와 그 벗들과 불화했다. 지하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나. 그가 모국어의 중심에 등재시킨 저 핏빛 황토의 언덕들이 묻는다. 무엇이 타고 있는가. 어느 골짜기가 울부짖는가. 어째서 이 봄날 대지는 아직도 붉은가.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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