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았다. 
산은 고개를 넘어와서 
진달래 몇 뿌려 놓고는 해거름녘 제 그늘 속에 숨어버렸다. 
봄은 새로 생긴 흉터처럼 가지 끝마다 걸려 있었다. 
그 언저리 얼굴 서늘한 사람 두엇이 옛 사람들 맹서盟誓를 맺었다는 나무 밑을 얼쩡거렸다. 
굳이 이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해 지고 있는 광장으로 부고 같은 어스름이 밀려왔다. 
유행병을 앓고 있는 도시 모퉁이 술집 밖으로 무심히 흘러나오는 
엄살 떠는 유행가 가락은 그후 정녕코 낯설었다.
골목 들머리에서는 묽은 방범등이
선거에 지기라도 한 양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 게 피차 더 욕스러웠다.  
통근 버스에서 내려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걷고 있을 때 
다만 재개발 동네 불빛들이 뿌연 황사 속에 
힘겹게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