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을 싸워 군에서 사망한 아들(故허원근 일병)의 순직인정을 이끌어낸 ‘아버지’ 허영춘 씨가(前 군 의문사협의회 회장) 리영희재단(이사장 김효순)이 주관하는 제9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 故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이 자살로 판결된 지난 2015년 9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허영춘 씨가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리영희상 심사위는 “허영춘 선생을 비롯한 유가족의 과감하고 끈질긴 진상규명 운동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강제 징집한 대학생에게 프락치 공작을 강요하고 불응자에게 가혹 행위를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녹화사업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냈다”며 “이를 계기로 군과 한국 사회 전체의 인권 상황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민주화 과정도 촉진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심사위는 “허영춘 선생과 군 의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기울인 노력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군사정권의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진상 규명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군 내부의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과 시민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시민의 인권운동으로 군도 바뀔 수 있다는 선례는 한국 사회의 가장 견고한 성역인 군의 정보개방과 민주적 운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리영희상 선정 사유를 밝혔다.

1984년 4월, 허원근 일병이 총기 사망하자 군은 자살이라고 결론 내렸다. 아버지 허영춘 씨는 부실하고 비상식적인 군의 조사 결과에 반발하며 사망원인을 밝혀내고자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고, 2017년 33년 만에 국방부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았다. 허영춘 씨는 아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군에서 발생한 다수의 의문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워왔다.

허영춘 씨는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반가움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군 의문사 사건들이 존재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유족들이 있는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1984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아들 허원근 일병의 두 눈을 감겨주며 약속했다. “네가 자살한 게 아니라 타살 당했다는 말을 하는 날까지 이 아부지가 끝까지 싸우겠다”고. 아들에게 한 이 약속은 그의 삶이 되었다. 허 씨는 “더는 내 아들들 죽이지 마라”고 외치며 “젊은이들 군대 데려가서 죽이지 마라”, “죽였으면 억울한 사건 만들지 마라” 이 두 가지를 요구하며 평생을 싸웠다.

▲ 故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前 군의문사협의회 회장. Ⓒ 리영희 재단

허영춘 씨는 “이제는 늙고 병든 몸이 됐지만 근래 군대에서 죽는 아이들 숫자가 줄어든다니 다소 위안이 된다”며 “젊은이들이 군대 가서 죽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이 아니겠나. 그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며 수상소감을 대신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편, 제9회 리영희상 특별상에는 故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선정됐다. 심사위는 “인문학자로 출발해 생태사상을 구현하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수상자는 현실 고발을 넘어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사회상과 대안적 가치관을 제시하는 업적을 남겼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리영희재단은 지난 2013년부터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있게 진실을 추구하는 ‘리영희 정신’을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쓴 개인이나 단체에게 리영희상을 시상해오고 있다.

제9회 리영희상 시상식은 오는 7일 오후 4시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진행된다. 시상식 이후에는 <아들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겠다>, <녹색 사상가 김종철>이란 주제로 ‘희망메시지 2021 이야기 마당’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