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조부와 증조부의 행적은 독립운동가의 삶으로 볼 수 없다. 이완용처럼 1급 친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부역했다.” (12일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일제 친일부역자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조부 및 증조부를 둘러싼 검증이 한창인 가운데 12일 박수현 처장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주장은 무게가 실리기에 충분했다.  

박 처장은 최 전 원장의 증조부 고 최승현이 1918년부터 1936년까지 강원도 평강 지역 면장으로 재직한 것에 대해 “10년 넘게 면장으로 일한 건 그만큼 일제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JTBC는 “특히 증조부가 조선총독부의 표창을 받은 사실도 처음 확인됐습니다”라며 관련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 <이미지 출처=JTBC 홈페이지 캡처>

“조선총독부 관보(1933.7.7 발행)에 따르면 총독부 상훈국은 평강군 유진면 면장인 최승현에게 1932년 10월 1일자로 ‘국세조사기념장’을 수여했습니다. 통상 기념장은 일제의 통치 행위에 적극 협력했을 때 내려지는 상이라는 게 연구소 측 설명입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최 전 원장의 조부 최병규의 독립운동 여부에 대해서도 “최병규가 참여한 동맹휴학 사건은 여태까지 항일운동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다”면서 “백번 양보해 항일로 인정하더라도 최병규의 20대 이후 행적은 친일에 가깝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최 전 원장 측은 조부가 춘천고등보통학교 다닐 당시 일제에 맞서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을 당했다고 설명해 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정반대 평가는 그간 최 전 원장이 자처해 자신의 일가를 ‘독립운동가 집안’, ‘애국 명문가 집안’ 등이라고 소개해왔던 것과 배치된다. 이에 대한 최 전 원장 측 해명이 나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문제 제기에 재차 문재인 대통령 끌어들인 최재형 캠프 

“이번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 다시 묻는다. 그런 기준이라면 일제시대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은 친일파인가 아닌가.”

12일 최 전 원장 특보단이 입장문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전날(11일) 김영우 최재형 캠프 상황실장이 YTN라디오에 출연 관련 의혹에 “대통령 부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이 흥남시의 농업계장이다, 이거 때문에 우리가 대통령의 부친을 친일파라고 몰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발한 바 있다. 특보단의 해명도 이와 다를 바 없는 스탠스였다. 

“박 처장에게 묻는다. 일제시대에 면장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인가. 당시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자리도 맡지 말았어야 하는가(...). ‘국세조사기념장’은 명칭으로 봐서는 일제가 국세조사 사업을 벌인 뒤 면장들에게 준 것 같은데 그것을 받았다고 친일파인가.”

이 같은 해명이 과연 일제 강점기 면장이 어떤 지위였는지, 그 면장들의 친일행위가 어땠는지 버젓이 나와있는 역사적 사료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성질일까. 이에 대해 앞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최재형의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만주시찰단에 참가했고, 강원도 평강군의 면장이었다. 조부는 일제강점기에 강원도의원에 출마했고, 만주국 거류민단장이었고, 일제에 국방헌금을 헌납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이미지 출처=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특보단은 또 조부 최병규에 관한 의혹에 대해서도 “지난 1999년 강원일보가 ‘춘천고 최초 항일운동 불 지핀 최병규옹’이란 기사를 내보낸 적도 있다”며 “일본인 교사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 당하고 일제의 감시를 받은 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라는 건 무슨 궤변인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인정해줘야, 국가표창을 받아야 독립운동인가”라고 반박했다. 

옹색하기 짝이 없다. 같은 논리라면 과연 유권자들은 1999년 강원일보 기사를 신뢰할까. ‘최재형 조부 일제 국방헌급 헌납’이 명시된 1938년 6월 30일자 매일신보 기사를 신뢰할까. 특보단은 정말 지역 일간지 기사 하나가 과연 조부 친일 의혹에 대한 반박 자료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어 특보단은 “최재형 후보에 대해 오죽 공격할 것이 없으면 그럴까 싶지만 증조부까지 끌어들여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태도에 어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안타까운 반박이 아닐 수 없다. 대선후보 검증 국면을 무시한 채 ‘독립운동가 집안’, ‘애국 명문가 집안’을 강조해 온 것은 바로 최 전 원장 본인이 아닌가. 

면피성, 물타기 해명은 이제 그만

“최재형 후보나 그 가족은 당연히 조부의 회고록을 소장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재형 후보 입장에선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 사실은 모두 거짓없는 사실’이라는 해명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13일 오마이뉴스 <[검증] 최재형 조부 생전에는 ‘만주독립운동’ 언급 없었다> 기사 중)

▲ <이미지 출처=오마이뉴스 홈페이지 캡처>

최 전 원장 조부 최병규 검증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이날 최병규에 대한 언론보도를 검증하며 해방 이후 조부 “최병규에 대한 언론보도는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각 시기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보도 내용엔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따르면, 먼저 1999년의 <강원일보> 보도 기사(<춘천고 최초 항일운동 불지핀 최병규옹(1회) “73년만에 고교졸업장”>는 최병규의 활동을 “독립운동 아닌 ‘동포 돕기 운동’ 또는 ‘한국인 지원사업’이라 서술”하고 있었다. 

다음 보도는 2008년 <강원도민일보>의 ‘최병규 사망’ 기사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최병규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내용”이라며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내용이 생전과 사후를 경계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는 만주 독립운동 주장이 최재형 후보의 조부 최병규가 아니라 부친 최영섭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 전 원장 조부 및 증조부의 독립운동 진위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언론의 검증에 이어 민족문제연구소까지 확인하고 나선 모양새다. 반면 최 전 원장 측은 단발성, 면피성 해명에 그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부친을 거론하며 물타기를 시도 중이다. 

연일 ‘준비 부족’을 토로 중인 최 전 원장일지라도 조부 및 증조부의 행적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평소 ‘애국 명문가 집안’임을 내세운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조상의 과거 행적을 되새겼을 이가 바로 최 전 원장 본인 아니었겠는가. 면피성 해명으로, 물타기로 해결 할 일이 아니다. 최 전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이제 열흘, 정치가, 특히 대선후보 검증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