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 11월 미군이 공중에서 촬영한 널문리 일대의 모습.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출처=뉴시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길 
터벅터벅 걷다보면
문득 너른 들이 나오는 
벌판 동네 널문리. 

신작로 동쪽에 
초가집 세 채 앉아 있었다는 
거기 가운뎃집 대폿집. 

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이 있는 
수수대 우르르 서 있는 마당을 낀 
한 백년 묵은, 한 오백년은 묵은 
조선 동네. 
쫓기던 왕 선조가 
한양성 벗어나 점심을 먹었다는 판문. 

초가지붕 낮은 토방을 올라서면 
두 칸 마루가 깔려 있고 
왼켠에 부엌이 딸려 있었다는 
널문리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마셔보았다는 노인장은

널빤지 한 장 같은 마을 앞쪽으로 
가로수 몇 주 겨우 멀건히 서 있고
먼지 날리는 긴 신작로만 
그저 한갓지게 뻗어 있더란다. 

널문리는 나그네가 잠시 들르는 곳이지 
눌러앉아 사는 곳이 아니라면서 
사발 대폿집 막걸리 먹는 법을 가르쳐주던 여름 밤은 
땟국 흐르는 옷소매로 입가를 닦으면서 쓰윽 지나가버렸고. 

판문점 말고 
널문리에 가본 사람은 
진작에 다 사라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
개성시 판문점리.

집 세 채 있는 한 마을에 
주소는 두 개이지만 
아무리 부쳐도 
편지가 가질 않는 곳인지 
정말 알고 싶어 
편지를 써서 보낸 뒤 치도곤을 당했다는
널문리에 가본 
그 이북 사람이 부르던 노래를
널문리는 기억하려나. 

수수밭 고랑에 오줌 누고 나와서 
몇 잔 더 걸치고 떠났다는 
대폿집은 무사하려나
걱정을 해쌓던 
키 작은 꼴초 
징용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발 벗고 처음 올라가본 마루가 그 집이라던 
구월산 아래 문화 사람 장단을
어쩌자고 
흙에 묻힌 널문리 대폿잔은 
일흔 해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서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