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한 시민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읽어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조국의 시간>이 출간 2주 만에 20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출간 이후 꾸준히 온·오프라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조국의 시간』은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록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일 <조국의 시간>의 출간사 한길사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내놓은 감사 인사다.  지난 1일 정식 출간과 함께 단 1주일 만에 20만부 돌파를 예고 중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열풍이 계속되는 중이다. 그 열풍은 물론 2년 전 ‘검찰개혁’ 촛불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조 전 장관 또한 <조국의 시간>의 ‘6장 서초동의 장엄한 촛불십자가’에서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생환(生還), 그것이면 족했다”며 이 검찰개혁 촛불집회의 의의를 공을 들여 설명하기도 했다.
 
“촛불시민들은 나의 한계와 흠을 직시하면서도 폭주하는 검찰에 경고하고 검찰개혁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이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시민들은 검찰권의 유례없는 오남용을 보면서 나와 내 가족이 잘못에 비해 과도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검찰이 개혁되지 않으면 누구든 희생양이 될 수 있기에 함께 비를 맞아주어야겠다, 손을 잡아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나섰다.”- 조국의 시간> 254p 중

그렇다. <조국의 시간>(한길사) 열풍은 2년 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조국의 생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국 사태’이자 ‘윤석열 항명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짚고 한 가족을 멸문지화로 몰아넣고 무간지옥에 빠뜨린 ‘검찰과 언론, 그리고 정치(보수야당)’의 카르텔이 어떻게, 왜 작동했는지를 되짚는 진실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한 쪽에선 환호하고 또 한쪽에선 비난을 퍼붓는 <조국의 시간> 열풍이 역설적이게도 ‘윤석열의 (검증) 시간’을 열어젖히는 중이다. 2년 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매를 하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구매 독려를 하면서 일종의 신드롬이 생성된 덕택이다. ‘생환이면 족했다’던 ‘조국 일가족’에게 주는 촛불시민들의 응답이 <조국의 시간> 열풍의 진짜 정체인 것이다.

담백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지난 1일 <조국의 시간>(한길사)은 출간 하루 만에 10만 부를 찍는 경이로운 역사를 써가는 중이다. 저자인 조국 전 장관은 지난 2년 간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35일짜리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이제는 자연인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이 됐다. 반면 ‘제43대 검찰총장 윤석열’은 보수야권 후보로서 대권도전 선언을 목전에 뒀다. 전자는 급전직하, 후자는 승승장구라 할 만하다.

그런 조 전 장관이 써내려간 회고록 <조국의 시간>은 ‘신원 회복’의 기록이자 진실 찾기 프로젝트이며 국민들에게 쓰는 참회와 사죄의 전상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을 뿐이었던 조 전 장관 일가족을 ‘무간지옥’으로 떨어뜨리고, ‘멸문지화’로 몰아넣은 이들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몇 가지 특이점을 꼽아보자면, 이토록 담담하고 담백할 수가. 범인 (凡人)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멸문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쉽게 말해 온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언정 카르텔’을 향해 ‘야비하다’ 등 간간이 등장하는 짤막한, 근거 있는 비난을 제외하곤 시종일관 문체의 냉정함을 유지한다.

사과하고 또 사과한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부정 의혹 등 강남좌파로서의 정체성과 유리된 자신과 가족의 부족함을 회고록 전편에 걸쳐 사과하고 사죄한다. 조국의 시간이 적시하는 것은 검언정 카르텔의 부적절한 작동방식과 과도한 단죄의 부당함이지만 조 전 장관은 그 중간 중간 겸허함을 유지하며 과할 정도로 사죄하고 몸을 낮춘다.

회고록을 읽어 본 10만이 넘는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죄가 유리한 법원 판결이나 향후 활동을 염두에 둔 정치적 제스처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고록 말미 조 전 장관은 가톨릭 고백기도 문구를 빌려 “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 탓입니다”(Mea Maxima Culpa)라고 말한다.

어렵지 않다. 어렵게 구해선 하루 밤만에 읽었다는 후기가 속속 목격된다. 그 만큼 쉽지만 또 고통스럽고 또 한편으론 흥미진진하다. 2년 전 검찰의 ‘조국 일가족 수사’ 및 ‘윤석열 항명 사태’를 따라잡지 않았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조 전 장관 특유의 점잖음이 회고록 전편에 묻어나지만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과시적이거나 구구절절 설명적이지도 않다.

담백하다. 해명조차 그렇다. 그간 편파적인 언론을 통해 사태를 접했던 이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해명들조차 구구절절은커녕 담담하고 담백하기 짝이 없다. 법률가의 문장이라서 그럴까. 좀 더 격정적으로 감정을 토로할만한데도 일정한 순간이면 냉정을 되찾는다. 그런 냉정한 문장이 해명들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그리하여 이 적절한 시기에 당도한 회고록이 가리키는 것은 ‘조국 사태’로 명명된 한국 현대사 희대의 사건을 향한 진상의 고발과 절절한 자기고백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주저앉히려는 ‘검찰 쿠데타‘와 제 이익에 충실한 ‘검언정 카르텔’의 작동 말이다.

그 결과가 작금의 보수야권 유력 대선주자 ‘윤석열 후보’의 탄생이다. 조 전 장관은 윤석열 전 총장의 수사가 어디서 연원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작금의 결과를 낳았는지를 차분히 되짚는다. 애초 검찰개혁을 막으려던 검찰주의가 어떻게 괴물이 됐는지, 검찰권을 휘두른 그 괴물의 ‘액션’이 어떻게 청와대와 현 정부를 위협했는지, 그 결과 ‘불쏘시개’를 자임한 조국 일가족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냉정한 듯 절절하게 묘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동참한 시민들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 <이미지 출처=SNS, 인터넷 커뮤니티>

이어지는 ‘윤석열의 시간’

“건물 승강기에서 만난 저에게 “공격 많이 받으시던데 힘내세요”라고 안쓰러워해주셨던 시민들, 저를 알아보고 택시비를 받지 않으려 했던 택시기사님, 조용히 대리운전을 마친 후 떠나시면서 “잘 버티십시오”라고 말씀해주신 대리기사님, 밥을 먹고 나오는데 주차장으로 따라오셔서 아무 말 없이 포장한 편육과 국물 또는 김밥‧주먹밥 등을 차 안에 넣어주신 식당 주인분들(...). 이분들의 작은 응원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조국의 시간> 9p 중

울컥한 독자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조 전 장관이 서문에서 꼼꼼하게 길어 올린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신기하고 따뜻해서다. 한쪽에서 어떻게든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됐던, 시쳇말로 ‘국민 욕받이‘가 됐던 ‘조국 일가족’ 향한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는 2년 전 촛불이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서문을 썼다는 조 전 장관은 “저의 한계와 흠을 아시면서도 이렇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신 분들 덕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공소권 없음‘을 바랐던 사람들은 은밀한 희망과 달리, 죽지는 않았습니다. 촛불시민 덕분입니다. 날벼락처럼 들이닥친 비운이지만, 지치지 않고 싸우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친검’ 언론이 어떻게든 폄훼하려고 혈안이 됐던 그 시민들이 <조국의 시간>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있다. 조국 전 장관에게 비판적이었던 시민들까지 ‘조국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라며 책을 구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만부 돌파를 목전에 뒀다는 <조국의 시간>의 열풍이 50만부, 100만부 돌파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만든 이 신드롬이 대선 후보로 나선 윤석열 전 총장과 그 가족의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이다. <조국의 시간>의 독자들은 기사 댓글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통해 그걸 ‘사필귀정’이라고, ‘인과응보’라고 부르는 중이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에 문을 연 우당 이회영 기념관 개장식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