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학생들은 군대를 갔다 온 이후 복직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을 날릴 바에 대학 가서 스펙을 쌓겠다는 학생이 많아 군대 이후 복직을 제도화했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적은 소득이어도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자기개발을 하고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해 줬으면 한다.” (경기자동차과학고를 졸업한 뒤 자동차 판매 및 종합서비스업체에 재직 중인 이한샘씨)

지난 4일 경기도가 고졸 청년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경기도교육청-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이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인 이씨가 강조한 것 역시 자기개발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정부 지원이었다. 

협약에 따라 경기도는 이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고교취업활성화사업 추진과 기업 채용 알선 지원 등의 고용정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형 도제 교육 및 현장실습 등 지역인재 양성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한편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또한 청년 고용노동정책 홍보·지원과 기업-고교 채용·취업지원, 청년 일경험 기회 확대 등에 적극 협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4월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이와 함께 경기도 및 경기도 교육청,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등 세 기관은 ▲고졸 취업지원을 위한 체계 구축 ▲지역인재 채용을 위한 인력양성 협력 ▲우수 기업의 고졸 채용 정보 제공 ▲공동 홍보 브랜드 발굴 등을 공동으로 협력해 나간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경기도의 적극적인 협력을 강조하며 이와 같은 평소 소신을 전하기도 했다. 

“제가 청년 문제와 관련해서 언제나 가진 고민이 왜 실력에 따라 평가받지 않고 차별하느냐였다. 생산성이나 역량이 정말로 중요한데 형식적인 학력 등을 가지고 임금차별을 하니까 사람들이 안 가도 될 대학을 다 가느라 국가역량도 손실이 있고 재정적인 부담도 커지고 어찌 보면 개인으로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워낙 큰 것이 대학 서열화 문제나 입시 문제 아니면 초중고의 왜곡된 교육 환경의 주 원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4년 동안 기술을 쌓고 노력한 결과가 4년 동안 대학 다닌 사람의 보상과 별반 다를 거 없거나 나을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우회로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사 발언의 전체 맥락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특히 고졸 취업자와 대졸자의 임금 차별이나 고졸자에 대한 정부의 일반적인 보상을 언급한 이 지사의 지적은 일견 납득할 만한 주장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언론 보도였다. 대다수의 언론이 이날 협약식 소식을 전하며 이 지사의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중앙일보>가 대표적이었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재명 “대학 안 간 청년,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제안> 기사에서 해당 협약식 소식을 전한 뒤 기사 말미 “4년간 대학을 다닌 것하고 4년간 세계 일주를 다닌 것하고, 어떤 게 더 인생과 역량개발에 도움이 될까, 각자 원하는 바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대학에 안 가는 대신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란 이 지사의 단 두 마디 ‘워딩’을 전하고 이를 제목으로 뽑았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여타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5일 이후 이 지사의 “대학 안 간 청년,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발언을 따옴표 친 제목의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이후 이준석‧윤희숙‧유승민 등 보수야당 인사들이 이 지사의 해당 발언을 비판한 주장을 엮은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4일 국민의힘에 이어 6일엔 정의당도 이 지사의 해당 발언에 대한 논평을 내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유력 정치인이라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사가 내놓는 제안이라는 건 온통 세금 쓰는 얘기, 빚 늘어나는 얘기뿐이다. 허경영 씨를 존경한다더니 정책마저도 허경영 씨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인가. 혹여 국가 예산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청년을 현혹하지 말고 실현 가능한 대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국민의힘 박기녕 부대변인 논평 중)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행출발자산이 아니라 사회출발자산입니다. 세습불평등에 따른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흙수저 청년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하기 위해 청년기 초기에 일정한 기초자산을 국가가 제공해야 합니다. 

특권층 자녀에게만 사적으로 상속되는 자산에는 세금을 더 부과하고, 모든 청년들이 누릴 수 있는 공적 상속의 영역을 탄생시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당이 오랜 정책검토 끝에 설계하여 지난 대선 때부터 공약해온 ‘청년기초자산제’의 내용입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논평 중) 

부화뇌동과 의도된 왜곡 사이

특히 강 대표는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줄어들어야 하고,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나 대학진학 여부에 따른 청년들의 문화적 경험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데는 적극 동의합니다”한다면서도 “그러나 이 지사의 주장이 논란이 되자 관계자 측에서 ‘아이디어 차원일 뿐’이라 일축한 점은 이 지사가 노이즈마케팅 형식으로 청년정책 제안을 활용했다고 느껴져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지 청년에게 선심성으로 뭘 해주자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세대 내 불평등으로 인해 박탈된 청년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 고민해야 합니다”라며 정의당의 ‘청년기초자산제’를 언급했다. 이 지사가 발언한 상황이나 전체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부화뇌동이나 국민의힘 논평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사의 발언은 해당 협약식에서 ‘고졸 청년’ 당사자가 정부 지원을 촉구하자 그에 대한 화답 차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치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이 지사가 공식적인 공약을 내놓은 것처럼 호도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국민의힘처럼 ‘허경영 벤치마킹’ 운운할 일은 더더욱 아니고. 

설령 ‘아이디어 차원’이면 또 어떠한가. 교육부 장학금 등 대학 재학생들에게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에 비해 고졸 취업자는 물론 비인문계 고등학생 및 대학 미진학자들에게 지원되는 재정이 부실한 것 또한 사실 아닌가. 

하지만 이 지사 발언의 요지를 짚은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한샘씨가 말한 “청년들이 적은 소득이어도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자기개발을 하고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해 줬으면 한다”는 발언 역시 실종됐다시피 했다. 이를 두고 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애초 메시지가 완전히 왜곡됐다”고 언론의 왜곡 보도를 비판했다. 

“(이 지사가) 대학생은 대학 다니는 동안 국가나 지차제, 또는 대학으로부터 지원이나 장학금을 받는 등 대학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지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도 같은 정도의 행정지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맥락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고졸자이면서도 취업의 기회가 넓게 열릴 것이 아니냐는 게 이날 (이 지사)발언의 요지다. 실제로 4년간 대학만 다닌 사람과 그 비용으로 4년간 세계 여행을 한 사람을 놓고 볼 때 둘의 경험 중에 어느 쪽이 더 값진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여권 대선주자 1위를 어떻게든 공격하려는 갖가지 의도(?)들은 이해된다.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이 지사의 ‘고졸 청년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발언은 이를 위한 안성맞춤에 가까운 떡밥(?)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언의 맥락과 상황은 기본적으로 전달한 뒤 비판하는 게 상식일 터이다. 부디 전체 맥락을 놓고 판단하시기를. 과연 이 지사의 발언이 ‘허경영식’ 허황된 주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