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5월 하순에 개최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 일정과 의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요구하는 백신 확보에 미국이 난색을 표하면서 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회담 연기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23일 오전 <한미정상회담 연기설 솔솔… 협상 테이블에 백신 못 올려놓나>란 제목의 <조선일보> 보도의 서두다. 해당 기사는 익명의 ‘외교가’ 전언을 통해 “‘문 대통령이 미국의 코드를 어떻게든 맞춰서 백신을 가져와야 하는데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끝을 맺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조선일보>가 강조한 ‘첩첩산중’의 요건은 말 그대로 두서가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를 든 대목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일단 현안으로 떠오른 ‘백신 스와프’ 외에도 “한미 정상회담에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켜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의치 않은 상황"을 꼽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우리의 정부 수행 인원까지 최소화를 요구해서 CEO까지 데려갈 수가 없다”는 기사 속 여권 관계자의 ‘워딩’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마치 이어진 “미국이 반중(反中) 전선의 성격을 띠는 쿼드(4국 안보 협의체) 참여 등을 요구할 경우에도 우리 정부로선 매우 난감하다”는 분석이 곁다리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근거없는 추측 보도에 유감을 표한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은 “한미 양국은 5월 후반기 중 서로 편리한 시기에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구체적인 회담 일정은 확정이 되면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중앙일보>가 거들고 나섰다. 

같은 날 오후 <文 큰소리 쳤지만…‘백신 무기화’에 불안한 한미 정상회담> 기사에서 ‘중앙’은 “지난 16일 새벽 한ㆍ미 정부가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5월 후반기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밝힌 뒤 1주일째 회담 개최일이 특정되지 않고 있다”며 “그래서 외교가에선 ‘의제 조율 과정에서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일각에선 회담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박 대변인의 반박을 기사에 녹여내긴 했다. 그럼에도 기사 제목은 ‘불안’이 강조돼 있었다. 전형적인 ‘불안 조장’ 제목이자 논조라 할 만했다. 그리고 30일, 이 같은 보수언론의 보도를 비웃듯 미국 백악관이 다음달 21일 한미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공식 성명을 통해서였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연기설 지피던 언론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한미 간 철통 같은 동맹관계(highlight the ironclad alliance)와 양국 정부, 국민, 경제 간 광범위하고 깊은 유대가 부각될 것입니다.”

외신이 전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성명 중 일부다. 젠 사키 대변인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맞이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협력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긴밀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30일 오전 청와대 정만호 국민소통수석 또한 브리핑에서 “방미와 관련된 상세한 일정은 구체 사항이 정해지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며 아래와 같이 화답했다. 앞서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의 아시아 백신 생산 허브화’와 같은 정상회담 의제들이 보도됐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면 정상회담이 조기에 개최되는 것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양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서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고, 양 정상과 국민들 간 우정을 바탕으로 양국 간의 포괄적이고 호혜적인 협력 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의 진전을 위한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 방안을 비롯해서 경제·통상 등 실질 협력과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한 대응 협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닭 보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조선’의 연기설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앞서 이달 초 한미정상회담 ‘4월 성사’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는 6월 개최 예정인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전 조기 개최 방안이 한미 당국간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나 백악관이 애당초 제시했던 ‘5월 내 개최’ 협의 외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지 못하면서 일부에서 추측성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에 앞서 지난 16일 일본 스가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과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로 미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보수경제지의 ‘소설’이 구체화된 측면이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백악관이 나서서 국내 보수언론의 ‘불안 조장’을 종식시킨 꼴이라고 할까.  

보수경제지들이 ‘솔솔’ 지피는 첩첩산중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시 종로구 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지난달 23일 1차 접종을 한 지 38일 만으로,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을 앞두고 접종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차질 없이 한미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된 당일 보란 듯이 백신 접종에 나섰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보건소에서 코로나19 백신 2차 예방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사실 ‘첩첩산중’인 것은 한미정상회담 자체가 아니라 이 같은 언론의 불신 조장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0%가 ‘백신 스와프’를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꼽았다. 반면 지난 26일(현지시간)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0만회 분을 인도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연일 30만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최악의 대유행 사태를 맞은 인도에 최우선으로 백신 지원을 약속한 것은 전 세계 유행과 변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상식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한미간 ‘백신 스와프’가 좌절됐을 때다. 이에 대해 지난 20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 측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긴 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정된 백신을 인도와 같은 국가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백신 불안’에 ‘올인’ 중인 우리 보수경제지들은 또 ‘소설’과 ‘추측’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별 근거도 없이 ‘한미정상회담 연기설’을 지폈던 언론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지 않는가.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