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수급과 관련 ‘이재용 역할론’을 부각했던 언론들이 정부가 추가 계약을 발표하자 불안을 부추기는 보도에 나섰다. 이에 영국 교수는 “백신을 선택해 맞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일침을 날렸다. 

동아일보는 23일 <“이재용, 정부에 화이자 회장 연결해줘 협상 실마리”>란 기사에서 지난해 12월 화이자 백신 협상 상황과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실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인맥에서 풀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24일 <웃돈 줘도 못 구하는 화이자 백신..이재용은 어떻게 뚫었나>란 기사에서 지난해 12월 정부 관계자들이 협상 창구를 확보하지 못할 당시 “답답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사람은 이 부회장이었다고 복수의 정·재계 인사들은 전했다”고 익명의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1일 <절박한 백신 수급..정·재계 “이재용 ‘백신 특사’ 맡기자” 제안>이란 기사에서 “글로벌 인맥을 배경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백신 특사’를 맡겨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24일 화이자 백신 4000만회분(2000만명분)을 추가로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화이자 백신 2600만회분(1300만명분)에 더해 총 6600만회분(3300만명분)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백신 보유 물량은 총 9900만명분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2배 수준이 됐다.

이같은 발표 다음날인 25일 언론들은 <화이자 백신 맞은 70대 아파트 경비원 근무 중 사망..당국 “사인 조사 중”>(동아일보), <화이자 백신 접종 70대 아파트 경비원 사망..당국, 사인 조사>(연합뉴스) 등 자극적 보도를 쏟아냈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중앙일보는 27일 <화이자 맞고 걸어서 집에 온 90세, 통증 호소 2시간 뒤 숨져>라는 선정적 제목으로 보도했다. 해당 기사엔 “정부가 추가계약 하니까 또 화이자 까는 기사 나오네”, “이재용이 뚫었던 화이자라며?”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화이자 백신 추가 계약으로 아스트라제네카(AZ)를 기피하는 움직임도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27일 <화이자 추가 계약하자..'혈전 논란 AZ 안 맞는다' 노쇼 사태>란 기사에서 접종을 예약하고 막상 가지 않는 ‘노쇼(no-show)’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일리안은 같은 날 <“내 세금으로 산 백신, 주는 대로 맞으라? 공산당이냐”..시민들 백신 선택권 요구 ‘봇물’>이란 제목으로 색깔론까지 동원해 보도했다. 

이에 영국 서식스 대학교 케빈 그레이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2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해당 기사를 공유하고는 “국민들이 백신 선택권을 갖는 국가는 어디인가”라고 일침을 놨다. 

그는 “정부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몇 주간 이어진 후 보수언론은 백신을 선택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공산주의냐’라고 한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 <이미지 출처=데일리안 홈페이지 캡처>

케빈 그레이 교수는 앞서 조선일보가 1일 <부럽네요, 백신이 돌려준 영국의 일상>이란 기사에서 AZ 백신 3090만명 1차 접종 후 일상을 되찾은 영국이 부럽다고 보도하자 “한국이 더 낫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레이 교수는 4일 한국과 영국의 일일 신규 확진자수를 비교하며 “조선일보 특파원이 영국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나는 영국보다는 한국에 있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최경영 KBS 기자는 28일 페이스북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에 공지된 백신 접종 시작 후 사망자 수를 소개하며 선진국 언론들은 한국처럼 클릭장사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12월 14일 백신 접종을 시작해 19일 현재 2억1100만회의 백신이 접종됐다고 밝혔다. 이어 백신 부작용 보고 시스템에 신고된 백신 접종 후 사망건수는 3486명으로 백신 접종자 중 0.0016%라고 설명했다. 

최 기자는 “(사망자)숫자 3486명은 꽤 크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라며 “미국은 아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숫자는 거의 모두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 접종 이후 생긴 사망 사고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 언론 보도와 관련 최 기자는 “미국 유수의 신문사, 방송사들은 3486건의 사망 사고를 한국의 일부 언론들처럼 실시간으로 선정적으로 전후 맥락을 은근슬쩍 빼버리고 큼지막하게, 기사 제목을 달아서 (보도해)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오히려 어떻게든 일부 미국인들의 불안감, 불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기자는 “일부 한국 언론의 클릭장사 때문에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서 더 많은 어르신들이 고통 받고 더 많은 자영업자들이 더 오랫동안 곤경에 처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이런 클릭장사하는 언론사들이 질 것인가, 그게 궁금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 경남 밀양시는 27일 오후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가 마련된 삼문동 문화체육회관에서 75세 이상 어르신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