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는데 달라진 게 없다. 보란 듯이 사면을 꺼내 들었다. 1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가진 시장들이 대통령에게 건의할 게 그렇게 없었는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으로 민생이 안정될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익만 추구한다.”

23일 <쿠키뉴스>의 <“이럴거면 표 안줬다”..20대, 사면론에 ‘부글부글’> 기사 속 오 시장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A씨(26·남)의 의견이다. 포털 다음에서만 1만 개 넘는 댓글이 달린 해당 기사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야권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며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에게 큰 지지를 보냈던 20대에선 ‘공감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 <이미지 출처=국민일보 홈페이지 캡처>

A씨 외에도 <쿠키뉴스>가 전한 20대의 목소리는 신랄했다. 취업준비생 B씨(25·여)는 “상식 밖의 발언이 이어졌다. 국민이 왜 광화문에 나갔는지, 탄핵을 지지한 이유가 뭔지 아직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국민이 만든 목소리를 우롱했다. 선거 승리에 취했는지 모르지만, 선을 넘었다”고 꼬집었다. 

또 C씨(23·여)는 “두 사람을 사면한다고 해서 어떻게 국민 통합이 이뤄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외려 국민의힘이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D씨(25·남) 또한 “사면과 국민통합은 별개다. 주위 친구들도 다 사면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20대가 생각하는 사면론과 ‘박근혜 탄핵’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1만 개의 댓글 중 대부분은 ‘국민의힘이 그럴 걸 몰랐느냐’, ‘20대는 그럴 걸 알면서도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냐’와 같은 쓴소리에 치중돼 있었다. 어찌됐든, 해당기사는 4.7 보궐선거 이후 20대의 선택에 대한 수많은 분석이 난무한 가운데 20대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같은 비판 내지 반성(?)의 시각은 당장 정당 지지율로도 반영되는 분위기다. 

여론이, 수치가 입증하는 국민의힘 퇴행에 대한 반발 

한국갤럽이 지난 20∼22일 전국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정례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32%로 1위였다. 지난주 보다 1%p 오른 수치로, 4.7 보궐선거 전후 지속됐던 하락세가 보합세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반면 국민의힘은 28%를 기록, 지난주 30%에서 2%p 하락했다. 한국갤럽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주와 달리 국민의힘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양당 격차가 4%p로 오차범위 내에서 다시 벌어졌다고 풀이했다. 그밖에 무당(無黨)층 28%, 정의당 5%, 국민의당 4%, 열린민주당 2% 순이었다. 사면론을 비롯한 국민의힘의 퇴보와 역행이 영향을 미쳤음이 감지되는 조사 결과라 할 만 하다. 

▲ 2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4월 4주차 정당 지지도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월 3주 대비 1%p 오른 32%로 집계됐다. 양당 지지도 격차는 4%p였다. <그래픽 제공=뉴시스>

“오세훈, 박형준, 서병수, 조해진, 홍문표, 김태흠, 홍준표... 전현직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연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오세훈, 박형준 두 신임 시장도 선거 때는 그렇게 민생을 외치더니, 당선 후 대통령과의 첫 면담에서 바로 사면을 건의했습니다.

심지어 서병수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며 탄핵의 정당성까지 문제 삼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선거 때 ‘민생’이란 말로 포장했던, 하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과업’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23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글)

어디 여당 뿐이겠는가.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의 행보에 대한 비판은 정의당에서도 계속됐다. 이날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최근 국민의힘에서 재보선 민심을 탄핵 부정과 사면 요구의 근거로 둔갑시키려는 망발이 잇따르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즉각 사과하고 당 차원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 대변인은 “이쯤 되면 (탄핵 부정과 사면 요구는) ‘일각’이 아니라 국민의힘 전체의 의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재보선 후 결과에 도취되지 않겠다며 자성하던 국민의힘이 선거가 끝난 지 딱 2주 만에 속내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습에 시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정치권이 박근혜씨 사면을 그 어떤 정치적 거래나 정무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국민적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주호영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최배근 교수의 일침

정치권의 비판 및 지지율 하락은 물론 20대의 회의론까지. 국민들은 안다. 국민의힘에게 ‘민생’이란 선거철에만 필요한 장신구와 같은 겉치레라는 것을. 그럼에도 다수 국민들은 4.7 보궐선거에서 회초리를 들었다. 

스스로가 온 몸으로 입증 중인 국민의힘이 고쳐 쓸 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당을 외면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더 이상 보수야당 비판만으론 여당 또한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준엄하고 명징한 사실을 유권자들이 일깨워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 글에서 “개인적으로는 이와 동시에 ‘공감능력’ 상실과 무책임, 소통의 부재가 오늘날 청와대와 민주당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분석을 내놨다. 풀이하자면, 오세훈‧박형준 시장의 승리가 국민의힘 지지로 귀결되지 않듯이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이 여당에 대한 응원으로 금새 돌아서지 않으리란 전망이었다. 

“내 집 마련의 희망마저 놓아버린 무주택 서민들과 젊은이들의 상실감. 정부, 여당은 얼마나 진심으로 귀 기울여 왔는가? 조만간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정부 말만 믿고 차일피일 주택 구입을 미뤘던 국민들의 분노는, 이제 정책실패를 넘어 정권 불신의 태풍으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보’는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자들보다 공감능력이 큰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타인의 고통과 처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함께하려는 자세. 그 공감능력의 유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던 장면은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국회의 모습이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을 향해 ‘시체장사’ 운운하는 자들이 국회에서 거침없이 말로 된 오물들을 마구 쏟아낼 때, 그 장면을 보고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진보주의자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공감능력 대신, 책임회피와 불통이 자리를 차지했다.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모습. 그래서일까? 조사대상 60%가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여론조사가 지금 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아직 회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

“이럴거면 표 안 줬다”는 20대들도, 빠르게 국민의힘의 오만을 재확인하는 여타 세대들도, 모두 공감하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기대했던 ‘정치 효능감’이 어느 샌가 실종돼 버렸다는 사실 말이다. 

어차피 자승자박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174석을 가진 여당이 앞세워야 할 명제도 하나일 것이다. ‘민생이 개혁이다’거나 ‘개혁이 민생이다’라는 쉽지만 어려운 명제 말이다. 

* 인용된 여론 조사는 지난 20~22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 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전화조사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8%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