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2년 12월28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뉴시스>

“제 입장은 죄의 유무를 떠나서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과거에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전직 대통령도 이렇게 오래 감옥에 있지 않았거든요. 그런 상황 속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있는데 국격에도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죄의 유무를 떠나서 통합적 차원,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저의 평소 생각이에요. 

다만 우리가 요구하는 이런 부분들이 국민들이 볼 때에 어떻게 비춰질지 우려스럽고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죄의 유무를 떠나서 통합 차원에서도 그렇고 옛날 관례적인 그런 부분, 국격 문제 여러 가지 고려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이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보궐선거 이후 불거진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론에 대해 밝힌 소신이다. 3선 의원으로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 의원은 “사실은 저는 사면의 필요성은 과거부터 갖고 있었다”면서 위와 같은 이유를 줄줄이 열거했다. 

참으로 구구절절하다. 오죽하면 ‘관례’에 ‘국격’까지 출몰했다. 듣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죄의 유무 이런 부분들은 떠나서”란 대목엔 어쩔 수 없이 아연실색하게 될 정도다. 

국민의힘 중진들의 사고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날(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가진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역시 사면을 건의했다는 소식이다. 5선인 같은 당 서병수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식적으로 사면론을 수면 위로 올린 이후 국민의힘 내부가 갑론을박으로 들끓는 분위기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이날 말을 보탰다. 

“지금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폐족을 자처하던 노무현 잔여세력들이 뭉쳐 노무현 정권 2기를 만든 것이지 노무현 정권과 차별화 하거나 역사 단절을 외치고 있지 않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과를 안고 더 나은 모습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생각을 해야지 그분들과 역사를 단절 시키면서까지 집권을 꿈꾸는 것은 위선이고 기만입니다.

제가 당대표 시절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건 것도 바로 그런 뜻에서 걸었던 겁니다. 아무리 염량세태(炎凉世態)라고들 하지만 부끄러운 조상도 내 조상이고 부끄러운 부모도 내 부모입니다.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은 이상 단절 되지 않고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 역사 입니다.” (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글 중에서)   

▲ <이미지 출처=JTBC 화면 캡처>

보궐선거 끝나도 여전한 ‘올드보이’ 향연 

헌데 어쩌나. 초선 의원들은 “부끄러운 부모도 내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소위 ‘김종인 체제’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들이나 비교적 젊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 등은 공개적으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피력 중이다.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두 현직 시장이나 힘깨나 쓰는 국민의힘 중진들이 과연 이들 초선 및 당 내 ‘젊은피’의 고견에 귀 기울일 지략을 갖췄을까. 여권 일각에선 이 같은 사면론의 대두를 두고 ‘도로 친박’, ‘도로 새누리당’, ‘도로 한국당’이라고 비판하는 중이다. 

보궐선거 승리 이후 보수야권이 급속도로 오만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 4.7 보궐선거에서 ‘MB맨’들이자 ‘올드보이’들을 앞세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신호는 또 있다. 바로 ‘나경원의 귀환’ 되겠다. 

“국민의힘 새 당대표를 뽑는 당권(黨權) 경쟁은 5선(選)의 주호영 원내대표가 출마 채비에 들어간 상황에서 김웅 의원 등 초선·소장파가 도전하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4선 출신 나경원 전 의원 등판론이 국민의힘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영남당 탈피’를 내걸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영남 출신인 주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서울에서 지역구 의원을 한 나 전 의원이 대항마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초선·소장파 후보인 김 의원이나 이준석 전 최고위원만으로는 주 대행을 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 전 의원 출마설에 힘을 싣고 있다.”

22일자 <조선일보>의 <주호영 대항마로 나경원 출마하나> 기사의 일부다. <조선일보>는 “나 전 의원도 최근 국민의힘 안팎의 중진급 인사들을 잇달아 만나 야권 진로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연합뉴스>도 같은 날 <나경원, 등판 고심…野 당권레이스 지형 요동치나> 기사에서 “국민의힘의 당권레이스에 ‘나경원 변수’가 떠올랐다”며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나 전 의원의 무게감에 힘을 싣는 국민의힘 관계자 및 당직자의 인터뷰를 전했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의 무게감이 부족해서일까. ‘김종인 체제’의 종식 이후 별다른 대선주자 없는 국민의힘의 고질병이 또 다시 드러나는 걸까. 보수언론이 4.7 보궐선거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나 전 의원을 이처럼 재빨리 소환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의 리더십 실종이나 인물난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지난 4월 1일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을 찾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보궐선거 승리’는 국민의힘이 잘해서? 1.5%만 찬성할 만  

“지난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인 결과가 나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부동산값 안정 실패가 22.1%, LH 사태 등 공직자 투기 문제가 18.9%로 10명 중 4명은 부동산 문제로 여당이 패했다고 봤습니다. 그 뒤는 조국 전 장관 문제나 이른바 ‘추윤 갈등’ 등의 원인이 이었습니다.

반면 야당이 잘해서 여당이 패한 것이란 응답은 3%도 안 됐습니다. 구체적으론 국민의힘이 야당 역할을 잘해서 이겼단 답이 1.5%, 후보들이 잘해서란 응답이 1.3%를 기록한 겁니다. 특히나 보수성향 응답자들 중에서조차 국민의힘 측 잘했다고 평가한 건 4%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념성향을 떠나 이번 국민의힘의 압승이 반사이익에 따른 것이란 데 생각이 모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지난 19일 JTBC <뉴스룸>의 <냉정한 4·7 민심…“야당이 잘해서” 응답 3%도 안 돼> 보도 중 일부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야당이 잘해서 이겼단 응답이 1.5%, 후보들이 잘해서는 1.3%의 응답률를 보였다고 한다. 숫자를 다시 보시라. 15%나 13%가 아닌 1.5%, 1.3%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사면론을 꺼내들었고, 나 전 의원과 같은 ‘올드보이’의 귀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중이다. 국민 여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싸늘한 보수야권에 대한 비호감도를 외면하겠다는 듯. 이런 제1야당이 사면론 운운하며 국격을 들먹인다. 같은 2021년을 살고 있는지 심히 의문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