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일 전 비서와 허위사실을 최초로 SNS에 올려 사태를 촉발한 신 모 당원을 정의당 당기위원회에 제소할 것입니다. 면직의 정당성 여부와 함께 이들이 한 행동에 대해 당의 판단을 구하겠습니다. 특히, 신 모 당원은 당과 저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여론의 조롱을 유도해 당원 지지자에 큰 상처를 줬습니다. 형사 고소를 통해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수행의 업무를 담당한 비서가 꺼내 놓을지 모를 제 사적 치부를 겁내지 않겠습니다. 기반이 약한 정치인의 약점을 캐내어 자신의 실리를 탐하는 비겁한 공작에 놀아나지도 않겠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무엇을 쓰고, 말하고, 퍼뜨려 저를 비방하는 일에 엄중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명백한 경고다.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경고일까. 현직 국회의원이 전 수행비서에게 “응분의”, “엄중한”이란 표현을 써가며 “법적 책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행비서 면직 논란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 얘기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사진제공=뉴시스>

위와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한 류 의원은 그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해당 논란을 공론화시킨 전 비서 A씨와 또 다른 당원의 행위를 “명백한 해당행위”로 규정하며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갔다. 

지난달 29일 면직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면직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실수가 있었다”며 “면직 사유는 ‘업무상 성향 차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줄어들지 않자 법적 대응을 거론하며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간 당사자와의 면담 등 진상 조사 및 조정 절차를 진행했던 정의당도 이날 정호진 수석대변인을 통해 “(해당 비서가) 당기위 제소 의사를 밝혔다”며 “당기위 절차를 통해 시비를 가릴 것”이라고 밝혔다. 

면직 절차에서 면직 사유로 

그 과정에서 전 비서 A씨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해 나갔고, 한 진보매체가 면직 사유서 등 당초 A씨와 류 의원 측에서 외부에 유출하지 않기로 한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설전을 더 키운 꼴이 됐다. 면직의 과정 및 절차가 문제시됐던 애초 논란이 A씨의 해고 사유 등으로 번진 것이다. 

입장문을 통해 류 의원은 “저를 둘러싼 논란에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해고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자신의 비서를 부당해고했다는 황망한 프레임에 갇힌” 것을 두고도 “저의 불찰”이라며 해당 사안이 부당해고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국회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국가공무원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류 의원은 운전 업무를 주로 보던 수행비서 A씨의 면직 전 행태를 자세히 열거했다. 류 의원이 언급한 구체적인 비위 내용은 주행 중 SNS 글 게시 및 채팅, 잦은 졸음 및 지각, 업무용 차량으로 3개월 간 교통법규 12번 위반, 개인 용무에 업무 차량 활용, ‘국회의원 면책특권’ 운운 등등 이었다. 

아울러 류 의원은 지난한 과정을 면직 과정을 설명하는 한편 이번 사태가 크게 번지는 과정에 정의당 전국위원인 A씨가 “혼자서 끌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부당 해고 노동자’임을 내세웠던 류 의원이 “부당해고에 관한 법적 판단은 구할 길이 없다”며 이런 해결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전 비서는 어제 글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것처럼 피해자가 아니라 정치인입니다. 정의당의 전국위원입니다. 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원과 다투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공방에는 기꺼이 대응하겠습니다.”

반면 A씨 역시 이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류 의원의 입장에 반박하는 의견을 개진했다. A씨는 “이 사건의 초점이 오독되고 오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며칠 전까지 당원의 입장으로 당과 의원실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론화를 피했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후에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했다”며 당과 류 의원에게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당은 김종철 전 대표의 사건을 겪으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쳤습니다. 많은 이들이 동의했고 정의당은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성을 침잠 당한 이 사건에 피해자 중심주의가 있습니까? 저는 가해자 또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류호정 의원은 지금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서 국회의원이 되셨습니까? 아니면 피해자를 지지하고 그편에 서 있었기에 국회의원이 되셨습니까? 저는 복직을 원하지 않았고, 합의금 따위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그런 싸구려 가치는 필요 없습니다. 또한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해고노동자의 프레임따위가 왜 거론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필 6411 버스 취재에도...  

“국회에선 이스타항공 임금체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5분만 버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마스크가 답답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이분들이 바라는 건 큰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작년 7월 <뉴스1>의 <[르포] 노회찬 2주기 새벽 첫차 6411번… “코로나보다 생계가 더 무섭죠”>란 기사 속 류 의원의 말이다. 해당 기사는 “이날 버스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함께 탔다. 류 의원은 오전 4시 구로동 거리공원 정류장부터 버스가 회차할 때까지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며 위와 같은 류 의원의 소감을 전한 바 있다. A씨는 반박문에서 당시 본인이 류 의원을 수행했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실제로 저는 30Km 떨어져 있는 의원을 태우기 위해 집에서 5시 10분에 출발해 6시까지 도착하였다. 한 번은 새벽 첫차 6411번 버스를 타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전날은 술자리 등이 있지 않아 퇴근시간이 12시 전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퇴근 후 갑자기 전화가 왔고, 6411번 버스 4시 첫차를 위한 수행을 부탁했다. 그래서 저는 2시간밖에 자지 못할 것 같아 집에서 씻고 바로 의원 집 앞에서 대기하며 수행을 하였다. 저에게 잦은 지각을 해고이유로 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유다.”

▲ <이미지 출처=뉴스1 홈페이지 캡처>

하필 류 의원이 고 노회찬 전 의원을 통해 회자됐던 ‘6411번 새벽 첫차 버스’ 관련 취재에 응하면서 자신의 수행비서의 노동 시간은 배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 과정에서 류 의원이 ‘해고 노동자 출신’ 임을 강조한 것에 빗대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송곳>의 명대사를 길어 올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A씨는 4일 매체 인터뷰에서 “해고노동자 출신인 류 의원이 해고 이유가 노동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싸워온 전형적인 사측 입장이 아닌가”라며 “류 의원은 이번 문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애초 면직 과정의 절차적 문제가 논란된 가운데 류 의원이 면직에 이르게 된 A씨의 행위들을 소상하게 밝히면서, 당내 해결을 넘어 법적 절차를 밟기로 한 류 의원의 선택이 최선이었는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김 전 대표 사건에 연이은 논란으로 정의당이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란 사실이다. 

4일 정의당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의 쇄신을 넘어 당 내에서 재창당 요구까지 나온 만큼 강수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정의당이 김 전 대표 사건에 이어 이번 류 의원과 A씨 간의 공방은 또 어떻게 수습할지, 그 결과가 정의당 지지자들은 물론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도록 하자.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