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에 벌써부터 고위 공직자 관련 사건 제보들이 밀려들고 있는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공수처는 아직 김진욱 공수처장 외에 조직 구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고질적인 고소·고발 남발의 병폐를 공수처도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현판식이 열리자마자 공수처 사무실로 각종 고위 공직자 관련 고소·고발 우편이 수십통씩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검사·판사 등 고위 법조인들에 대한 불만,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 대한 비판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조선일보>의 <문 열자마자...고위 공직자 사건 제보 쏟아지는 공수처> 기사의 서두다. 기사 내용대로라면, 이제 갓 출범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얼마나 큰지, 또 그간 쌓인 고위층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만한 현상이라 할 만 하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인사청문회 당시 김진욱 공수처장 역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수사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쓴 <조선일보> 법조팀 박모 기자는 이런 어지간히 불만이었든 싶다. 출처가 불분명한 법조계의 부정적인 의견을 따옴표까지 붙여 “고질적인 고소·고발 남발의 병폐를 공수처도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한 걸 보면. 

또 다른 <조선일보> 기사도 공수처의 긍정적 행보를 전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단독’을 붙인 28일자 <공수처, 외부인 참여하는 ‘사건평가위’ 만든다>란 기사가 그랬다. 해당 기사는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대학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수처 산하 ‘사건평가위원회’를 만든다는 내용의 내부 규칙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런 내용을 전했다. 

“공수처가 외부인이 참여하는 ‘사건평가위원회’(가칭)를 만들어 특정 사건의 수사와 기소, 이첩 요구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대검 산하 수사심의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출범 전부터 제기됐던 공수처의 수사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을 줄이기 위한 차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사건의 수사 개시 및 기소 전에 미리 이 위원회에 사건 검토를 맡겨 그 ‘검토 의견’을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어떠한가. ‘고질적인 고소·고발 남발의 병폐’를 거론하며 현판을 단지 며칠 되지 않는 공수처의 미래에 재를 뿌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조선일보>와 달리, 적어도 공수처의 시작은, 그 의도와 외양 모두 그럴싸해 보이지 않은가. 이런 공수처 출범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피력한 이가 있었다. 바로 27일 퇴임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이었다. 

퇴임한 추미애 장관의 1년 소회 

“‘인권, 민생, 법치’,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리 앞에 놓인 법무 혁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과연 국민의 눈높이를 모두 충족했는지 겸허히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법무가족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지체되었던 법무혁신과 검찰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는 점입니다.

우선 문재인정부의 1호 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이뤄냈고,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법제도적 측면에서 확고한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인권·민생 중심의 검찰권 행사를 위해 형사·공판부를 강화하고, 수사절차에서 국민의 인권이 두텁게 보장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년 임기였던 만큼, 추 장관은 퇴임사 중 검찰개혁의 기틀을 함께 마련한 이들에게 공을 돌리는 등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국민의 성원’과 ‘법무가족 헌신적인 노력’을 언급한 뒤 “검찰개혁의 소임을 맡겨주시고 끝까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문재인 대통령님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검찰개혁의 마중물이 되어주신 박상기, 조국 전 장관의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문 대통령과 전임 두 장관을 언급한 것이다. 

물론 다수 언론은 여전히 ‘추‧윤 갈등’ 프레임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 장관 역시 퇴임사의 핵심으로 “그동안 이뤄낸 법제도적 개혁을 발판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 등 검찰개혁을 완결지어야 한다”며 거듭 검찰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70년 기형적으로 비대한 검찰권을 바로잡아 형사사법체계를 정상화시켜가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거듭 당부 드리지만, 이제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며 이를 통해 검찰은 정의와 공정의 파수꾼이자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은 검찰의 저항에 대해 “개혁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소란도 있었지만, 정의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의 도도한 물결은 이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다수 언론은 이를 두고 마지막까지 추 장관이 검찰을 비판했다는 논조를 보였다. 과연 그런 논조로 충분할까.  

그리고, 윤석열 총장의 무소불위 행보 

추 장관이 퇴임사를 읽어 내려가던 바로 이날 오후, 검찰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를 압수수색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출국금지 위법 의혹’ 수사와 관련해 언론이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지목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 같은 날 검찰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이른바 '채널A 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했다. 이번이 무려 세 번째였다. 그리고 28일, 서울중앙지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업무방해)로 최 대표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묻지마 수사권’의 힘이 제대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를 받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어쩔 도리 없이,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어록’이 다시금 길어 올려 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퇴임하는 추 장관은 법무부를 나서며 눈물을 보였지만, 이에 질세라 윤 총장은 무소불위의 수사권을 휘두르며 ‘검찰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윤 총장과 인사를 협의해 나갈 의향을 내비친 박범계 신임 법무부장관이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일보> 등 보수‧경제지의 공격에 시달릴 공수처가 검찰을 제대로 견제해 낼 수 있을까. ‘추미애 1년’은 끝이 났지만, 검찰개혁 시즌2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해 보인다.  

▲ <이미지 출처=YTN 화면 캡처>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