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으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폭로와 처벌이 이어졌다.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문화예술·체육·종교계 등에서 겉으로는 ‘정의’ ‘민주’ ‘인권’ ‘여성’을 내걸면서 뒤로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위선과 민낯이 드러났다. 하지만 오 시장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늘(24일) 조선일보 사설 <부산시장의 추한 퇴장과 총선용 ‘사퇴 공증서’> 가운데 일부입니다.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문제를 다뤘습니다.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은 ‘죄질’ 면에서 최악의 조건을 다 갖췄습니다. ‘코로나19’라는 비상상황에서 업무 시간에 그것도 집무실에서 여성 공무원을 불러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며 성추행했기 때문입니다. 권력 관계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이라는 얘기입니다. 

▲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오거돈 시장 성추행 … 권력 관계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 

일부 언론을 통해 지적됐지만, 오거돈 시장의 기자회견은 사과를 빙자한 ‘변명’에 가까웠습니다. 

오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피해 여성에게 사죄한다”고 하면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 “경중에 관계없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거니와 성추행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입니다. 

마치 본인이 저지른 성추행은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자신은 그럼에도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식의 ‘오만함’과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동아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성추행 한 당일 오후 3시 접견실에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들을 불러 성금 전달식을 열기도 했다고 하니 그 ‘이중성’에 충격을 받은 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을 기성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강하게 질타하는 것 – 당연히 이해되고 그래야만 하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일부 언론이 여전히 ‘부적절한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단체나 성폭력상담소 등이 성폭력·성희롱과 관련한 보도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표현 가운데 하나로 ‘몹쓸 짓’을 언급했는데 오늘(24일) 조선일보가 ‘문제의 표현’을 또 사용했습니다. 

조선일보 오늘(24일) 3면 기사 제목이 <오거돈, 이달초 면담하자며 직원 호출… 집무실서 5분 몹쓸짓>입니다. “몹쓸 짓”이나 “짐승” “더러운 욕망”과 같은 표현은 사실 그동안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언론이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 같은 표현이 ‘성폭력 범죄를 희화화하거나 사소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과거에 비해 사용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이른바 ‘미투 보도’ 이후 한국기자협회도 반성하는 차원에서 2018년 6월 여성가족부·여성노동지원법률센터와 함께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자에는 ‘몹쓸 짓’과 같은 표현을 쓰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의 ‘관행적 성폭력 보도’ … 왜 이렇게 바뀌지 않나 

그러나 조선일보는 오늘도(?) 지면에서 관성적으로 써왔던 ‘몹쓸 짓’이라는 표현을, 그것도 제목에서 큼지막하게 썼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오 시장은 ‘불필요한 신체접촉’이라고 했지만 노골적인 성추행이었다”고 비판했는데 이 문장 조선일보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네요. ‘몹쓸 짓’이 아니라 그냥 ‘성추행’입니다. 관성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네요. 

또 하나는 ‘성추행·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가해자를 상대로 강도 높은 비판을 하죠.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만 하더라도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문화예술·체육·종교계 등에서 겉으로는 ‘정의’ ‘민주’ ‘인권’ ‘여성’을 내걸면서 뒤로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위선과 민낯이 드러났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언론은 어떤가요. 제가 어제(23일)도 지적했지만 이른바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연루된 기자에게 징계를 내린 곳은 현재까지 한국일보 외에는 없습니다. 

기자‧PD 등 언론사 관계자 수십 명이 휴대폰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모여 불법 촬영물과 음란물 등을 비롯해 성매매 정보나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사설 정보지를 공유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 사안 자체가 매우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보는데 검찰은 이들에 대해 대부분 ‘무혐의·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사실 검찰도 이해가 안 가지만 해당 언론사들의 ‘침묵’과 ‘무대응’은 더 이해가 안 갑니다. 

▲ <이미지 출처=미디어오늘 홈페이지 캡처>

‘기자 단톡방 사건’에 침묵한 언론 … ‘오거돈 시장’ 질타하는 언론, 지독한 이중성

특히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는 조선일보 사진 기자도 연루가 됐죠. 하지만 해당 기자는 기소 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조선일보는 해당 기자에게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지를 묻는 미디어오늘에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어제(23일) 고발뉴스 <언론자유지수 42위, 한국 언론의 윤리지수는?>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일보를 제외하곤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대해 응답하는 언론사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치부’에 대해 쉬쉬하며 넘어가는 언론이 다른 부문에 대해선 ‘교과서적인 기준과 잣대’를 들이댄다”면 어떻게 될까요. ‘언론 너나 잘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거돈 시장 성추행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에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언론계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 언론은 얼마나 교과서적인 기준을 적용했는가 – 이 질문 정도는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마치 자신들은 ‘이런 사안’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옳은 소리’ 하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솔직해 말해 ‘천박한 성인지 감수성’은 언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것부터 제대로 인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