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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자칭 ‘민족지’ 조선·동아의 정체, 영화로 밝혀진다[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483]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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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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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1  16:21:53
수정 2020.04.11  16: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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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두 신문은 그동안 스스로 민족지임을 내세웠다. 즉 자신들은 지난 100년 동안 민족을 위한 언론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조선·동아 100년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13편의 리포트를 게재했다. 취재 이야기와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7일 서울 충무로역 인근 뉴스타파 <함께> 센터에서 다큐를 준비 중인 박중석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 <사진=KBS 제공>

조선‧동아의 100년, 자화자찬 일색.. 다큐로 재평가

- 조선·동아일보 100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시면서 지난달부터 리포트를 공개하고 있는데 반응은 어때요?

“화끈하길 원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언론 개혁을 원하고 조선과 동아뿐만 아니라 언론 생태계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시민들이 꾸준히 13편의 보도를 보시고 응원도 해주시고 여러 가지 의견도 주셨던 거 같아요.”

- ‘코로나19’ 영향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거예요. 사실 저희가 당초 조선·동아 창간 100년을 맞아서 영화작업 해서 3월 말에는 개봉하려고 했죠.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제작 방향이 바뀌었어요. 조선 창간일은 3월 5일이고 동아 창간일은 4월 1일이잖아요. 개봉이 당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이에 두 신문의 지난 100년간 행적들을 평가하는 내용을 먼저 연작 리포트로 방송을 하고 그 이후에 그걸 토대로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하겠다고 일종의 ‘투트랙’으로 진행하게 된 거예요.”

- 그럼 언제부터 준비하셨어요?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죠. 저희는 일종의 기록이라고 봤는데요. 조선과 동아가 지면에도 나와 있지만, 자화자찬 일색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난 100년간 신문사가 없어지는 형국에서 지난 100년간 버텼다는 것 자체는 평가할 만 해요. 다만 조선과 동아가 스스로 얘기하듯이 온갖 칭찬 일색이어서 다른 평가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조선 동아의 영향력이라는 게 여전히 막강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조선 동아의 평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지점들을 해 보자는 거죠.

크게는 지난 100년간 조선, 동아가 일제 강점기 시기와 또 독재 시기에는 어떤 식으로 지면을 내왔고, 어떤 식으로 한국 사회에 입장을 표명했는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일종의 지면 추적이고요. 또 하나는 스스로 90년대 이후에 언론권력화 되잖아요. 언론 권력으로 조선과 동아의 실체는 무엇인지, 이런 두 가지 측면으로 취재를 진행했죠.”

- 어디서부터 시작하셨어요?

“앞서 얘기한대로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 했고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친일 독재 부역의 역사 즉,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기에는 두 신문이 일제와 독재정권에 어떻게 호응하면서 부역해 왔는지 그런 측면들을 먼저 좀 다루기 시작했고요.”

   
   
▲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다큐 영상 캡처>

일제강점기~독재정권 시절, 조선‧동아 어땠을까.. 새로운 사실 ‘확인’

- 왜 그걸 먼저 찾았어요?

“저희는 시기적으로 쭉 봤던 거예요. 1920년 창간 이후로 일제 강점기 1940년 폐간 때까지 어떤 기사를 써 내려갔는지 많은 사람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굉장히 많거든요. 새로운 사실도 확인됐고요. 그것부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에 복간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정권 시기에는 어떤 식으로 신문 지면을 내놨는지. 조선과 동아라는 게 100년 동안 끊임없이 지면을 내놨잖아요. 그 지면을 확인하고 찾는 거부터 시작한 거죠.”

- 분량이 많았을 것 같은 데 힘들진 않았나요?

“힘들지는 않았고요. 자료들을 확보하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요즘은 지면이 다 PDF 파일 형태로,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 있는 데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절차들 그리고 지면에 한자가 많기 때문에 요즘 젊은 기자들 같이 한자를 몰라 다소 좀 어려웠는데 그 외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컬러로 찍어냈다는 게 충격적이던데.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놓은 것을 전수조사에서 11번 정도라는 걸 확인했잖아요. 그게 1940년 일제로서는 중요한 시기마다 조선일보가 11번이나 제호 위에 일장기를 새겨 넣었어요. 과연 붉은색으로 컬러 인쇄했는지 확인을 해야 되는데 사실 그게 확인이 쉽지 않았어요. 왜냐면 조선일보 측에서는 협조를 안 했고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통해서 확인해 봐도 대부분 마이크로필름이나 흑백 PDF로 되어 있어서 이게 과연 붉은색 컬러로 인쇄되어 있는지는 확인이 쉽지 않았거든요.

원본을 확인해야 되는 데 일부 언론학자들이나 언론계에서는 ‘붉은색으로 했을 것이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왔어요. 실제 확인을 해야겠다고 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다행히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연구원이라는 연구기관인데요. 거기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제 강점기 발행했던 신문 원문을 수집해 보관 중이었거든요. 다행히 40년 1월 신문 원본 자료가 있었어요. 거기에서 조선일보 제호 위에다가 컬러로 인쇄했다는 걸 지면으로 처음으로 확인했죠.”

   
▲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다큐 영상 캡처>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 제호에 붉은 일장기 ‘컬러’ 인쇄

- 컬러로 인쇄한 의미는 뭔가요?

“지금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리고 소문으로만 있는 걸 직접 육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고요. 또 하나는 간헐적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나 혹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신문들에서는 제호 위에다가 붉은 일장기를 컬러 인쇄했다는 건 알려져 있었어요. 그러나 자칭 민족지임을 내세우는 조선일보가 붉은색으로 인쇄해서 일장기를 올려놨다는 걸 처음 확인 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죠. 왜냐하면 스스로 민족지임을 내세우는 조선일보가 일제에 충성했다는 상징적인 측면도 있고요. 또 그들이 일제강점기 시기에 얼마나 반민족적 행위를 저질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표라고 생각하거든요.”

- 왜 1940년에 했을까요?

“그건 저도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요. 왜냐면 (두 신문의 지면이) 1937년도부터 확실하게 변해요. 37년 상황이 어떤 거냐면 두 신문의 지면 변화에서는 36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데요. 하나가 뭐냐면 당시 36년도는 중일 전쟁 시기였고 일제 군부 실세였던 미나미 지로 총독이 부임해요. 그리고 동아일보가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36년 8월부터 무기한 정간을 당하거든요. 더구나 일제는 중일전쟁이라는 침략 전쟁을 본격적으로 앞두고 후방 병참기지화 그리고 총동원 체제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한글 신문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도 강한 압력을 넣었을 거예요.

그래서 37년부터 조선일보에서는 일왕 부부 사진이 정 중앙에 배치되고 37년 정간 중이었던 동아일보가 38년 1월 1일부터 신문 1면 지면에 총독부 기관지처럼 일왕 부부 사진을 전면으로 내 걸기 시작하거든요. 그 형태는 이제 40년 폐간 때까지 계속 진행되는데요.”

- 그럼 동아일보는 없었나요?

“동아일보는 제호 위에 일장기를 새기는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일왕 부부 사진을 1938년 이후로는 매년 올린 거죠.”

-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이 동아일보의 항일 사건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과 다른 거 같아요.

“일장기 말소 사건은 동아일보 항일 운동의 상징인 걸로 나타나고 있어요. 다만 그 행위가 누가 했느냐 그게 중요해요. 사실은 일부 기자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거거든요. 그 결과 당시 동아일보 기자 13명이 해직돼요. 유명한 소설 작가 현진건이 사회부장 시절이었거든요. 간부들과 상관없이 현진건 사회부장과 이길용 체육부 기자 등 젊은 기자들의 의기로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 한 거거든요. 그 후 13명이 해직되어 동아일보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쫓겨난 거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당시 (사측인) 송진우나 김성수는 ‘그냥 잘못된 거다. 우리와 상관없고 젊은 기자들이 한 것이다’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나 이게 훗날 지나고 보니 마치 동아일보 항일운동의 어떤 기념비적인 사건이 됐어요. 사주 본인들이 업적으로 둔갑시켜 버린 거죠.”

- 동아일보는 74년 이전엔 야당지라는 평가를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박정희 정권에서 정부 비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거죠?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100번 다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에요. 100번 중 10번은 잘할 때도 있어요. 이승만 체제에서는 동아일보가 야당지로서 역할들을 많이 했어요. 그게 60년대까지 이어져 가요. 근데 그 과정에서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박정희가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사주 일가가 유착하기 시작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는 거죠.”

   
▲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다큐 영상 캡처>

조선이 자칭 ‘1등 신문’ 된 배경.. 전두환 정권과의 유착

- 조선일보는 N분의 1 이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우리나라 1등 신문이 됐나요?

“기사에서 저희가 밝히고 많은 학자가 얘기한 것처럼 사실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자칭 1등 신문이 된 거거든요. 그리고 그 1등 신문이 되는 데에는 조선일보 자체의 노력이 없지 않아 있었겠죠. 예를 들어 편집이라든지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크게 작용했던 것은 전두환 정권과의 직접적인 유착과 결탁이 가장 컸죠. 그렇게 보는 게 아마 정확할 거예요.

대표적인 게 방우영 사장이 당시 국보위 입법위에 참여하게 되고요. 국보위 입법 위원은 서울 지역에 있는 중앙 신문사의 사주로서는 유일한 거였거든요. 그리고 그 시기에 수많은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기자들이 정치권력으로 많이 진출해요. 신군부와의 결탁 속에서 조선일보가 80년대 중반 이후의 급성장 하면서 1등 신문이 된 거죠.”

-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일보 100년 축사를 통해 조선일보를 항일 투쟁한 민족 정론지라고 추켜세웠잖아요. 축사라지만 그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일보 창간 기념일과 동아일보 창간 기념일에 축사를 보냈죠. 조선일보에는 ‘반일민족주의 앞장섰다’, ‘해방 후에도 국민의 곁에 있었다.’ 그 다음에 ‘높은 분단 극복 의지를 보였다’는 내용의 축사를 보냈고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축사의 내용은 조선과 동아가 걸어 온 지난 100년의 역사를 비춰봤을 때 상당히 배치되는 내용이거든요. 제가 앞서 얘기한 대로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배치하고 천황폐하로 일제 충성도 다짐하고 특히 조선일보는 제호에 일장기를 붉은색으로 컬러 인쇄하기도 하고 조선의 청년들을 침략전쟁에 내 몰기도 하고 또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하에서는 독재정권과 유착하면서 민주화운동 세력은 좌경용공 세력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수많은 북한 관련 오보를 내면서 남북 간의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도 하고 또 반노동적 기사를 썼거든요, 과연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축사를 어떻게 볼 거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축사라는 게 그 성격상 과보다는 공을 부각시키기 마련이기는 해요. 왜냐면 누군가의 생일상 자리에 칭찬할 수밖에 없지 거기 비판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공식적인 발언이고 신문 지면에도 등장하고 있기에 사실은 역사 왜곡에 빌미를 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해요.”

   
▲ 지난 3월 4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축사 영상. <사진출처=뉴시스, 조선일보 유튜브 영상 캡처>

“文대통령 축사, 조선‧동아 개혁 필요성 역설적으로 보여줘”

- 문 대통령 역사 인식의 문제인가요?

“인식까지는 제가 정확히 모르겠어요.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조중동에 각을 세우고 언론개혁을 한 대통령이었고 그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이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동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제가 깊게 생각할 수 없겠지만 사실은 그런 칭찬에 대한 축사이기에 상찬하고 칭찬하는 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에요.

다만 그런 점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두 신문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는 거죠. 대통령으로부터 축사를 이끌어내고 그 축사의 상찬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아직도 조선과 동아가 한국 사회에서 1, 2등 신문임을 보여주는 거예요. 거꾸로 보면 문 대통령 축사야말로 역설적으로 ‘조선 동아를 바꿔야 된다’ 그리고 ‘한국사회 언론 생태계에 전반적으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다큐 영상 캡처>

“동아, 일부 기자들의 의로운 행동 사주 업적으로 둔갑시켜”

- 취재과정에서 느낀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아까 그 동아투위 위원 중 박종만 위원이 당시 해직당하고 78년엔 민권일지 사건으로 구속돼서 유신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구금도 돼 있었는데요. 그분이 그런 말을 해요. 동아일보는 참 남다른 재주가 있대요. 앞서 얘기한 대로 일장기 말소사건이나 언론자유수호실천선언 등은 젊은 기자들 혹은 뜻 있는 일부 기자들의 의로운 행동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슬쩍 사주의 업적인 것처럼 그렇게 둔갑시키는 재수가 있다라는 표현을 해요.

또 하나는 긴급조치위반으로 동아일보 해직기자 10명이 구속된 게 죄 아닌 죄였거든요. 어떤 거냐면 서울대 학생들이 혹은 다른 대학 학생들이 유신독재 데모를 했다거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탄압에 맞서 싸우거나 농민들이 농민운동을 했다는 걸 간략히 적은 것 때문에 감옥에 간 거거든요. 30대 초반에 그분들이 겪은 고초도 고초였지만 유신 법정에서 독재자와 동아일보 사주를 향해 당당하게 때로는 일을 하면서 언론자유와 그리고 독재의 부당성 이런 것들을 떳떳하게 이야기한 그분들의 육성을 들으면서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어서 그분들이 새삼 존경스럽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저 자신도 추스르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영화를 만들어야겠죠. 이제 영화 작업을 해야 되는데 아직도 취재할 게 굉장히 많아요. 특히 언론 권력으로서의 조선과 동아의 모습, 그로인한 폐해 이런 것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싶고 이를 통해서 일종의 기록을 남기고 싶거든요. 특히 조선과 동아가 자칭 1등 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전혀 다른 평가가 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고요.

또 하나는 전반적으로 조선, 동아 100년을 맞아 그들의 정체를 해부하는 다큐를 만들겠다고 공표했는데 조선, 동아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조선, 동아 100년을 통해서 언론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제대로 쓴 기사가 무엇인지 조명하려는 거죠. 최근 ‘기레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제대로 된 기사가 어떤 건지, 정말 이 시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복무해야 되는지, 또 그것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이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해 보고 모색해 보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신문 이야기’를 다룬 저희 영화가 바로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미지 출처=뉴스타파 다큐 영상 캡처>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지금 4·15 총선이 다가오고 있고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어수선하죠. 경기도 좋지 않고요. 그런데 저는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한 가지를 좀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에서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도 굉장히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언론과 언론 생태계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좀 해 봐요. 그런 점에서 뉴스타파도 노력하겠지만 <GO발뉴스> 역시 언론 개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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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라임사건에 尹의 운명 걸려있다며 강기정 잡으라 했다”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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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총장 수사 사상초유’라는 언론.. 전우용 교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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