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공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필 메시지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던 국민에게는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그리고 국민의 기대를 능가했다.” 

지난 10일 조선일보 33면에 실린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의 칼럼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93] 옥중 서신>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제가 이 칼럼을 뒤늦게 정독했는데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칼럼’이 창간 100주년을 맞은 자칭 1등 신문에 그대로 실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박근혜 서체가 소박하면서 순수함과 진정성이 배어나는 글씨라는 서지문 교수

무엇보다 고려대 명예교수라는 직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서지문 교수는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찬양했습니다. 뭐 이것도 백번을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는 건 민망합니다. 그것도 많이. 

“우선, 그 글씨는 소박하면서 순수함과 진정성이 배어나는 글씨였다. 신뢰를 고취하고 공감이 우러나게 하는 글씨가 명필이라면 박 대통령의 서체가 바로 명필이 아니겠는가.”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언급한 것은 단순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 해도 ‘신뢰를 고취하고 공감이 우러나게 하는 글씨’ 운운하는 대목은 정말이지 ‘닭살’을 돋게 만듭니다. 신문 칼럼을 읽으면서 ‘닭살’이 온몸에 퍼진 것 – 정말 오랜만인 듯 합니다. 

문제는 뒤로 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는 겁니다. 그냥 글씨가 명필이고 신뢰와 공감이 우러난다 정도로만 끝냈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서 교수는 여기서 그칠 태세가 아닙니다. 한 발 더 나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의, 필설로 표현 못 할 불편함과 괴로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이 국가적 위기에서 나라를 바로잡아 달라는 대국민, 대야권 호소만 담았다. 그것도 지극히 절제된 완곡 화법으로. 그동안 받은 흉악한 모욕과 모략과 극도의 신체적 고통이 박 전 대통령의 영혼을 부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고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극히 절제된 완곡 화법’이란 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것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받은 흉악한 모욕과 모략과 극도의 신체적 고통이 박 전 대통령의 영혼을 부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고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서 교수가 아니라 조선일보를 향해 의문 부호가 찍히더군요. 

대체 ‘이런 칼럼’을 그대로 실은 이유가 뭘까. 조선일보는 서 교수가 언급하고 주장하는 부분에 공감하고 동의한다는 걸까. 저는 해당 칼럼을 정독하며 읽기엔 많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데 조선일보는 왜 이런 수준의 칼럼을 ‘기명’으로 싣는 것일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낭독 기자회견을 끝내고 취재진들에게 서신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의 옥중 상황과 넬슨 만델라의 옥중 투쟁이 동급? 

이 칼럼의 가장 큰 압권은 박 전 대통령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갑자기’ 아니 ‘난데없이’ 넬슨 만델라를 들고 나왔다는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옥중 상황과 넬슨 만델라의 옥중 투쟁’을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보시죠. 

“근대사의 가장 유명한 수인(囚人)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시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난은 어떤 사람은 망가뜨리지만 어떤 사람은 승화시킨다. 어떤 도끼도, 최후에 마침내 자신을 극복하고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은 찍어 넘기지 못한다고.”

칼럼이 후반부로 가면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세히 인용하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인데 잠깐 한번 보실까요? 

“박 전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긴 침묵을 깼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여당과 주변 세력들이 박 전 대통령의 품위 있고 절제된 호소에 대해 옥중 정치를 하느냐, 자신의 죄를 참회나 하라 등의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서지문 교수는 ‘품위 있고 절제된 호소’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자신이 쓴 ‘이 칼럼’이 얼마나 품위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제된 호소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는지 말이죠. 

칼럼 후반부 ‘몇몇 문장’은 사실관계도 불분명할뿐더러 제가 보기엔 거의 ‘막가파 수준’의 문장을 나열한 수준입니다. 

어떻게 명예교수라는 분이 이런 ‘거친 칼럼’을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지만, ‘이런 칼럼’을 그대로 싣는 조선일보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듭니다. 혹시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문제의 문장 몇 개’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박근혜 재임 중 형사적 책임을 물을 불법행위가 전무했다고? 

“우리나라는 수인에게도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에는 소통 부족 등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지만 형사적 책임을 물을 불법행위는 전무했다. 현 정권의 말 못 할 국정 농단과 무수한 실정과 비교하면 박 전 대통령 수감의 부당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죄스러워해야 할 여당 인사들이 꼭 김여정 수준의 어휘로 박 전 대통령 서신을 비난한다. 김여정 팬클럽 회원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인가?”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