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뉴스닷컴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영면 전날 본 이용마의 눈빛, 자꾸 생각나요”[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406]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 0

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22  16:07:57
수정 2019.10.22  18:09:44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위원장 오동운 이하 MBC 노조) 파업을 주도했던 고 이용마 기자가 쓴 책 제목이다. 이 기자는 평소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정 방송과 언론 독립을 주장했던 것일까? 공정 방송과 언론 독립을 위해 싸우던 그거 암 투병 중이었던 지난 8월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51세다. 

MBC 노조 9기 집행부를 함께 했고 이 기자의 암 투병을 지켜온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은 어떤 심정일지 궁금했다. 마침 MBC 노조가 이 기자를 기리고 그의 유가족을 후원하는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 그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듣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정 전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정 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사진=이영광 기자>

“많은 분들이 문상 다녀가…충실히 살며 많은 것을 나눠줬구나 생각”

- 이용마 기자 49재가 지난 8일 있었어요. 이 기자가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3년 가까운 투병 생활 동안 함께하신 거로 알아요. 어쩌면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MBC 노조 9기 위원장으로서 마지막 작업이 아니었을까도 생각되는 데 어떠세요?

“2016년 8월에 아산병원에서 암 진단(복막 중피종)을 받았어요. 그러니 3년이 넘게 투병한 거네요. 당시 의사 소견으로는 희귀암으로 치료가 난해해서 선택지가 별로 없고 주어진 시간도 길지 않다고 했어요. 그것보다는 훨씬 더 우리 곁에 있다 간 건데요.

초진 이후 암센터로 옮겨서 치료 가능성을 다시 타진해보고 자연치유를 결심한 거죠. 그 후로 암센터, 분당 서울대 병원에 다니긴 했는데 항암 치료를 받은 건 아니고요. 그러던 중에 당시 신약 개념이었던 면역 항암제에 눈을 떠서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다시 찾은 곳이 아산병원입니다. 그게 2017년 12월이니까 그 후로도 2년 가까이 투병하며 지낸 거죠. 고생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돌아보면 완치시켜야겠다는 욕심보단 용마가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함께했던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 원하는 게 뭐였어요?

“처음에는 치료였죠. 자연 치료로 극복할 수 있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했어요. 그런데 2017년 12월을 지나면서 면역 항암제를 맞을 때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결론이었죠. 연명치료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면역 항암제라는 신약을 선택하면서 극복하지 못할 운명이라면 빨리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 처음 암소식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아침 일찍 조능희 (당시 노조) 위원장 전화를 받고 알았어요. 용마가 아산병원에서 초진을 받고 위원장과 지웅이 형, 제게 문자를 보낸 거예요. ‘아산병원에서 암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해서 지난 토요일부터 입원해 있거든요. 어제 복강경 수술을 한 외과 의사는 조금 전 와서 암이 복막염으로 전이된 거 같아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맡겼다고 하네요. 내 주치의는 오후 회진 예정이고요. 일단 알려놔야 할 거 같아서요. 최종 검사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이거 참….’이라고요. 멍했어요. 오진이 얼마나 많은데, 아닐 거로 생각하며 무시하는 자기 최면을 세게 걸며 용마를 대하긴 했는데 초조한 마음이 가실 길이 없더라고요.” 

- MBC 노조 9기 집행부 위원장하실 때 이용마 기자가 홍보국장 하셨잖아요. 그걸 안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 같은 게 들었을 거 같아요.

“많이 들었죠. 9기 집행부 노조 생활이 힘들었으니까요. 구속영장도 두 번이나 받았고 파업도 170일이나 했고, 파업 차치하고도 임기 내내 로비에 자리 깔고 김재철 사장과 싸웠으니 말이죠. 그것도 모자라서 해직 생활까지 감당해야 했잖아요.” 

- 2017년 MBC 노조 파업을 앞두고 저와 인터뷰 하셨잖아요. 그때 이용마 기자에 대해 “투쟁은 나눠질 수 있어도 투병은 그렇게 못하니 그게 참 원망스럽고 안타깝다”라고 하셨어요. 투병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자연치유로 진안에 들어가 있을 때 너무 멀어서 3주에 한 번씩 보는 거로 정했어요. 그래야 일상이 되잖아요. 일상이 돼야 서로 돕는 게 아니라 함께 뭘 한다는 개념이 될 것 같아서 지웅이 형과 셋이 보는 일상을 만들었죠. 공교롭게도 면역 항암제 치료를 할 때도 투약 주기가 3주 간격이라 3주에 한 번씩 보는 일상이 계속됐죠. 고생은 늘 곁을 지키며 함께 한 가족들이 많았던 거고, 만날 때마다 수척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안타까웠죠. 톡방에서 얘기 나눌 땐 너무 멀쩡해서 좋아졌나 보네 하다가도 3주 만에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니 그게 제일 안타까웠죠.” 

- 톡방으로 나눈 얘기도 많았나 봐요?

“소소한 얘기들 참 많이 했어요. 가족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이야기부터 가족에겐 차마 하기 힘든 얘기까지. 용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드는 생각이나 윤회,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들도 거리낌 없이 얘기하곤 했죠. 가족들에겐 상처가 될까 봐 편하게 꺼내지 못 하는 말들을 저희 셋이 톡방에서 허물없이 편하게 주고받은 거 같아요.” 

   
▲ 지난 8월21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 이용마 기자의 빈소. 고 이용마 기자는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MBC 170일 파업 당시 해고된 후 복막암 판정을 받았다. 이후 2017년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으나 21일 오전 6시 44분 서울아산병원에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사진제공=뉴시스>

-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가요?

“영면하기 전날인데, 말할 기운조차 없어서 물으면 눈빛이나 손가락으로 답하는 상태였고, 그게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헤어지며 ‘용마님, 또 올 게 잘 있어요. 또 봐요’ 하니 눈이 촉촉해지는 게 보였어요. 그땐 잘 몰랐는데, ‘이제 정말 마지막이에요.’라고 한 거 같아서 그 눈빛이 자꾸 생각납니다.” 

- 새벽에 이 기자 형님에게 연락받으셨잖아요. 그때 심경은 어떠셨어요?

“이젠 정말 떠나겠구나 했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전화벨 소리에 놀라 일어나 용마 형님 발신명이 뜨는 걸 보고 철렁 내려앉았죠. 각오는 무용지물인 게, 암 진단 소식 처음 들었을 때처럼 멍했습니다. 나지막이 울먹이며 전하시는 용마 형님 목소리에 뭐라 반응도 못 하고 의사 확진이 난 건지 묻다가 판정 나면 문자 부탁드린다는 말씀만 드리고 끊었어요. 문자를 기다리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냥 멍하게 있었던 거 같아요.” 

- 장례 치르는 3일 동안 장례식장에 계셨는데 어떠셨어요?

“2천 여분이 문상 다녀가셨어요. 정말 많이 오셨고, 진심으로 애도해 주셨죠. 거제도에서 택시를 타고 급하게 올라와서 새벽에 문상하고 내려가신 분도 계시고, 이용마 기자를 기억하며 문상 오신 일반 시민분들도 많이 계셨고요. 짧은 생이지만 용마가 주어진 삶을 참 충실히 보람되게 살며 많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나눠줬구나 생각됩니다.” 

- 이용마 기자 영결식을 상암 MBC 광장에서 치렀잖아요. 분위기가 회사 직원 영결식이라기보다 가족의 영결식 같은 느낌이던데.

“선후배 동료들이 가지는 마음이 형제를 보내는 심경이었을 겁니다. MBC 조직문화가 그런 데다, 용마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뿐 아니라 사원들에게 각별한 존재였으니까요. 기자로서도, 조합원 개개인을 대신해 앞장섰던 동지로서도, MBC맨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삶을 살다간 친구니까요.”

- 이용마 기자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세요?

“조합 홍보국장으로 내려올 때 노조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죠. 뉴스로 봐서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실물은 처음 본 건데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훤한 게 성격도 유하니 좋아 보이더라고요. 성격만 못 맞춘 건데요(웃음).” 

- 9기 집행부때 어떠셨어요?

“용마는 피하지 않고 맞서는 선이 분명한 친구였어요. 호불호나 선택이 애매한 게 없었고 자기 생각이나 주관이 뚜렷했지요. 표현도 가리지 않고 명확했고요.” 

“보도국 입구에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용마 액자 걸어놔”

- 언론 인터뷰 보니 부장님은 이용마 기자를 ‘직구’ ‘모난돌’이라고 하셨던데.

“‘직구’는 집행부 한 달 하고 나서 제가 용마에게 붙여준 별명 같은 거고요. 이용마 인생에 변화구는 없고 직구만 있을 뿐이다죠. ‘모난돌’은 본인이 자신을 표현한 건데, 책에도 그렇게 써놨더라고요. 옳고 그름을 따짐에 있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망설임 없이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랬죠.” 

- 그럼 의견 충돌도 있었을 거 같은데.

“많았죠. 하지만 저와는 궁합이 잘 맞았어요. 용마의 주장이나 말이 틀린 게 없었기 때문에 그걸 실현하는 방법을 잘 찾으면 되는 거라서.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동지이자 동반자였고, 용마도 그런 면에선 제가 궁합이 맞는 인연이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 기억에 남는 일 소개 좀 해주세요.

“조합 집행부로는 99.9%가 투쟁의 기억밖에 없어요. 임기 내내 투쟁과 저항으로만 가득했거든요. 170일 파업이 한창일 때 구속영장 청구돼서 실질 심사받으러 출두했을 때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 바닥에 누워서 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함께 느꼈던 평온함이 기억에 남아요. 그때 서로 태풍에 눈에 들어와 있는 거 같다고 공감했었죠. 그 순간이 얼마나 편안했던지요. 이에 버금가는 기억이 진안에 갈 때마다 함께 했던 목욕과 거기서 키운 유기농 상추로 싸 먹던 자연식 밥상입니다. 그때만 해도 책도 쓰고 인터뷰도 하고 트래킹도 하며 자연치유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의미 있는 일상을 지내고 있었거든요.” 

   
▲ MBC 보도국 입구에 이용마 기자의 액자가 걸려 있다. <사진=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제공>

- 언제 가장 생각나세요?

“판단이 잘 안 되는 일이 생겼을 때 많이 생각납니다. 집행부 생활도 그랬지만, 해직 생활을 함께하면서 스스로 판단이 안 될 때마다 용마에게 의견을 물어 본 거 같아요.”

- 장례식 3일 동안 문상 받고 뒤치다꺼리하시느라 슬퍼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언제 슬픔을 느끼셨어요?

“많은 분이 문상을 다녀가셔서 장례식장에선 경황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용마가 스스로 계약해 놓은 납골묘에서 봉인을 앞두고 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소리 내서 엉엉 울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그 순간은 정말 슬펐던 거 같아요.” 

- 이용마 기자를 기리고 유족을 후원하는 일들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GO발뉴스> 독자들에게도 소개해주세요.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에 지면을 통해서 알리고 싶은 일을 말씀드리면, 쌍둥이 두 아이를 위한 학자금 후원 계좌를 조합과 기자회가 중심이 돼서 만들어 열었습니다. 이용마 기자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상을 방송기자회가 추진할 계획이고요. MBC 보도국 기자들은 이용마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사진 액자를 크게 만들어서 보도국 입구에 걸었습니다.” 

- 이용마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못 했던 말 있으면 해주세요.

“윤회에 대해서 얘기 나누며 공감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얼마 전 49재 때 추도사로 했던 말입니다. ‘용마님! 그동안 욕 많이 봤고 정말 고생 많았어요. 부디 고되고 힘들었던 기억일랑 다 잊어버리고 한없이 평온히 잘 지내길... 우리 꼭 다시 만나요’라는 거예요.”

   
▲ 이용마 기자 후원 약정서. <사진=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제공>

이영광 기자 

[관련기사]

이영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김홍걸 “9.19 이후 좋은 분위기 못 살린 것 아쉽다”

김홍걸 “9.19 이후 좋은 분위기 못 살린 것 아쉽다”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9일로...
“한국당은 공수처를 잠재적 범죄자 관점에서 본다”

“한국당은 공수처를 잠재적 범죄자 관점에서 본다”

내년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관심사 중...
이재정 “이번에 검찰개혁 못하면 민주당 반성해야”

이재정 “이번에 검찰개혁 못하면 민주당 반성해야”

어느덧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를 마쳤다. 다이...
“文정부 부동산 정책 실망…임대료가 최저임금제보다 훨씬 중요”

“文정부 부동산 정책 실망…임대료가 최저임금제보다 훨씬 중요”

지난 6일 국토부는 서울 강남 4구와 마포, 용산,...
가장 많이 본 기사
1
임은정 “‘수사보고’ 격앙 민망…MB때 장관실서 중수부장 나오더라”
2
유시민이 밝힌 ‘동아일보 진중권 보도’ 실체…“저질기사 메커니즘”
3
‘천황폐하 만세’ 소환하는 조선일보 ‘美 면전 거부’ 1면 기사
4
이사 간 이언주에 지역민들 일갈 “꽝이지, 타지 가도 그럴 걸?”
5
론스타·박근혜·MB 4대강...‘적폐 기억하자’는 화제작 3편
6
‘나경원 딸 부정입학’ 보도 <뉴스타파>, 이번엔 ‘스페셜올림픽’ 정조준
7
시민이 홍보한 <대통령의 7시간> 상영관 확보 ‘빨간불’.. 왜?
8
유시민 “윤석열 뭘 틀어막았나? 공소장, 99% 피의내용 유출 증거”
9
나경원 아들 논문 의혹 ‘새국면’.. 삼성지원 연구도 ‘무임승차?’
10
조선일보 사설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go발뉴스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200-115  |  대표전화 : 02-325-8769  |  팩스번호 : 02-325-876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영우
사업자등록번호 : 105-87-76922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02285  |  등록일: 2012년 10월 9일  |  발행/편집인 : 김영우
공식계좌 : 국민은행 090501-04-230157, 예금주 : (주)발뉴스
Copyright © 2012 go발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alnews21@gmail.com
저희 ‘go발뉴스’에 실린 내용 중 블로거글, 제휴기사, 칼럼 등 일부내용은 ‘go발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