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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전두환 어디에 있었든, 했던 일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해”[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321]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이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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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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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9  15:28:38
수정 2019.03.29  18: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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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추적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행’편이 방송되었다. 최근 지만원 씨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그리고 전두환 씨가 재판받기 위해 광주 가며 5.18에 대한 탐사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에 식상하지 않을까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스트레이트>는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단장의 인터뷰를 통해 전두환 씨의 분신인 장세동 씨가 5.18전에 광주에 내려간 사실과 5.18을 은폐 왜곡 조작하기 위해 ‘80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사실 등을 보도했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추적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행’편을 취재한 이용주 기자를 지난 26일 서울 MBC 상암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용주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이용주 기자 <사진=이영광 기자>

“김충립 전 보안단장, 지만원‧한국당의 역사 왜곡에 분노…증언 나서”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추적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행’편을 취재하셨잖아요. <스트레이트> 첫 아이템인데 어떠셨어요?

“제가 (MBC에) 2006년 입사해서 매일매일 뉴스를 다루는 <뉴스데스크>만 하다가 사실 처음 긴 호흡의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많이 낯설고 쉽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첫 아이템 주제가 5.18과 전두환이라는 무겁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주제다 보니 그 어떤 아이템보다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많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던 거 같고요. 앞섰던 의욕만큼은 성과 자체가 잘 따라주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해서 자책도 많이 하고 있어요. 새로운 환경에 와서 낯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 방송에 대해 반응이 있나요?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이트> 팀에 와서 처음 한 보도에 대해서 가자마자 고생했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 격려를 통해 힘이 났고요. 그리고 취재를 하며 만났던 유가족분들이라든지 피해자분들이나 도움 주셨던 분들이 방송 나간 걸 보시고 나서 굉장히 뜨거운 반응과 격려를 보내주셨던 걸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그런 격려와 따뜻한 말씀 때문에 기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첫 아이템이라 부담은 없으셨어요?

“첫 아이템이라 (부담이) 엄청 됐죠. 보도국에서 스트레이트 팀으로 인사발령이 난 날짜가 3월 5일이었거든요. 오자마자 24일로 예정된 방송에 투입됐는데, 방송까지 남은 시간이 3주가 안 됐던 거예요. 처음 일주일은 다른 아이템 알아보는 데 써버렸고요. 방송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5.18과 전두환이라는 주제를 정하게 됐습니다. 그 짧은 기간 안에 기획과 구상, 취재까지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요. 부담감은 뭐라 말씀드리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행에 주목한 이유가 뭘까요?

“이건 전두환 씨 덕분이었습니다. 모르시는 국민이 없으실 것 같은데 광주에 재판받으러 내려가서 ‘이거 왜 이래’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부분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어떤 분께서는 당시 전두환 씨가 ‘이거 왜 이래’라고 외친 것에서 끝난 게 아니라, 혹시나 사과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따귀를 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첫 아이템의 부담감 속에서 전두환 씨를 <스트레이트>에 꼭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5.18에 대해서는 <스트레이트>에서 한 달 전에 다루었고 JTBC <이규현의 스포트라이트>에서 2주전에 했잖아요. 식상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거 같은데.

“방금 전 말씀 드렸던 거처럼 전적으로 전두환 씨 공이 굉장히 크고요. 언론에서 너무 많이 다룬 게 아니냐는 걸 뒤덮을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이 전두환 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명이 안 된 부분이 여전히 많다보니까 2019년 지금에 와서도 말도 안 되는 왜곡과 조작이 계속되는 거잖아요. 그런 만큼 한두 번 보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알릴 부분은 알리고 규명할 부분은 규명하고 파헤칠 부분은 파헤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이전 5.18에 대한 방송은 어떻게 보셨어요?

“지난번 <스트레이트>에서 엄지인 기자와 배주환 기자는 지만원 씨 왜곡과 관련해서 방송했기 때문에 제가 고민했던 방향과는 차원이 좀 달랐고요.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3월 14일 방송한 것으로 기억해요. 저희가 한참, 이 주제로 방송을 준비할 때거든요. 그날 저녁 방송 나가는 것을 보며 힘이 좀 빠졌죠. 그런데 같이 취재하고 있던 김정인 기자가 ‘JTBC가 훌륭한 취재를 했지만 그건 그거고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좋은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해보자’라고 옆에서 격려를 해줬습니다. 김정호 부장과 팀의 선배들도 계속 응원해줬고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취재를 했던 게 지난 방송으로 이어졌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단장을 인터뷰하셨어요. 김 전 보안단장이 방송에 출연한 건 처음이라던데.

“사실 김충립 보안단장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인터뷰를 꺼리시는 입장이었어요, 본인이 지상파 나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 깊게 하신 분인데 그 분도 지만원 씨라든지 자유한국당 내부의 5.18을 둘러싼 역사 왜곡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으셨던 거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에 대해 본인 나름대로 적잖이 분노하셨던 거 같아요. 저희가 인터뷰를 부탁드렸을 때 처음엔 ‘나도 고민은 하고 있지만 때가 아닌 것 같소’라고 거절하셨는데 계속 말씀 드리다보니 본인께서도 용기를 내셨던 것 같습니다.” 

   
▲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5.18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최측근인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광주에 급파됐다고 증언했다.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김 전 보안단장은 5.18 당시 어느 위치에 있던 분인가요?

“5.18 당시 그분은 특전사를 담당했던 보안사 요원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각별히 총애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은 원래 안동에 있는 다른 사단으로 가기로 인사 명령이 나있던 상황이었는데, 전두환 사령관이 불렀대요. 1979년 12월 13일에 정호용 씨가 특전사령관으로 부임했는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김 보안반장에게 ‘정호용 사령관의 정보보좌관이 되어서 잘 감시해라’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총애를 받으면서 특전사령관을 비롯해 특전사 전체를 감시하는 위치에 있던 분이었다고 할 수 있죠.” 

- 5.18 당시 장세동 씨가 광주에 왔잖아요. 어떤 일을 한 건가요?

“장세동 씨는 5월 14일경 7공수여단의 두 개 대대가 먼저 광주 지역 소요사태 때문에 내려갔는데 자기는 특전사 작전참모로서 현지에 내려가 현지 부대 참모들을 만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 ‘특전사 병력을 잘 부탁한다, 잘 보살펴달라’고 인사하고 올라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장세동 씨라고 하면, 특전사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분신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씨 분신인 장세동 씨가 5.18 이전에 광주 가 있었다는 사실은 전두환 신군부가 5.18과 관련해 모종의 사전 대비를 치밀하게 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거 같고요. 그래서 실제 장세동 씨가 누굴 만나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본인은 한사코 작전 지휘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공수여단이나 현지부대의 작전 지휘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히 규명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장세동 씨 집 앞에서 인터폰으로 인터뷰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세동 씨 집에 찾아간 게 낮 시간이어서 장세동 씨가 집에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갔거든요. 방송 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그림 만든다’는 게 있는데요. 실제로 만나면 당연히 좋겠지만, 설마 볼 수 있겠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림 만들고 오자’는 생각하면서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벨을 눌렸죠. 딩동 소리가 난 뒤 중저음의 탁한 (목소리로) 누구냐는 거예요. 순간 깜짝 놀라 제 소개를 했더니 재차 누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장세동 씨 맞냐고 했죠.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안 된 상태에서 그런 대답을 실제로 들으니까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뒤 인터폰을 통해 1시간 가까이 대화를 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준비도 안 됐을 것 같은데.

“그렇죠. 보통 중요 인물을 인터뷰할 때는 질문지를 대략 짜서 질문의 순서라든지 이 질문을 했을 때 어떤 답이 나오면 또 어떻게 물을 건지를 기본적으로 생각해가는 데 그런 준비가 전혀 없이 그냥 갔다가 벨을 눌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어떻게 해요. 당장 진행해야 하니까 생각나는 대로 질문했죠.

인터폰이다 보니 시간제한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인터폰을 누르면 계속 대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1분 정도 되면 끊어지더라고요. 저는 처음엔 장세동 씨가 끊는 줄 알았어요. 끊길 때마다 또 벨을 눌러 대화를 했는데 계속 하다보니 장세동 씨도 인터폰이 끊어지는 것에 화가 난 겁니다. 본인도 1분 지나면 끊기는 걸 몰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이게 시간 지나면 끊기는 거 같습니다. 잠시 문 열어 주시면 말씀 잠깐 나누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장세동 씨는 한사코 문을 열지는 않으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인터폰 대화가 한 시간 이어졌죠.

너무 재밌었던 게 인터폰으로 대화하니까 1분마다 끊기잖아요. 처음엔 저도 장세동 씨가 대답을 할 때 끊어지면 안 돼 생각하면서 실제로 대화가 끊기면 벨을 막 다급하게 눌렀거든요. 그런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까 나중엔 대화가 끊기면 자연스럽게 벨을 눌러서 계속 질문하고, 장세동 씨 역시 처음엔 ‘이거 왜 자꾸 끊겨’ 하면서 화냈지만, 나중에는 끊긴 부분을 잘 알고 바로 이어서 대답해주더라고요. 흥미진진한 인터뷰였어요.” 

- 차라리 번호 물어봐서 전화하지 그랬어요?

“쉽게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화가 이뤄진 것이었잖아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까 1분 단위로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번호를 물어볼 생각은 전혀 못 했고 지금 당장 한 마디라도 더 물어보고 한 마디라도 대답을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24일 방송 에필로그 영상에도 나왔습니다만, 제가 장세동 씨 현관문에 명함을 꽂아놓고 돌아왔거든요. 제가 인터폰 인터뷰 말미에 장세동 씨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명함 주고 가겠다고 했는데 장세동 씨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안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함을 문에 꽂아놓고 왔죠. 그런데 다음날 장세동 씨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제 명함 보고 전화했겠죠. 그래서 다음날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어떤 상황이었어요?

“그때가 광주로 내려가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했거든요. 두시간 달리다가 깨서 휴게소 들렀다 출발하던 차에 모르는 번호로 번호가 온 거죠. 자다 일어나서 졸리잖아요. 안 받을까 고민하다 받았거든요. 처음 들리는 목소리가 이용주 차장이냐는 거예요. 맞다며 누구냐고 했더니 장세동이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전날 당황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기억을 정리하니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5월 14~18일 사이 광주에 간 거 같고 수시로 왔다 갔다 했고 마지막 도청 진압 작전은 보고 올라왔다는 등 여러 가지를 얘기하더라고요, 그 부분도 기사에 잘 반영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왜곡‧은폐 조작이 88년 육본 ‘80위원회’까지 이어져”

- 전두환 씨가 5.18 당시 광주가 왔었다잖아요.

“굉장히 많은 증언과 정황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두환 씨는 광주와 관련된 일을 계엄사가 다 했고 본인은 한 일이 없다는 식으로 자르고 있는 거고요. 88년으로 기억하는 데 청문회 말미에 장황한 연설을 통해서 ‘숙제로 내려달라. 훗날 회고록을 통해 밝히겠다’라고 했는데, 2017년 회고록을 통해, 철두철미한 부인을 넘어 대놓고 왜곡을 하더군요.

전두환 씨가 광주에 갔냐, 안 갔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더 중요한 문제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 있었든 서울에 있었든 그 어디에 있었든 실제 그 당시 했던 일들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같은 진상규명의 일환에서 그 당시 전두환 씨가 21일과 26일 광주에 갔다는 걸 파헤치는 취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데, 전두환 씨가 당시 어떤 지시를 어떻게 내렸는지, 작전지휘에 어떤 관여를 했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전일 빌딩 헬기 사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일 빌딩 헬기 사격과 관련해 전두환 씨는 ‘피해자가 없다. 피해자가 없으면 헬기 사격은 애초 없었던 거 아니야. 헬기 사격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 데려와봐’ 이런 식으로 주장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피해자 문제는 둘째로 차치하고 전일빌딩의 흔적이라는 건 헬기 사격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물리적이고 객관적 증거잖아요. 방사형의 탄흔 모양이라든지 각도 등은 계엄군이나 시민군이 괴력을 발휘해서 10층 높이 이상으로 점프를 해서 사격한 게 아니라면 헬기 사격 외의 가정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전일빌딩에 남은 탄흔이 무엇보다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 헬기 사격 피해자인 남현애 씨와 딸을 잃은 김현녀 씨도 만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잊을 수 없는 고통일 텐데 그래도 잊기 위해 노력하시는 중이시잖아요. 그런데 기자 녀석 하나가 인터뷰 부탁하고는 실제 찾아와서는 잊기 힘든 고통을 후벼 파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드렸던 거잖아요. 이 자체가 너무 죄송스러웠고요. 다만 이 죄송스러움을 상쇄할 수 있는 길은 이분들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가 바로 기록되는 데 도움 될 수 있는 좋은 기사, 대단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무언가 그래도 그 당시를 정확히 기록하고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는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9년 전 그날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그날 길거리에서 20대 젊은 여성이 어머니 심부름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피격을 당한 뒤 갖게 된 충격과 공포 등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여쭤보면서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5.18 진상을 은폐하기 위한 ‘80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다던데.

“‘80위원회’는 5.18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5공 정권이 당연히도 그분들 입장에서는 감추고 덮고 미화 조작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실제 이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굉장히 고민 많이 했겠죠. 실제적인 움직임은 80년 6월 국보위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거로 알아요. 그러나 85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꾸려졌던 거 같아요.

그때가 총선 후인데 아마 여소야대가 됐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여당 입장에서는 총선 패배의 여파로 광주 문제가 국회 권력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가졌고, 이후 조직적인 왜곡 조작 움직임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범정부적으로 검찰, 경찰 등 여기저기서 다 끌어 모아 광주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게 85년 6월에 만든 ‘80위원회’라는 거고 그게 이어져서 88년엔 육군 본부 ‘80위원회’로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본격적으로 광주 작전에 참가했던 공수여단 장병들의 수기라든지 당시 상황일지라든지 이런 걸 육군본부 ‘80위원회’에서 다 가져와서 검토한 정황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장병 수기에 코브라헬기라는 표현이 있으면 ‘헬기 동원했다는 표현은 너무 쎄보이니까 아무개 하사의 코브라헬기라는 표현은 없애’라는 식이라든지 당시 최세창 합참의장은 보면서 대검 관련 내용이 나오니 ‘대검은 휴대하지 않았던 거로 해라’라고 의견을 제시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왜곡과 은폐 조작의 정황이 80년부터 시작해서 88년 육본 ‘80위원회’까진 이어진 정황이 있더라고요.”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취재하며 느끼신 점 있으실 거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데일리 뉴스만 하다가 긴 호흡의 탐사 프로그램으로는 첫 방송이었는데 여러모로 뜻깊었습니다. 긴 호흡의 첫 방송이었다는 것 자체가 뜻깊었고, 더군다나 그 첫 주제가 5.18이었잖아요. 또, 5.18 관련 기사를 쓴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추적 저널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한 번 방송에 그치지 않고 전두환 씨 계속 지켜보며 추적하겠습니다.”

- 추가 보도 계획 있나요?

“당장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요. 하지만 전두환 씨는 한 번 모시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수차례, 수십 차례에 걸쳐서 방송에 더 모시는 방향으로 추적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GO발뉴스>도 그렇고 MBC <스트레이트>도 그렇고 매체와 틀이 다르긴 하지만 좋은 사회와 세상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포기하지 마시고 지치지 마세요. 우리가 포기하면 기뻐하는 분이 있는데, 바로 전두환 씨죠. 우리의 포기를 누구보다 반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지치지 말고 먼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트레이트>의 보도, 그리고 의 기사들 꾸준히 관심 가져주시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에 차츰차츰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기하고 않고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이영광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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