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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마지막 무관생도들>, 신념 잘 지키라는 메시지 전하고 싶었다”[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314] <마지막 무관생도들>의 장형원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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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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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2  16:46:40
수정 2019.03.12  18: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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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출발할 때 같은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리가 멀어지는 걸 볼 수 있다. 그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MBC가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준비한 다큐 드라마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신념과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이완규 작가의 장편소설 <마지막 무관생도들>을 원작으로 한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1900년대 초 전문 군인을 양성하던 대한제국 무관학교 최후의 생도 45명의 삶을 풀어낸 다큐드라마다. 다큐 드라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6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마지막 무관생도들>을 연출한 장형원 MBC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장형원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장형원 MBC PD <사진=이영광 기자>

“친일-항일 이분법 아닌 선택의 문제로 접근, 사회·국가에 영향”

- 3.1운동 100주년 특집 다큐 드라마 <마지막 무관생도들> 2부작이 2월 25일과 3월 1일 등 2일에 걸쳐 방송되었는데 마치신 소회가 있을 거 같아요.

“무사히 잘 끝난 게 가장 좋아요. 왜냐면 준비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한 아이템을 잡고 제작을 시작한 게 한두 달 반 정도밖에 안 돼요. 시간이 촉박했었는데 무사히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시사교양 PD잖아요. 드라마타이즈 해본 적 있나요.

“별로 없어요. 예전에 조연출 당시 <한국 100년 이렇게 살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100년 전 이야기를 전부 재연으로 만드는 거거나 아니면 가끔 <PD수첩>이나 가끔 다큐를 할 때도 약간의 설명을 위해 재연을 어떤 시퀀스가 없는 짧은 재연들 같은 것만 해봤지만 이렇게 거의 재연 드라마타이즈 내지는 재연 위주로 프로그램을 해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 드라마 타이즈로 하면 원하는 그림이 있어서 연기지도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사실은 연기자들 섭외하는 거였었는데 원래는 육군에 복무 중인 좋은 연기자들이 있어서 육군본부 쪽에 연기자 출신 사병들을 조금 출연시킬 수 있을까 해서 협의도 하고 했었는데 잘 안됐어요. 그 후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는 신인 연기자들 쪽에다가 공고를 냈더니 몇백 명이 응모하셨어요, 그중에서 저희가 원전이 있잖아요. 그 원전에 나오는 캐릭터하고 제일 비슷한 사람들을 캐스팅했어요. 대학로에 있는 신인 연기자급들이 연기를 잘해줘서 원하는 그림들을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얻을 수 있었어요.” 

- 다큐드라마로 한 이유가 있나요?

“원작이 있잖아요. 그 원작을 쓰신 이원규 선생님이 한 거의 1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료를 많이 모아놓으셨어요. 굳이 다큐드라마라고 하는 생소한 해보지 않은 장르에 도전했던 이유는 자료나 신문 이런 그런 기존의 문법으로는 주인공 네 명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나 감정선을 신문이나 자료로 표현하기는 한계가 있었어요. 네 명에 얽히고설킨 인연 혹은 악연 내지 그들의 신념 같은 걸 표현하는 게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데 그게 자료로는 잘 표현이 될 거 같지 않아 드라마타이즈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다큐드라마라는 장르를 선택했었습니다.”

- 내레이션은 어땠어요.

“정형석 씨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란 장수 인기프로그램 내레이션을 하시는 분인데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인데 지금은 성우로 더 유명하세요. <나는 자연인이다>를 포함해서 KBS <다큐3일>이라든지 KBS다큐 내레이션도 많이 하신 분이죠. 보통 이런 특집을 하는 경우에 연예인에게 내레이션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3.1절 특집 같은 경우 좀 연예인 내레이션이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전문 성우에 가까운 분은 없을까 찾다가 정형석 씨를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들의 이야기잖아요. 이들에 주목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3.1절 특집 아이템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우연히 <마지막 무관생도들>이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게 됐어요. 보통 3.1절 특집 하면 대체로 친일한 사람을 공격하는 거나 항일무장투쟁이나 항일운동하신 분들을 높이는 것 두 가지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러나 전 그런 이분법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거에 가장 적합한 내용이어서 관심이 갔었습니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조금 더 개인적으로는 신념의 문제, 그다음에 내가 인생 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하잖아요. 어떤 대학을 갈까 내지는 어떤 직장을 얻을까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인생 살면서 몇 번의 선택이 있는데 그런 인생의 선택을 했을 때 그게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이게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인간관계가 한 나라에 사회, 한 나라의 국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그거를 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 <이미지 출처=MBC 3.1절 100주년 특집 다큐드라마 ‘마지막 무관생도들’ 화면 캡처>

- 원작이 있지만 그래도 자료조사는 해야 했을 것 같은데...

“이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원규 선생님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료조사를 충실하게 해놓은 게 많으셨기 때문에 사실 자료조사는 전적으로 거의 이원규 선생님이 해 놓으신 거 바탕으로 조금 더 우리가 필요한 것만 조금만 찾으면 됐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이번 프로그램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 원작자에게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어요?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참고로 댁에 가서. 이걸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나중에 진행되면서 허락과 계약을 했고요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다음에 허락을 받고 난 다음에 중간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걸 드라마타이즈를 해야겠다고 상의를 드렸을 때 되게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 처음에는 드라마타이즈로 할 생각은 없었나요?

“그럴 생각은 안 하고 가서 일단은 그냥 프로그램을 하겠다고만 말씀을 드렸어요. 처음엔 그냥 워낙 스토리가 약간 드라마 같은 스토리여서 자료조사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드라마타이즈를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 원작자 선생님은 보시고 뭐라고 했어요?

“‘내용이 많고 복잡한 내용인데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보기 편하게 정리를 잘했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워낙 원래 기자 쪽 일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서 지금도 서울신문 등에 연재 기사 같은 것도 하시고 월간지 같은 데에 연재도 계속하시거든요. 그게 다 글로 표현되는 것은 조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드라마타이즈를 한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좋다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게 나이 드신 분들은 솔직히 지청천 장군 같은 분들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시잖아요.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그 네 명이나 무관생도들에 대해서 잘 모르죠. 이원규 선생님이 항상 얘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런 면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고 얘기하셨어요.” 

- 주인공이 독립운동한 김경천과 지청전, 친일한 이응준과 홍사익인 것 같아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 독립운동과 친일을 대비시키려는 의도였나요?

“제가 그 구도를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원작에 이미 그런 내용이 다 있었던 내용이에요. 저희가 원작을 대부분 따랐지만, 원작에서 좀 벗어난 부분은 약간 현대하고 자꾸 연관을 시킨 부분이에요. 그 건 원작에는 없어요. 사실 조준묵 부장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이 네 명이라서 너무 많아서 좀 복잡하다는 얘기도 있었었거든요. 이미 그분들이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이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 아무래도 다큐드라마니까 팩트를 기반해야 되잖아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령 그런 거죠. 작가가 원작소설이 있긴 하지만 김경천의 <경천아일록>이나 <이응준의 회고록>,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이 쓴 <지청천 자서전> 같은 원전들을 다 보고 대본을 만들었어요. 사실 그 원전에 내용이 묘사되어 있으면 이것을 대사나 대본화하기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거든요. 가령 1923년에 김경천과 지청천 장군이 상해에서 임정 회의 때 만났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록에 없어요. 그런 경우에는 작가와 제가나 같이 얘기했죠. 마치 지청천 장군의 부인이 편지를 보내서 지청천 장군이 보고 친구들이 돈을 도와준 거에 대해서 분개했고 (김경천 장군)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것처럼 되어 있잖아요. 그건 어떤 자서전이나 일기에 없는 내용이에요. 팩트는 1923년에 김경천과 지청천이 상해에서 만났다는 건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거예요. 사실 다큐PD로서는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과연 합당하고 이게 어떤 개연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어려웠던 거 같아요.” 

   
▲ <이미지 출처=MBC 3.1절 100주년 특집 다큐드라마 ‘마지막 무관생도들’ 화면 캡처>

“부마항쟁 프로그램도 준비 중, 10.26과 맞닿아…많이 봐달라”

- 초반에 같이 서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서 서로 멀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인가요?

“PD, AD, 작가, 취재작가, 카메라맨까지 다 모여서 대본 작업을 했었어요. 대본 쓴 최미혜 작가가 각도기 얘기를 했어요. 네 명이 똑같이 1909년도에 출발을 했는데 이게 점점 가면서 멀어져요. 각도기가 벌어지듯이 하는 걸 형상화했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래서 그거를 세트디자이너에게 전달을 해서 이건 이렇게 만들어 달라 라고 얘기가 됐었던 거고요.

제가 80년대 학번이거든요. 그때가 이제 군부독재 타도 학생운동 이런 게 있었는데 사실 지금 나이 들어서 지금 보면 군부독재 타도 학생운동을 했던 선후배 중에 조선일보 가서 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다음에 열심히 계속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고 저처럼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인생이 달라졌단 말이죠. 근데 옛날 군부독재 타도할 때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같이 있었단 말이죠.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걸 형상화해 보고 싶었었어요.” 

- 해방 후 이응준과 홍사익은 또 다른 길을 가요. 이응준은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지만, 홍사익은 B급 전범으로 필리핀에서 처형당해요.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둘 다 가난했지만, 홍사익은 똑똑했어요. 공부도 잘했고 홍사익이 승승장구했죠. 송건호 선생님이 홍사익에 대해서 ‘친일파지만 재평가를 해야 되지 않느냐’ 라는 류의 어떤 그런류의 글을 남기신 게 있어요. 송건호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아시다시피 민족주의자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글을 남기신 게 되게 의외였어요. 잘 이해가 안 됐고요.

그런데 홍사익을 보니까 어떤 점이 있냐면 비록 일제와 일본군에 충성하기는 했고 젊었을 때 맹세는 져버렸지만, 그 이후 일제시대때 직업군인으로써의 신념을 꺾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니까 가령 만주국에서 일할 때 당시에 조선사람들이 군인이 될 수 없었거든요. 징병제가 실시된 건 1942년에 이르러서 징병제가 되는데 왜 일제가 자기네가 패망해가기 직전에 징병제를 했냐면 조선 사람들을 믿지를 않았어요. 조선 사람들이 군대에 들어가서 문제를 일으킬까 봐 징병제를 시행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1930년대에 홍사익이 만주국에서 일할 때 조선사람들이 만주군이 될 수 있도록 조치를 바꿔놔요. 그리고 홍사익이 거기서 근무를 할 때 중국 사람들이나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하는 기록도 있어요. 그렇게 나름대로는 뭔가 약간 직업군인으로서의 신념은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고요.

반면에 이응준은 굉장히 임기응변과 처세술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해방 후에도 쉽게 변신할 수 있었던 거 같고요. 홍사익은 변신하기보다는 그냥 직업군인으로서의 충성을 했던 게 일본군이어서 문제였지만 직업군인으로서의 자기신념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아무 변명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갔던 거 같고요. 그 차이가 있었던 거 같아요.” 

- 홍사익이 필리핀에서 B급 전범으로 처형당하는 게 알려지자 국내에서 김원봉 등이 구명운동 하잖아요. 신기해요.

“신기해요. 되게 신기하고 사실 김원봉 같은 경우에는 어찌 보면 의열단장 출신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조선의용대 대장이었거든요. 그리고 광복군이 충칭에서 전투를 잘 안 하고 그냥 소일거리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것에 반발한 조선의용대가 전투를 선택해서 간 곳이 화북지대였거든요. 그래서 이름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인데 그 ‘조선의용대 화북지대’하고 홍사익이 전투를 벌였단 말이에요 그게 1941년 말에 있었던 타이항산 전투인데 그 타이항산 전투에서 예를 들자면 돌아가셨는데 김학철 선생님도 거기서 다치셨고 윤세주라고 김원봉의 밀양 후배도 거기서 사망을 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김원봉 입장에서는 홍사익이 자신의 친한 후배나 친밀했던 조선의용대원들이 다치거나 죽었기 때문에 원수와 같은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도 흔쾌히 해방 후 정국에서 홍사익 구명운동에다 서명을 해준 거니까 되게 좋게 보면 통이 크다고 해야 하나요. 약간 저도 이해가 잘 안 된 부분이에요.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긴 해요.” 

   
▲ <이미지 출처=MBC 3.1절 100주년 특집 다큐드라마 ‘마지막 무관생도들’ 화면 캡처>

- 현대와 일제시대를 오가기도 하던데.

“3.1절 특집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지점이 100년이 지난 얘기잖아요. 100년도 넘게 있었던 일이 자기 이야기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관계 설정하기가 되게 어려울 거 같다는 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11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지만 지금 현재와 그렇게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 프로그램 내에서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대문에 이렇게 다 죽어있는 사진들이라든지 아니면 전차를 보여준다든지 광화문을 보여준다든지 그 1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지금현재와 맞닿아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싶었기 때문에 제일 어려웠던 문제였던 것 같아요.” 

- 이분들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느낀 점은 솔직히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고 내가 살면서 과연 내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무엇이었던가죠. 또 그걸 잘 지켜왔는가에 대해서 반성 내지는 성찰하게 된 거죠.” 

- <마지막 무관생도들>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당신이 만약에 가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당신이 꼭 지켜야 되는 사람들, 신념들을 지키세요.’라는 것이 프로그램하면서 보내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사실은 신념과 관련해서 하반기에 또 하나 더 만들려고 해요. 올해가 부마항쟁 40주년이거든요. 그래서 부마항쟁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하고 있고 역시 그거는 신념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될 거 같아요. 이건 부마항쟁은 잘 아시다시피 10.26과 맞닿아 있는 거라서 아마도 <GO발뉴스>를 포함해서 보시는 분들이 훨씬 더 관심 있게 보실 수 있는 그런 내용일 거 같거든요. 그래서 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영광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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