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국정농단 사태 이후 2년 3개월 만에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려 26.7%였다. 28일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발표한 정기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대국민 사과와 맞물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했던 2016년 10월 3주차(29.6%)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리얼미터는 이 조사(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2515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은 7.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자유한국당의 상승 요인으로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정부·여당의 장기간 약세와 함께 최근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시장, 홍준표 전 대표 등 주요 당권주자들의 이른바 ‘컨벤션 효과’로 풀이했다.
▲ <그래픽 출처=리얼미터>
그 중심에 황교안 전 총리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9일 오마이뉴스가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는 황 전 총리가 이낙연 현 총리를 누르고 최초로 1위를 기록하는 결과도 나왔다.
이날 당권 도전을 공식 발표한 황 전 총리에 대한 야당 지지층의 관심이 일단 최고조를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헌데, 이날 서울 영등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한 황 전 총리의 발언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나 황 전 총리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면서도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는 발언이 그러하다. 황 전 총리의 지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키워드라고나 할까.
▲ <그래픽 출처=리얼미터>
태극기 세력 끌어안는 황교안의 출마 선언
“태극기 세력이라고 하는 분들도 그동안 우리나라를 여기 있도록 헌신하고 봉사한 귀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과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쉽지 않지만 얘기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면 역시 길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헌법가치를 존중해서 나라를 일으켰고 당을 이끌어 왔거나, 헌법가치를 같이 한다면 (대통합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역시나 박근혜 정부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 출신다웠다. 태극기 세력도 끌어않겠다는 저 ‘포용력’ 말이다. 자신의 지지 세력이 박근혜 지지 세력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저 당당함이야말로 대선주자 황교안의 든든한 반석임을 자임하는 꼴이랄까.
그래서다. 황 전 총리는 이날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는 자유우파의 대통합”이라거나 “기둥이 높고 튼튼해야 ‘빅텐트’도 만들 수 있다”며 우파 ‘대통합론’을 공공연하게 거론했다. “탕평책”이나 “당의 문호 개방”과 같은 낡은 수사도 여전했다.
다만, 이날 향후 만들겠다고 선언한 ‘대통합 정책 협의회’가 어떤 모습을 띌지는 아직 미지수다. 과거 새누리당 당시 ‘일베’나 ‘극우’ 출신 인사들까지 끌어들였던 전력을 상기한다면, 도로 새누리당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반면 이날 황 전 황 전 총리는 “한반도 평화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많은 국민들이 염려하고 있다”며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여전히 낡은 프레임이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386 주사파로 규정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작금의 자유한국당 기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황 전 총리가 출마 직전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론했던, 본인이 법무부장관 당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던 통합진보당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했을까.
“통진당은 헌법에서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이 해산하도록 규정한 정당이다. 그리고 1년 10개월 동안 헌법재판소 심리를 통해 충분하게 위헌성이 입증됐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황교안 고소하는 옛 통진당 의원들
과연 이걸로 끝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구속 수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사건을 특정 재판부가 맡도록 인위적으로 전산 시스템 조작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박근혜 전 청와대가 통진당 재판을 가지고 야합과 거래를 했다는 정황 역시 드러난 바 있다. 과연 그러한 거래에 황 전 총리가 관여한 부분은 없을까. 최소한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은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 여론이 다르다면 어떻게 할 텐가.
아니다 다를까, 29일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민중당은 이날 오전 김미희·오병윤·김재연 등 통진당 해산 당시 소속 국회의원들이 서울 중앙지검에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직권남용권리행사 및 공무상비밀 누설 혐의로 고소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뉴스1> 등에 따르면, 이들은 고소장에서 고소취지로 황 전 총리가 ‘법무부장관이라는 직권을 남용해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독립적이지 않고 불공정하게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고소인들의 공무담임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의 행사를 방해했다는 점’, ‘재판 당시 정부 측 증인 김영환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해 사법권에 대한 정부 권력의 중대한 침해·훼손행위가 의심되는 점’ 등을 들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지난 22일 대구를 방문한 황 전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여투쟁력 등 현실정치, 정당정치에 대한 실전 감각과 관련된 질문에서 나온 답이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자신의 치적이라 내세우는 황 전 총리가 과연 현실감각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경력이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 과정에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여부 또한 지켜보도록 하자.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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