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1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문재인 명예훼손' 4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법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었다.

23일 <한겨레>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이날 “피고인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며 “자신이 믿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유지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특히 김 판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용어가 북한과 내통하는 등 긴밀히 연관된 사람을 지칭하지만, 다른 뜻으로 북한에 우호적이거나 북한 노선에 우호적인 사람을 부정적으로 이를 때 쓰인다”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우리 사회 다수의 국민들에 의해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갖는 정치적 견해가 시대적 배경과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피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이한 활동 경력을 고려하면 두 사람이 공산주의자 개념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고영주 전 이사장은 “양심과 소신에 따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오늘>에 의하면, 그는 선고 후 언론에 “사법부가 (좌파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편파 판결이 많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바로 섰으면 한다”고 전하며 “다른 판사들도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경진 판사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을 “북한 정권과 내통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북한 정권에 우호적이고 유화 정책을 펴는 사람을 뜻한다”고 정의하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SNS에 “그저 소가 웃을 일”이라고 적고는 “이 판사를 뭐라고 지칭할까요? 무지몽매자?”라고 덧붙였다.

관련해 전우용 역사학자도 페이스북을 통해 “해방 후 이제껏, 다수의 국민에게 ‘공산주의자’는 빨갱이, 북한 추종자와 동의어였다”며 “이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조차도 ‘용공분자’로 몰려 처벌받곤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자가 이적행위자, 반역자와 동의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 법원도 공산주의 관련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처벌했다”고 지적하고는 “담당 판사가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죽일 놈’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온 한국 역사와 현실을 일부러 외면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헌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는 있지만, 어떤 압력도 느끼지 않고 이 자유를 공공연히 누릴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다”며 “저 판결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우리나라를 적화시키기 위한 술책이다’라고 공공연히 말해도 된다고 파시스트들을 독려한 셈”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