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죠. 저는 지난번 9일간 단식투쟁을 하면서 상했던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또 지방선거에서 홍 대표에게 발이 묶이다 보니까 하루 1000km 넘는 강행군 지원유세를 하면서 많이 지친 상태죠.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국민이 부여하신 그런 마지막 혁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더 물러날 곳도 없고 더 미룰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잊겠나. 국회 앞에서 폭행을 당한 뒤 구급차에 실려 가던 그 모습을, 그 폭행을 두고  ‘정치테러’로 규정하던 자유한국당의 호들갑을. 19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은 단식투쟁을 언급하며 육체적인 피로감을 호소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지방선거 유세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사심이 없다”며 당의 혁신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었다. 혁신비대위원장이 선출된다면 자유한국당 의원들 전부가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한다면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어제부터 수많은 인터뷰를 소화하고 있는 김성태 권한대행이 자꾸 자당 의석수를 헷갈려한다는 점이다. 

“구성원 114명 전부 다 수술대 위에 다 올릴 겁니다.” (20일 MBC <이범의 시선집중> 인터뷰>)
“우리 114명이 수술대 위에 전부 다 올라가야 합니다” (19일 JTBC <뉴스룸> 인터뷰)

물론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는 “우리 전체 113명의 의원들을 수술대 위에 다 올라갈 거니까”라고 같은 표현을 썼고, 같은 날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도 “그 비대위가 우리 113명의 의원들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성역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거기에 저 자신도 포함입니다”라고 단언했다. 

맞다. 큰 차이는 아니다. 6.13 재보궐 선거 이후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는 113석이 됐다. 자유한국당 출신 무소속 의원을 감안한다면, 113명과 114명의 차이는 더더욱 크지 않다. 하지만, “집도할 명의”, “수술대”, “성역은 없다”라는 꽤나 과한 수사를 매번 써가며 전방위 언론 인터뷰를 돌고 있는 김성태 권한대행의 기억력이 심히 걱정되지 않는가. 

애석하게도, 자꾸만 뒷목을 잡고 국회 앞에서 쓰러지던, 또 단식 중 구급차에 실려 가며 배를 쓰다듬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가능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중앙당 해체를 포함한 ‘김성태식 해법’을 확인 후엔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더 애석하게도 대언론 홍보에 몰입 중인 김성태 권한대행이 새겨들어야 할 쓴 소리는 차고 넘치고 있었다.     

▲ 지난 5월10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의 조건 없는 '드루킹 특검'수용을 촉구하며 8일째 단식 투쟁을 하던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단식투쟁장에서 호흡곤란을 일으켜 긴급 후송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전여옥 “자유한국당의 113명 전원, 총선 불출마 선언해라”

“제가 볼 때는 앞으로 2년 안에 큰 변화가 과연 있겠느냐,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요. 제 생각에는 변화의 주기라든가, 또는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의 반응, 판단, 이것은 지금 세상의 분초를 다투는 변화 속에서 같은 스피드로 가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말 자유한국당의 113명 전원이 다음 총선 불출마라든가, 적어도 3선 의원들이 손잡고서 우리는 더 이상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 이런 특단의 대책을 보여주지 않는 한 2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50석 정도를 건질 수 있는, 그야말로 아주 특정 지역에서만 생존 가능한 그런 정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죠. 그것은 보수정당이 아닌 거죠.”

19일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한 전여옥 작가는 거침이 없었다. 113명 전원 총선 불출마와 같은 초강수, 특단의 대책이 없다고 지적한 전 작가는 김성태 권한대행의 ‘뉴노멀’이란 수사에 대해서도 “‘뉴 노멀’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라며 “전혀 와 닿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이날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정우택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김성태 권한대행에 대해 “김성태 대행은 자유한국당 버리고 다른 당에 갔다 온 사람”이라며 “그런 분이 당 해체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고 공격했다. 김 권한대행이 내놓은 혁신안에 대놓고 반대한 것은 물론이었다. 

“중앙당 해체라든지, 이런 것은 이걸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앞으로 비대위가 구성되면, 그 비대위에서 이런 결정을 총의를 모아서 내려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요. 만약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면요. 그런데 이건 혼자서 본인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포청천처럼 행동하는 것은 황당한 행동이죠.”

어디 이들 뿐인가. 김진태 의원을 비롯한 친박의원들은 물론 한선교 등 당 내 중진의원들로부터 김성태 권한대행의 혁신안은 “오버”라거나 “권한이 없다”는 맹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김성태 권한대행의 잇단 언론 인터뷰는 계파갈등으로 발이 묶일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한 수습 차원이었을 것이다. 19일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의 관련 멘트도 이러했다. 

“지방선거 참패로 당 쇄신이 시급한 자유한국당은 지금 또 다시 계파갈등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묵은 친박계, 또 비박계 이런 갈등 구조가 또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요. 일단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이 수습에 나섰습니다.”

▲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로 열린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모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술대’ 운운하는 김성태 권한대행에게 필요한 것

6.13 지방선거는 보수야당 전체가 ‘보수의 몰락’을 넘어 ‘자유한국당=적폐세력’임을 국민들에게 ‘공식’ 확인받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수는 죽었다”라는 표현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물론 보수 인사들 다수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온 김성태식 해법이 어느 정도 힘을 받느냐는 야당의 건강한 견제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지형 변화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거나 ‘현실감이 없다’, ‘김성태의 권력의지’라는 평가가 다수를 차지한다.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대표의 ‘천막당사’가 언론에 자꾸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비대위원장 직을 놓고도 ‘과연 누가 가능할까?’란 회의론 역시 팽배하다. 매번 위기 때마다 반복했던 무릎 끓고 읍소하기 전략이 이제는 먹히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성태 권한대행은 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할 수 있을까. 

작년 9월, 본인 지역구인 강서구 내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이 논란이 됐을 당시 김 권한대행은 “장애인 특수학교는 윈윈 하려는 것”이라며 한방병원 설립을 약속했던 과거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었다. 당시 관련 토론회에서 장애인을 둔 부모가 김 권한대행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아마도 김 권한대행에게 필요한 것은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었던 장애인들의 부모와 같은 절박함과 진심이리라. 편안하게 언론 인터뷰을 거듭하면서 앵무새처럼 “수술대” 운운을 반복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그런 절박함과 진심, 그리고 계파를 초월한 현실적인 쇄신안이 중도 층을 포함한 국민적 공감대을 얻기만 한다면, 이번 혁신안이 ‘김성태 개인의 권력의지 아니냐’는 의혹은 눈 녹듯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단식했을 당시도 얻지 못했던 ‘진짜’ 지지와 더불어 ‘진짜 보수’의 부활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