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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파문’ - 조선일보는 왜 사건을 빨리 매듭지으려 하나[기자수첩] 비공개 문건에 조선일보가 언급된 이유부터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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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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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4  16:57:12
수정 2018.06.04  17: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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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거래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립에 부정적인 박근혜 정권을 설득하기 위해 특정 사건 판결을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형사 고발 정도가 아니라 대법원 스스로 문을 닫겠다고 선언해야 할 사안이다.” 

조선일보 오늘자(4일) 사설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양승태 파문’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에 대해 조선일보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구나 – 이런 생각을 할 찰나,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법원 조사단이 공개한 자료들을 보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했고, 때로 청와대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은 있다. 그러나 청와대에 립 서비스를 했다거나 판결에 따른 경우의 수를 따져 유불리를 분석한 것이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아무 일 없었다’고 단정하는 조선일보 … 뭐가 그리 급한가 

이 대목이 재밌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번 파문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쪽에 힘을 싣는 보도를 계속 내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자(4일) 10면에 실린 <부장판사들 “재판 거래 사실 아닌데…” 반발 조짐>이란 기사 역시 그런 맥락의 연장선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오늘 사설에서 “법원 조사단이 공개한 자료들을 보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했고, 때로 청와대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은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럼에도 결론은 ‘아무 일 없었다’는 쪽으로 가지만,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언급한 이 대목이 이번 사건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장 ‘관할’ 하에 있는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했고, 때로 청와대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 - 물론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여러 궁리’와 ‘관계자 접촉’ 사이에는 짚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재판 거래’로 볼 수 있는 사실이나 정황 등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정말 대법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에 립 서비스를 했다거나 판결에 따른 경우의 수를 따져 유불리를 분석한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법원행정처가 왜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해야 했는지, 더구나 청와대 관계자와 왜 접촉을 했는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등은 ‘정밀조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계속 보도를 하고 있지만,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종결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공개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 공개되는 것이 두려운가 

사실 조선일보의 ‘초조함’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달 25일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찾아 문건을 공개했는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있는 410개 문건 중 단 3건만 부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비공개 문건 중에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2015년 9월20일) 등의 문건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 <이미지 출처=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최종조사보고서+첨부>

특조단이 보고서에서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움직임과 관련해 “보수언론을 통해 대응 논리 유포→고립화 전략 추진. 진보 성향 판사들의 돌출성 언행 전략 등 부각” 따위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힌 대목이 있는데, 단정할 순 없지만 진보성향 판사들에 대한 비판을 보수언론을 통해 부각시키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조선일보는 과거부터 사법부내 ‘우리법연구회’ 같은,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 모임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보도를 해왔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이후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비난성 보도로 일관했습니다.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도 조선일보는 ‘괴담’이라고 치부했습니다. 몇 가지 보도만 간단히 추립니다. 

<‘판사 블랙리스트’ 괴담 만든 판사들 ‘아니면 그만’인가> (2018년 5월28일자 사설)
<갈등·불신만 키운 ‘블랙리스트 조사’…어깨 무거워진 대법원장> (2018년 5월26일)
<[태평로] ‘본색’ 드러낸 김명수 사법부> (2018년 2월3일 27면)
<대법원장, 인적쇄신 한다더니… 법원행정처 요직에 자기사람 심었다> (2018년 2월2일 10면)

이중에서 지난 5월28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특히 논란이 됐습니다. 이른바 특조단이 조사권한과 강제력이 없어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진술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사에 허점이 많았고, 이런 한계 때문에 실체를 밝히지 못한 부분이 상당수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런 점은 깡그리 무시하고 이날 사설에서 “전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문건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근거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처음부터 '괴담'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사안이 확산되는 걸 어떻게든 덮어보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2015년 9월20일)과 같은 비공개 문건이 공개될 경우 조선일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이번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스스로 ‘비공개 문건’ 관련한 입장 밝혀야 

단정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이 있거든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왜 비판적인 판사들 움직임과 관련해 “보수언론을 통해 대응 논리 유포→고립화 전략 추진. 진보 성향 판사들의 돌출성 언행 전략 등 부각” 등의 방안을 검토했을까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선일보가 ‘자체 조사’를 통해 비공개 문건에 조선일보가 언급된 이유를 독자들께 설명하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기사와 사설, 칼럼 등을 봤을 때 이걸 택할 가능성은 낮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비공개 문건에 왜 조선일보가 언급됐는지는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일 의정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이번 주 법원 안팎에선 회의가 잇달아 열립니다.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주목됩니다. 조선일보 기대(?)와는 달리 ‘양승태 파문’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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