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년들의 개저씨들에 대한 태도는 일반적인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갈등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 최근의 개저씨들에게는 최소한의 이해나 존중도 남아 있지 않다. 개저씨라는 악에 받친 칭호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경멸과 혐오뿐이다. 개저씨들은 왜 이렇게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문화심리학자 한민이 <개저씨 심리학>(세창미디어)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한민은 개저씨와 연관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개저씨들은 아무 데서나 성희롱과 꼰대질을 일삼는 아저씨들”이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개저씨 경험담 중에는 대중교통과 공공시설 외에도 직장에서 상사로 만나는 개저씨 이야기가 주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나쁜 아저씨=개저씨’라는 얘기입니다. 

나쁜 기성세대가 되지 않으려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17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불리한 요소를 가졌습니다. 아저씨에 대한 이미지가 개저씨로 상징되는 시대에, 대기업을 다니는 40대 중반의 남성과 비정규직 2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드라마 초반 ‘나의 아저씨’에 대해 거센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쪽에 기준과 방점을 두고 드라마를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여러 해석과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나의 아저씨’를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여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봤습니다. 기성세대로 상징되는 ‘어른’이 ‘어른답게’ 사는 방법 - 그것이 ‘나의 아저씨’를 통해 일정 부분 드러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저씨’에는 다양한 군상의 기성세대가 등장합니다. <개저씨 심리학>에서 나오는 ‘개저씨’들은 물론 온갖 허점투성이 ‘어른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삼안E&C 간부들은 우리 사회 기성세대- 좀더 범위를 좁히면 기득권 세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인물들입니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대편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부하 직원 알기를 우습게 알고, 파견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는 건 기본입니다. 성공과 출세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들 반대편엔 주인공인 박동훈(이선균)을 비롯한 ‘3형제’와 ‘후계동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 통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대기업을 다니다 불미스런 일로 잘려서 별다른 직업이 없는 인물도 있고, 제약회사 간부로 있다 ‘한방에’ 청소대행업체로 전락한(?) 사람도 있습니다. 촉망받는 영화감독이었지만 지금은 백수나 다름없는 인물도 나옵니다. 하지만 ‘후계동 사람들’ 대부분은 조그마한 가게를 꾸려서 삶을 이어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입니다.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삼안E&C 간부들이 우리 사회 기득권을 대변하기 때문에 ‘나쁜 개저씨’이고, 후계동 사람들이 서민을 상징하기 때문에 ‘착한 어른’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 후계동 사람들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서민들도 출세와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욕망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이유’나 ‘다른 환경적 요인’으로 지금은 변방으로 밀려나 있을 뿐이죠. 삶의 어떤 지점에서 이들도 개저씨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 역시 ‘문제 많은’ 기성세대에 속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후계동 사람들이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지만, 그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바뀐 상황’에 때론 좌절하고, 분노도 표출하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이들은 행복하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사회적 성공과 기준을 어떤 지점에 놓을 것인가에 따라 행복의 기준 역시 달라진다는 걸 말해줍니다. 

“인간이 잘난 척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오면, 잘난척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인간은 그냥 사랑만 하면 되고.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 지겨워. 난 잘난 게 하나도 없어서 죽을 것 같아요.” 

‘나의 아저씨’에서 최유라(나라)가 한 말입니다. 최유라는 한때 천재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박기훈(송새벽)을 보며 “망가져도 괜찮은 거였구나”라고 말합니다. 최유라는 이 말을 후계동 사람들을 향해서도 똑같이 합니다. 

우리 사회 성공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모두 ‘망가진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행하거나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에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도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에서 성공 또는 생존하기 위해 남을 헐뜯고 비난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죠. 

공감할 줄 아는 ‘어른’과 욕망을 앞세운 기성세대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의 아저씨’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나의 아저씨’를,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 –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지안(아이유)으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 혹은 ‘주변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기성세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박동훈(이선균)은 이지안(아이유)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설명하면서 무료로 할머니가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지안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해줄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 – 어쩌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개저씨로 통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박동훈은 “할머니 돌아가시면 꼭 연락해”라고 말합니다. 혈육이라고는 제대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할머니밖에 없는 이지안에게 이 말은 자신이 더 이상 ‘아웃사이더’나 ‘외톨이’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실제 박동훈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이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에 함께 하면서 장례식 절차와 진행의 상당 부분을 도맡게 됩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텅 빈 이지안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동훈의 가족과 친구들 이른바 ‘후계동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망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리고 허점투성이의 못난 인간들이었지만, 적어도 이지안에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성공과 출세,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어른’이었던 겁니다. 

출세한 어른보다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필요하다

“철없는 상태로 대부분을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이 들고 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핵심이지 그저 객관적으로, 양적으로 시간이 늘어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이듦 수업>(서해문집)에서 고미숙 고전인문학자가 한 말입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중년 이후 ‘존엄한 노인’으로 사는 지혜와 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 즉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 아니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는다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성공한 어른, 출세한 어른보다 주변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어른’이 더 많이 필요한 건지도 모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