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종이이불>
-서울역 쪽방을 지키는 여재훈 신부께

동짓밤이 긴 긴 것은
해가 짧아서만은 아니라네. 
해마다 동짓달 밤이 기나 긴 것은 
작년에 못 다한 사연을 이 밤에도 다 하지 못해서만도 아니라네. 

해마다 350명 넘는 이들이 집이 없어 
굶어죽고 얼어죽는 밤은 대체 얼마나 긴가. 
이슬을 덮고 자는 그 밤은 
봄에도 동지
그 시멘트 침대는 여름에도 동지
그 종이이불은 가을에도 동지라서

동짓밤이 기나 긴 것은 
밤이 그저 길어서만은 아니라네. 
해마다 동짓달 밤이 긴 긴 것은 
팥죽을 먹지 못해서는 더욱 아니라네. 
해마다 1300명씩 노숙인, 1인 가구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죽어 밤하늘 이름 없는 별은 또 얼마나 새로 돋는가. 

동짓밤이 기나 긴 것은
동짓달 섣달이라서만은 아니라네. 
해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동짓달 밤은
내일 아침 가장 늦게 뜨는 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서 기나 길기만 하다네. 

▲ 노숙인희망지원센터 여재훈 신부가 지난 2011년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설 현황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 여재훈 성공회 신부는 서울시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거리의 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학장으로 십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