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발표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대한 자체 방안과 관련, 지난달 법무‧검찰 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가 제시한 권고안보다 축소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될 공수처 신설안이 어느 정도의 조직과 권한으로 짜여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 16일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이정미 대표.<사진제공=뉴시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6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공수처의 정부안이 조직규모와 수사범위 등에서 처음보다 후퇴한 내용으로 확정됐다. 문재인정부의 공약후퇴 논란에 또다른 불을 지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법무부가 내놓은 공수처 신설안은 개혁위의 권고안에서 조직규모를 반토막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법무부가 15일 발표한 공수처 설치안에 따르면 처장, 차장은 각 1명씩 두고 검사는 25명 이내로 인원을 구성하도록 했다. 이는 소속검사를 30인 이상 50인 이내로 규정한 개혁위 권고안에 비해 줄어든 숫자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른바 ‘슈퍼 공수처’ 논란을 감안해 규모 및 권한을 조정하되 효과적인 수사가 가능한 규모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수사범위도 개혁위 권고안에 비해 축소됐다. 권고안은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이상의 고위직 공무원, 그리고 그 가족(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의 직무 관련 범죄가 수사대상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안에서는 고위공무원단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축소하고 비공직자 성격이 강한 금융감독원을 제외시켰다. 장성급 장교의 경우에는 군사법원 관할 등의 문제로 전직에 한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공수처의 우선 수사권 문제와 관련, 법무부 안은 공수처에서 요구하는 경우에 이첩하도록 하도록 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중인 기관에 공수처 통지의무를 부과한 개혁위 안과는 다소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 다만, 법무부는 사건이 중첩될 경우에는 공수처장에게 우선적 수사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 <자료=법무부, 그래픽=뉴시스>

이 대표는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핵심 중 핵심으로 시민사회의 숙원이었다.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무려 8명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며 “법무부가 일부보수진영의 ‘슈퍼공수처’ 프레임을 의식해 지레 겁을 먹고 개혁안을 후퇴시킨 것이라면, 이는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진행된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공수처 설치안 축소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초 개혁위에서 냈던 권고안보다 많이 후퇴해서 장관이나 법무부가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화된 것 아니냐, 공수처가 힘빠져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것 아니냐, 그 정도 규모로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상기 법무장관은 “공수처를 설치하겠다는 법무부의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없다”며 “개혁위 권고안보다 규모가 축소된 부분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수사규모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훙준표 “더 사납고 말 잘듣는 맹견 한 마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법안”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앞으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정부 법안을 내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박 장관은 “정부법안을 내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미 국회에 제출된 의원안이 있어서 정부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며 “이러한 기본입장을 바탕으로 국회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라고 답했다.

노 의원은 “현직 장성을 왜 (공수처에서 수사) 못하나. 군수비리 같은 것 수사할 때 관할을 넘겨받아서, 군 검찰을 파견받아서 함께 수사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첫 단추를 낄 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며 “앞으로 법안 만드는 과정에서 고위공무원과 군 장성 부문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이와 관련해서 법무부도 전향적인 판단을 하시라”고 당부했다.

▲ 16일 진행된 법무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상기 법무부장관.<사진제공=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6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그동안 공수처 설치에 반대입장을 견지해온 법무부가 법무부 내부 개혁위원회가 발표한 개혁안보다도 권한을 대폭 축소해,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한 공수처를 만들자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은 “검사가 수사 중 비리가 있음을 알게 된 때 즉각 통지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공수처는 적기에 수사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며 “공수처의 우선적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 즉각 통지의무 규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검찰의 경우 공수처 검사의 모든 범죄를 관할하는 반면 공수처 검사는 검찰 소속 검사의 범죄를 한정적으로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도 맞지 않으며, 형성성에도 어긋나는 조항”이라며 “검찰의 ‘제식구’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수처가 도입되는 점을 상기하며 이러한 검찰의 ‘꼼수’ 조항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동안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전례를 감안해 고위공무원단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슈퍼’, 또는 ‘미니’ 공수처가 쟁점이 아니라 검찰의 검찰권 오남용을 답습하지 않도록 공수처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수처는 검찰을 견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수처 설치법을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하기도 했다.

▲ 지난달 18일 공수처 신설 권고안을 발표하는 한인섭 법무‧검찰개혁 위원장.<사진제공=뉴시스>

한편, 자유한국당은 법무부의 공수처 안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홍준표 대표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검찰청 하나 더 만드는데 불가한 것”이라며 “지금 검찰청도 충견처럼 부리고 있는데 더 사납고 말 잘듣는 맹견 한 마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법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전방위적인 정치보복을 가할 수 있는 공수처가 하나의 추가기관이 될 수 있고 또 하나의 슈퍼 검찰이자 정치보복 기관으로 변신함으로써 먼지털이식 정치보복 수사가 가해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담겨져있는 것이 공수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