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11일 ‘김이수 부결사태’로 쓴 잔을 마셔야했던 여당은 한숨을 돌렸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돼 온 ‘사법개혁’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회는 21일 본회의를 열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했다. 결과는 ‘가결’이었다. 재석의원 298명 중 찬성표는 가결정족수를 가뿐히 넘긴 160표. 반대는 134표였으며 기권은 1표, 무효는 3표였다.

▲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자 기뻐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사진제공=뉴시스>

이에 따라 인준 부결시 우려됐던 사법부 공백 사태는 막게 됐다. 김 후보자는 오는 24일 임기가 만료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이어 제 16대 대법원장 직에 취임해 6년간 사법부를 이끌게 된다.

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준 통과 이후 입장문을 발표하고 “사법부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도전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을 위한 사법을 구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자한당 “사법부 앞세운 제2의 문화대혁명 우려되는 상황”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결 직후 논평을 내고 ‘승리’를 자축했다. 김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법개혁을 이끌 적임자임에 틀림없는 분”이라며 “국민과 함께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상초유의 대법원장 공백사태를 막기 위해 야당의 협력으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는 점에서도 감사드린다”고도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 고등법원 이원화, 대법관 구성 다양화, 전관예우 의혹 차단을 위한 외부감사관 도입, 법관의 책임성 강화 등 국민과 한 약속을 차질없이 추진해 주시길 요청드린다”는 메시지를 김 후보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정의당도 김종대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환영의사를 나타내며 “며칠 후 임기를 시작하는 신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동안 보여줬던 청렴성과 불편부당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신장에 기여하는 법원을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아울러 “사법부의 적폐를 일소하고 진정한 사법독립을 향해 나아가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법관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청렴함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또한 31년간 재판에 종사하면서 잡음 없이 공평무사하게 직무를 처리해 왔다”며 “이러한 후보자를 부결시키자고 선동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정당인가. 동성애를 차별없이 대하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를 문제삼아 부결을 선동하는 행태는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된다”고 보수야당들을 꼬집었다.

▲ 21일 의원총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동참을 호소하며 고개숙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사진제공=뉴시스>

그간 줄곧 인준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자유한국당은 강효상 대변인의 논평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동안 보여준 국민 보편적 가치관과 동떨어진 인식과 정권의 입맛에 맞는 좌편향적인 코드는 사법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더욱 불확시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강 대변인은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6년 동안 사법부가 정치화와 코드화로 인해 정권의 방패로 전락한다면 헌법상 삼권 분립이 완전히 무너지고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불가능하게 될”이라며 “사법부를 앞세운 제2의 문화대혁명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라는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날 오전 ‘인준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했던 바른정당은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번 표결 결과를 두고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을 국회가 방조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사법부마저 정치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수민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여야 원내지도부 및 표결에 참여하신 모든 의원님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며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겠다는 국회에서의 약속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며, 사법개혁을 이뤄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캐스팅 보트’ 국민의당 “사법개혁의 필요성-국민적 열망 고려”

지난번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표결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의당의 표심은 김명수 후보자 인준 통과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민주당이 보유한 의석은 121석. 여기에 6석의 정의당과 2석의 새민중정당, 그리고 무소속인 정세균 국회의장의 표까지 합해도 130석에 불과하다. 때문에 40석을 보유한 국민의당의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김성식 의원과 천정배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이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율투표 원칙을 고수한데다가 연일 문재인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안철수 대표의 행보 등을 감안하면 인준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바른정당까지 표결 당일 오전 ‘반대’ 당론을 확정하면서 민주당으로서는 국민의당 의원들의 찬성표가 더욱 절실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인상(喪)을 빼고서는 전원이 참석해서 이것(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켜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느껴지듯 자유한국당도 인준 부결에 당력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21일 만나 악수를 나누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사진제공=뉴시스>

이에 민주당은 총력을 기울여 국민의당 의원 설득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김이수 부결사태’ 이후 국민의당을 거세게 비난했던 추미애 대표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는 ‘낮은 자세’를 보인 것은 이를 방증하는 장면. 그리고 이같은 민주당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긍정적인 기류는 이날 국민의당 의원 총회 이후 감지되기 시작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 인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세 차례 의원총회를 거치면서 국민의당 40명 의원 전체를 상대로 나름대로 찬반입장을 확인해본 결과 반대의견보다는 찬성의견이 다소 많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전원 반대하더라도 민주당 내에 이탈표가 전혀 없다면 김 후보자는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수민 원내대변인도 이날 국회 표결 직후 논평에서 “국민의당 의원들은 3차례 의총에서 격론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찬성의견이 많아 본회의 통과를 예상했었다”며 “사법개혁의 필요성이 높고 그에 대한 국민적 열망 또한 높은 상황이 고려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지난번 김이수 부결사태 이후 국민의당을 향해 쏟아진 비판의 목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당시 단 2표가 모자라 인준에 실패한 것이 국민의당의 ‘비협조’로 인한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 나온 바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국민의당의 표심이 ‘부결’쪽으로 기운다면 김이수 후보자 인준 투표 이후보다 더한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김명수 후보자가 인사청문 과정에서 특별한 도덕적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인준반대 명분이 약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