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할머니>

-오늘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李 할머니 영전에

이름 모르는 李 할머니.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떠난

李 할머니는

김 할머니이자, 또 박 할머니.

아흔넷에 세상을 떠난 李 할머니는

김이박 소녀이고,

정최조강장윤임신 처녀이고,

안서오문홍고백류손황송양정심임유성우차주남민전곽허엄하지원나진배공채현함방염노변도강추소석마설여연표위기길육왕옥남궁맹모제국탁구어용은편반부예가황보목봉사복태목아화제갈태동선우범좌사공상음피은천빈감호서문승시경단견갈순당옹독고 집안에서 끌려가

타이완 오이카나와 버마 만주 상하이

태평양에 흩뿌린 열대우림 섬까지

이름없이 사라진 일본군 위안부들.

李 할머니 고향은 청진

자란 곳은 경주 안강.

김 할머니 고향은 나주

끌려간 곳은 정글.

박 할머니 내쫓기던 곳은 뉴기니

돌아가지 못한 고향은 장단.

주소가 다르고

이름이 없어도

운명은 하나.

해방 뒤에도

이름없는 밥집 아주머니로

밭일할 때는 호미 든 할머니로

이름 모르는 李 할머니.

마지막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李 할머니.

부재하는 이름으로 모든 이름인 할머니.

이름이 없어

고통 받는 모든 이름 없는 자를 대신하는 할머니.

李 아무개 할머니는

김이박 할머니.

李 아무개 할머니는

김이박 소녀들.

이름이 없어 모두의 이름인 李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