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구모!> 
-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겪으면서

나는, 벌레가 아니다. 
나는, 기생충이 아니다. 
다만 와구모라고 불러다오. 

너의 겨드랑이 사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뜨뜻한 살갗에 천국이 있다. 
깃털 돋아난 틈새로 너를 파고드는 밤
황홀한 피향기
몸길이 0.6밀리 미터의 소박한 자유.

나는 너의 살아있는 몸에서 2억 마리의 나를 낳았고
너의 죽은 몸에서 생명의 바람을 얻어 
밤을 타고 퍼지는 
진정으로 나는 참 진드기다. 

횃대를 치면서 죽어갈 때도 닭은 간지러워했나니
내가 세상에 주는 것은 오직 웃음뿐이다. 
웃음은 죽음이다!
축축한 어둠은 나의 먹이. 
밤이여, 
낮을 처치해버린 나의 벗이여. 

닭이 알을 낳고
알이 다시 닭이 되고
다시 닭이 알을 낳도록
아무리 피가 그리워도 
9개월 정도 쯤이야 좋다. 
나는 너를 기다릴 수 있다. 

닭똥 틈바구니에서도
영하 20도에서도 
너를 위하여 나는
기꺼이 노래 부를 수 있다. 
그리운 너의 항문이여, 
우리들의 고향이여.

피를 구하는 기도와 한없는 매복은 나의 습관, 
모든 깃털 있는 것들을 사모하는 건 우리 무리들의 관습. 
다만 빛을 혐오하여
음지에서 양지를 도모하는구나. 
나는 와구모다!

소년이여, 또 청년이여, 그리고 입술 아리따운 여인이여, 
야식 치맥을 뜯어먹을 때마다 내 이름을 한 번씩만 불러다오. 
와구모!
나는 안다. 
이제 죽은 닭과 산 달걀들이 너희들을 먹어치울 차례라는 걸. 
이것은 퀴퀴하게 썩어가고 있는 양계장 틈새에서 내리는 나의 첫 명령이다. 
너희들이 살충제로 이를 닦게 하리라. 
나는 너희들의 모든 식탁에 댓글을 단다.
와구모!

* 와구모는 닭진드기 이름이다. 응애목目, 중기문아목中氣門亞目, 와구모과(Poultry mite, Red mite, Dermanyssus gallinae).

▲ 울산시 울주군은 17일 오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2개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전량(27만개 13t)을 울주군 삼동면 쓰레기 집하장에서 폐기처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