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4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웃음기 없는 얼굴,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를 통해 기자가 느낀 박헌영씨의 인상이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증인으로, 한때는 태블릿PC ‘위증모의’ 논란으로 곤혹을 치렀다.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헌영씨는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넘쳤다. “내부제보를 했던 이들을 기억 해달라” 힘주어 말하면서도 인터뷰 중간 중간 최순실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박헌영씨는 ‘go발뉴스’ 자발적 정기구독자다. 그가 ‘go발뉴스’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확인해보니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go발뉴스’를 꾸준히 후원 해오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끝까지 남아 정동춘 전 이사장으로부터 지키려했던 K스포츠재단에 지난달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직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현재 재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다음은 ‘go발뉴스’가 박헌영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go발뉴스’ 독자인터뷰를 진행했다. 5번째 독자인터뷰의 주인공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증인인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이다. Ⓒ go발뉴스

- 고발뉴스 후원자인걸 알고 사실 깜짝 놀랐다.

“사실 고발뉴스 후원한다는 얘기를 초반에 <뉴스공장>과 <파파이스> 인터뷰하러 갔을 때 김어준씨한테 했어요. 김어준씨가 이상호 기자와 친하니 은근슬쩍 얘기 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얘기를 안했는지, 모르시더라고요. 최근에 저와 관련된 기사를 SNS에 공유하셨길래 트위터로 먼저 얘기를 꺼냈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놀라시기도 했겠죠. 최순실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고발뉴스 후원자라고 하니까(웃음).”

- 고발뉴스를 후원하게 된 계기는?

“고발뉴스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MBC가 <손바닥뉴스>를 없애자 이상호 기자가 고발뉴스를 시작했죠. 그런데 후원까지 할 생각은 못했어요. 세월호가 터지고 그 황망한 가운데서 이상호 기자가 팽목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후원하게 됐죠. <다이빙벨>도 봤고요.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후원을 시작했어요.”

- 세월호 참사가 직접적인 후원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 더 아픈 이유가 있지만 구체적인 말씀을 못 드릴 거 같아요. 다만, 미수습자 가족들이 아직 목포에 계시잖아요. 가족을 찾으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진도 체육관에 가득 찼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아홉 가족만 남았을 때 그 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많이 생각해봤어요. 그 엄청난 소외감, 자식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찾지도 못해 팽목항에 남아야만 했던 그 심정이 어땠을까.

그 분들의 심정을 감히 누가 안다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세월호 얘기 그만 하라’ ‘이젠 잊어라’ 그런 말 하지 마시고 미수습자분들 다 찾을 때까지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주시고 정부도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요.”

-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터지고 나서 뭐가 달라졌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게 달라졌어요. 삶이 바뀌었죠. 지금은 내부제보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올초 설립된 ‘내부제보실천운동’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SNS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아직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최순실과의 인연.. 정말 운명이란 게 존재할까?”

- 최순실씨 만나면서 SNS를 접었다던데.

“사실 트위터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트위터를 해왔어요. SNS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죠. 그러던 중 2016년 1월에 최순실씨를 만나 일하게 된 거죠. 당시 최씨가 ‘여기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하더라고요. 신분 조회 등 검증을 통과해야 채용한다고.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특정한 분들에 대해 조사가 돼 있는 문건을 봤는데 누가 봐도 청와대나 정보기관에서 조사된 내용이었어요. 양식도 그렇고. 이렇게 조사가 되는 거라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그날로 SNS를 접었죠.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저에 대해서는 검증을 안 한 것 같더라고요. 만약 저에 대해 뒷조사 했다면, 고발뉴스 정기후원도 하고 있었는데, 걸리지 않았을까(웃음). 고영태씨 소개로 들어왔기 때문에 뒷조사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신은 안 믿지만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 최순실의 실체에 대해 언제 알게 된 건가.

“저를 데려왔던 고영태는 물론 그 누구도 최씨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인터넷 검색 등으로 혼자 알아봤죠. 그러다가 검색이 된 게 빨간옷 입고, 흰 모자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승마장인가에서 정윤회씨하고 같이 있는 사진이 검색 된 거예요. 그걸 보고 이 분인 것 같은데 ‘맞나, 아닌가’ 고민하다가, 계속 알아보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고영태씨한테 ‘나 이제 회장이 누군지 안다, 맞죠?’라고 물으니 당황하면서 ‘뭘 알려고 하냐, 몰라도 된다, 어디 가서 얘기도 하지 말라’고 해서 확신하게 된 거죠.”

▲ 최순실 씨와 공모해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오른쪽) 씨가 지난 5월 30일 오전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역사의 죄인은 되지 마시라’ 전하고 싶었다”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증인으로서 지난 6일이 사실상 마지막 재판 출석이었다. 그날 재판장에서 최씨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던데.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그리고 수많은 증거들이 그들을 지목하는데 박근혜와 최순실이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떻게 보면 국가적 불행을 만든 장본인들이 정말 역사에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최순실씨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판사님과 얘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최씨가 끼어들면서 ‘심장이 떨려서 듣고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전하지 못했어요. 비난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역사에 죄는 짓지 마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죄를 지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죄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과 끝까지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남 탓만 하는 건 다르죠.”

- 최순실의 업무지시 내용이 적힌 수첩을 ‘죽을까봐 땅에 묻어 놨다’고 했다. 4개월 동안 가지고 있다가 뒤늦게 검찰에 제출한 이유는?

“2016년 10월24일 날 처음 검찰 조사를 받았어요. 조사 받고 나와서 뉴스를 보니까 그날 JTBC가 태블릿PC에 대해 보도했더라고요. 그때 ‘아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직감했고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다음날 바로 검찰에 가서 사실대로 진술했어요. 수첩에 있는 내용들은 이미 검찰 조사 때 다 진술한 내용이에요. 수첩 제출만 늦게 한 셈이죠.

수첩을 땅에 묻어 보관하고 있었던 이유는 공포심 때문이었어요.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두려웠거든요.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도 되지 않고, 최순실이 체포도 되지 않았다면 제가 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사건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참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울면서 얘기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초반에는 길을 걸을 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집 앞에 있는 비상구를 한 번씩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내 차인데도, 문이 잠겨 있는데도 차에 타서 자꾸 뒷자리를 돌아보게 되고요. 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계속 그렇게 살수는 없으니까요.”

▲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K스포츠재단 박헌영 씨가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겼다. Ⓒ go발뉴스

“청문회 ‘위증모의’ 논란.. 구제되지 못한 상처”

- 청문회 과정에서 ‘위증 모의’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억울한 면이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못했어요. 박근혜 탄핵을 막으려는 세력들이 이런 부분들을 악용해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갈까봐 사실 두려웠고요. 아직도 태블릿PC 관련해서는 ‘박헌영? 처음에 거짓말하다가 나중에 불리해지니까 말 바꾼 놈 아냐?’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게 제가 국정농단 사태에서 겪은 가장 큰 상처에요.”

-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제가 12월15일에 청문회 증인으로 처음 출석하기 이틀 전에 고영태씨가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했어요. ‘15일에 박헌영이 청문회에 나와서 새누리당 모 의원과 짜고 태블릿PC와 관련해 위증을 할거라고 들었다’는 내용의 인터뷰였어요. 그리고 18일에는 <중앙일보>가 노승일씨와 인터뷰를 하고 “새누리당 모 의원이 정동춘 이사장을 통해서 박헌영에게 위증교사를 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기사를 냈죠.

청문회 전에 간사가 증인을 만나는 그런 자리에서 이완영 의원이 정동춘씨한테 ‘박헌영이 알고 있는 태블릿PC에 대해 인터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며 정동춘씨가 저한테 ‘인터뷰 해볼래?’라고 묻기에 ‘안합니다, 내가 왜 합니까’라고 단칼에 끊고 밖으로 나왔어요. 베란다에 담배 피러 나가보니 노승일씨가 있었고, ‘이사장실에 가서 무슨 얘기했냐’ 묻기에 그 얘기를 해줬어요. 그리고 노승일씨한테는 청문회 나가면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다 말 할 거라고 얘기했었어요.

‘인터뷰를 해보라고해서 안하겠다고 했다’는 것과 ‘새누리당이 위증을 교사해서 청문회 나와서 위증을 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에서 전 국민 앞에서 새누리당 의원들하고 짜고 거짓말한 사람이 됐습니다. 나중에 노승일씨한테 물어봤어요. 왜그랬냐고. 자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그렇게 썼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해가 안 되는 건, ‘박헌영이 이렇게 말했고, 위증 지시를 받았다’는 건데, 해당 기사를 쓴 누구도 저한테 크로스 체크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것 같다.

“‘위증모의’ 문제로 언론에 굉장히 화가 나있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에 죄송한 점도 있었어요. 처음엔 ‘찾아오지 말라’며 최순실에 대해 ‘모른다’고 거짓말 했잖아요. 그때는 두려웠어요. 검찰에 몰래 가서 사실대로 증언했지만, 언론에까지 이야기하면 제 존재가 너무 드러나게 되잖아요. 그게 두려웠어요.

내부제보자들 입장에서는 사실 엄청난 걸 걸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언론이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지 않고 자신들의 논조에 맞춰 기사를 쓴다면 그건 제보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5차 청문회에 참고인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옳은 일 했다’ 응원 한마디.. 내부제보자들에겐 큰 힘”

- 내부제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당신은 옳은 일을 했다’라는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외면보다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힘을 내세요.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이 옳은 일을 한 것이니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주셔도 그 자체로 정말 힘을 얻어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에요.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여파로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니까요.

하지만 조직을 위해 옳은 일이라 여겨 고발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그것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징계를 받고, 심지어 해고까지 당합니다. 우리사회는 끝까지 싸워서 좋은 사례를 남기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내부제보자 보호를 위해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내부제보자 관련 업무를 보고 있지만 제보자가 노출돼 더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해요. 또 국가에서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으려면 언론이나 검찰에 먼저 제보를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들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법제화 추진을 위해 변호사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시고, 법안 상정에 도움을 주겠다며 관심을 보이는 국회의원들도 있어요.”

- 향후 계획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에요. 저한테 닥친 일이 너무 큰일이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제 마무리 수순을 밟아가고 있지만 이게 진짜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지, 나중에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니까요. ‘내부제보실천운동’에서 하는 내부제보자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예요.

마지막으로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박근혜게이트’에 등장한 박헌영이라는 사람은 잊으셔도 돼요. 다만 내부제보를 했던 사람, 공익을 위해 폭로했던 사람들은 기억해달라고 당부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