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死因)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은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을 향해 사건의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남춘 간사 등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4일 논평을 내고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지난해 11월 6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노제'에 들어서고 있는 운구차량.<사진제공=뉴시스>

그러나 “아직 그날의 죽음과 관련해 제대로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단 한 사람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검찰 역시 수사를 지연시키며 책임자를 밝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며 “사건이 발생한 지 580일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찰을 향해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라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고인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민사재판과 앞으로 진행될 형사재판에서 분명하게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검찰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수사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500일 넘게 고통 받고 있는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수차 사용을 자제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마련으로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희생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한 달 넘게 장례도 못 치르고 노심초사했던 유가족들께 다시 한 번 깊은 위로를 드리며, 뒤늦게나마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김 대변인은 “서울대병원은 사인왜곡 등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숨김없이 밝혀야 할 책무가 있다”며 “책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작년 9월 국회청문회에서 거짓 증언한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도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바로잡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엉터리 사망진단서로 인해 유족은 사망신고도 하지 못했다”며 “국가폭력에 의해 가족을 잃고도 긴 투쟁을 멈출 수 없었던 유족에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추 대변인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공권력이 저지른 살인이다. 이 변할 수 없는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한 책임자는 누구인가”라며 “백남기 농민 사망의 진실을 이제는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인의 사망원인을 밝히자며 시신 탈취까지 모의한 검찰과 경찰, 그런 만행의 근거가 된 사망진단서를 쓴 주치의, 서울대병원장과 청와대 간 어떤 논의가 오고갔는지, 청와대의 외압은 없었는지 샅샅이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가해자인 정부와 경찰, 그 가담자는 응분의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한다. 경찰은 법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너무 늦게 이뤄졌다. 늦게나마 정정이 이뤄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명백한 사망원인을 왜 병사로 기재하게 되었는지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백선하 교수와 서창석 병원장은 유족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인 조작 시도의 전말을 고백하며, 사법처리 등 응분의 처벌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부는 “경찰 당국의 당시 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작업도 시작해야 한다. 당시 현장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임기를 마쳐 유족에게 피눈물을, 국민에게 분노를 안겨준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정준길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이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트린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며 “사인은 객관적인 의학 전문 영역이지 관련자의 주관과 정치적 입장이 반영될 영역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망 사유가 변경되는 상황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국민은 거의 없다. 생명을 다루는 의과대학마저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국민이 의사에게 안심하고 건강과 생명을 맡길 수 없다”며 “서울대병원의 발표는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밝혔다.

“직접적 원인은 물대포?” 질문에 병원 측 “다른게 있는가”

이에 앞서 서울대병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연건동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병원 측에 따르면 당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던 전공의는 병원 자체 윤리위원회의 수정권고를 받아들여 사인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15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김연수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사진제공=뉴시스>

백남기 농민은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지만 317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는 사인을 ‘병사’라고 주장해 이에 대한 거센 비판여론이 일었다.

기자회견에 나선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오늘 아침에 유족을 찾아뵙고 진심 어린 사과를 드렸다”며 “지난 1년 가까운 동안 국민 여러분에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김 부원장은 사인 수정 과정과 관련,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진단서) 수정도 수정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의사의 집단지성과 경험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의사윤리위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번째 원칙은 전공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가 지도교수의 직접 지도를 받는 동안에는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도)기간이 4월말로 끝나 이같은 (사인 수정)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뉴스1>의 보도에 따르면 “외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경찰의 물대포인가”라는 질문에 병원 측은 “그것 말고 다른 게 있는가”라고 답했다. 다만, 병원 측은 “백선하 교수는 윤리위 권고대상이 아니다. 대상은 전공의”라며 “백 교수가 외인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측에서 백씨 사망진단서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따로 전해온 적은 없다”며 “앞으로 새 사망진단서를 입수해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