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주민증이나 주민등록제도는 군사독재의 감시체제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9월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조선기류령과 기류수속조치가 주민등록제도의 효시다. 식민지 감시와 동원 체제 유산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조선기류령이 유지되어 오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제정한 주민등록법으로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식민지 유산을 계승, 강화, 발전시켜낸 것이다.

주민등록법(1962년 5월 10일 공포) 제1조에는 이 법의 목적을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동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와 6조, 10조에는 ‘본적지를 떠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소, 본적을 시읍면에 등록하도록 하고 세대 전부 또는 일부가 이동할 때에도 퇴거와 전입신고를 의무화하도록’하고 있다.

법률이 본격적으로 집행되기 시작한 계기는 1·21 사태였다. 이 주민등록제도와 함께 가동된 게 향토 예비군 제도다. 감시와 동원은 언제나 한 형제로 온다는 걸 세계사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사례다.

주민등록표작성일(1968년 10월20일)이 가까워지자 읍면동사무소 직원들과 경찰들이 나서서 이를 독려했다. 당시 경찰이란 필시 순사에 가까웠다. 약자를 을러대는 게 전문이었다는 뜻이다. 이태 뒤 전국민 열 손가락에 지문을 찍도록 했다.(1970년) 청년들은 이를 피아노 찍는다고들 비아냥거렸다. 늘 연장을 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지문 찍기가 쉽지 않았다. 지문이 흐린 사람들은 숫제 애국심이 흐리기라도 한 양 지문이 잘 드러나도록 손을 물에 담근 채 초조해하던 광경이 생생하다.

주민등록법은 등록 대상을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 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진 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식민지 치하 때보다 내용을 더욱 치밀하게 했다. 일제조차도 9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본적지의 일정한 장소에 주소 또는 거소를 정한 자로 했던 것이다. 법률 어구는 일제 때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해 11월 21일부터 18세 이상 모든 국민은 인격체자 주권자가 아니라 한낱 일곱 자리 숫자로 전락해갔다. 주민증 제도가 생기면서 시·도민증은 폐지되었다. 첫번째 주민증 발급자는 이를 기획하고 실행한 통치자 박정희였다. 그의 주민등록증 번호는 110101~100001이고, 부인 육영수는 110101~200002였다. 이 일련 번호는 신의 반열에 오른 권력을 숫자로 상징한다.

반독재민주화운동시절 군대를 갔다 온 운동권 학생 등은 사실상 모두 수배자였다. 경찰을 피해 다녀야 했으므로 자연히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 없었으니 향토 예비군 설치법 위반자였고, 거소가 일정할 수 없었으므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하숙도 30일 이상 거주 목적이다)

68년은 감시와 동원체제의 본격화이자 유신의 뿌리였다. 향군법과 주민등록법이 가동되는 일상에는 도시 경계마다에서 향군법 위반자 등을 가려내 낚아채던 검문소와 파출소 뿐 아니라 동사무소가 있었다. 그 책임자인 동장의 첫번째 임무가 주민 ‘동태’ 파악이었다. 정태가 아니었다. 이렇듯 주민등록제도는 주권자를 권력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등록’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총체적 감시사회의 산물이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등 몇몇 국가가 전 국민 신분증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쯩’ 자체의 일련번호를 부여할 뿐 분실 등으로 재발급 받게 되면 번호 자체가 바뀐다. 한국 주민등록(증) 제도처럼 전 국민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해 개인에 관한 갖가지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나라는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영국이나 프랑코 독재 치하의 스페인 등 몇몇 국가 밖에 없었다. 전쟁상태의 국가나 극단적인 독재국가에서나 사용된 주민통제 제도라는 말이다. 미국의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여기에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이는 세금, 일자리, 신용 등에 활용을 목적으로 한다. 시민 대부분은 신체 기록이 들어 있는 운전면허증으로 대신한다.

새 정부 들어서 각료 임명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위장전입을 통해 불로소득 따위를 취하고자 한 행태는 주민등록법이 아니라 다른 형법으로 규율하는 게 마땅하다. 기왕에 하는 말이지만 감시체제가 효과 여부를 떠나 부동산 투기 억제 목적과 연결된 건 유신체제와 개발독재가 남긴 기묘한 동거다. 공무를 담임하고자 하는 자 중에 그러한 이익을 취한 자는 취임 불가는 물론 이제라도 이익을 회수해야 한다.

요컨대 오늘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하는 건 주민등록법 위반 따위가 아니라 이 주민등록법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일이다. 이제 감시체제를 끝낼 때가 되었다. 주권자는 권력의 감시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민주사회라고 한다. 하물며 외국에서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입증해야 하는 신분증인 여권에도 개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생물학적 기록인 지문을 찍지 않아 왔다. 자신임을 얼굴로 증명하는 ‘증명사진’ 한 장이면 족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것은 민주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박혀 있는 권리증, 곧 시민권증이다. 촛불시민혁명은 이를 명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 걸음 더 크게 내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