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군인이 부대 바깥에서 생물학적 동성과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언론에서는 그를 이름하여 ‘A’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이름을 빼앗긴 채 익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A'는 이름 없이 숨어서 고통 받고 있는 모두의 이름으로 울고 있다. 다만 'A'에게 씌워진 죄는 이름이 있어 계간, 비역질이다. 계간(鷄姦)이란 암탉이 성기가 따로 있지 않고 항문과 같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다른 말로는 비역질이라고 한다. ‘병아리’의 옛 표현인 ‘비육’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궁둥이 쪽 사타구니 살을 이르는 말이 비역이다. 

한국 군대에는 남색법(男色法, Sodomy Law)이 존재한다. 군인이 남성 사이 성행위나 성적 접촉이 있을 경우 당사자 사이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군형법 제92조 6항)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박탈하고 있는 조항이다. 강제성만 없다면 여성과 나눈 관계는 따지지 않는다. 그나마 ‘계간’이라는 비하가 ‘항문성교’라는 구체어로 표현이 바뀐 게 2013년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계간법을 합헌으로 판결했다.(2016년)

사회적 성별 정체성(gender)은 생물학적 성, 곧 해부학적 성(sex)과는 독립적으로 획득된다. 대한민국 군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성별 정체감은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정치적인 복합 구성물이란 뜻이다. 따라서 통념에 따른 젠더에 대한 규범은 강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통념’과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한 개인에게는 생각보다 커다란 강박으로 작용한다고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섹스’와 ‘젠더’를 명료하게 구분한 건 이미 1968년이다.(로버트 스톨러 <섹스와 젠더>.) 68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해 내내 혁명이 유럽을 쓸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1.21사태가 있었고 이틀 뒤인 23일 동해에서 승무원 83명을 태운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 호가 북한군에 나포되었다. 1월30일에는 베트남전쟁 판도를 바꾸는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구정대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전투에서는 소탕 수준으로 패배했지만 국제적으로 반전여론을 이끌어내 전략적으로는 대전환을 달성해내면서 승리의 고삐를 쥐게 되었다. 북한이 취한 일련의 행동 또한 유럽과 베트남 정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이듬해 1969년 8월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는 히피 시대의 절정인 우드스탁 축제(Woodstock Festival)가 펼쳐졌다. 거기서 있었던 ‘신화’가 된 행위들은 모든 권력에 대한 침뱉기, 해체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대중은 거기에 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대혁명 뒤 프랑스 정부는 계간법, 곧 남색처벌법을 폐지했다. 섹스나 젠더가 생물학적이기보다는 지독히도 정치적일 수 있다는 걸 2백여년 전에 이미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68혁명과 ‘섹스/젠더’의 구분 또한 기본적으로 이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68년 어느 날 인류의 자기 인식은 생물학적 기준에서 사회적 기준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은닉되고 억압되어 온 것을 학문의 이름으로 드러낸 문명사회의 사건이었다.

이를 부인하고 또 왜곡하기 위한 투쟁은 종교만이 아니라 노동을 비롯하여 사실상 인간활동 전 영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인류 중 남성 거의 전부와 다수 여성을 포함하는 남성주의자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관습으로, 무엇보다 증오와 혐오를 통해 이들은 차별을 일상화했다. 유대인, 집시, 장애인, 피부색이 다른 인간, 이방인(이주노동자)에 대한 집요한 혐오를 해온 경험이 충분히 있던 터라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집단 혐오란 감정으로 표출된 사회적 차별과 정치적 억압행위를 말한다. 이 혐오의 목적은 실은 지배의 정당화에 있다. 차별과 혐오는 자본사회에서 저임금과 밀접하게 연관하면서 유동해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체는 의외로 간명하다. 가령 해부학적 특성이 숙명(destiny)이므로 여성다움(feminine)은 여성의 숙명이라는 따위다. 하물며 여성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면 이를 불가능한 열망을 품은 것으로 간주해서 남근선망(penis envy) ‘이론’이라는 ‘학문적 틀’로 ‘착실히’ ‘윤리적’으로 설명해왔다. 요컨대 이러한 태도들은 ‘비’자연적인 일탈이라는 것이다. 이는 피부가 검은 사람은 피부가 흰 사람을 넘볼 수 없다는 ‘이론’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동성애를 ‘자연’(신)을 거스르는 일탈로 보고 배제, 구별짓기 하는 논리 또한 이에 기초해 있다. 군 형법 동성애 처벌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 있다. ‘자연(신)이 내린 거룩한 결정’이라는 편견에 따라 그 군인은 이름 ‘A’가 되었다. 누가 그의 이름을 되찾아줄 것인가.

일상을 규율하는 관습이란 인간 행동양태에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의복이거나 제2의 피부다. 국가는 망해도 관습은 유지된다. 관습은 국가보다 질기다. 관습의 위험성은 그것이 오래도록 일상화한 나머지 이를 행하는 사람이 폭력인지를 대부분 전혀 자각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관습의 옷을 입고 행하는 차별과 배제란 실상 독점의 외연일 따름이다. 이 독점은 관습과 윤리뿐 아니라 권력과 경제까지를 아우른다. 유대인이 역사상 당해 왔던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자기 경험과 지적 체험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은 편견의 동물이다. 타자와 나 사이에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자기가 속한 집단의 관습화된 편견을 어떤 사람에게 강요하는 일을 피하기가 못내 어렵다. 소수자에 대한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는 그 상대가 군인 ‘A’였을 뿐이다.

오늘 거대한 편견 속에 한 군인이 처벌당하고 있다. 그를 구하는 일은 단지 군인 한 명을 존엄을 지키고 회복시키는 일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계간죄’라는 악법을 넘어 문명사회의 수치에서 우리 사회가 벗어나는 일이자 오랜 편견에서 한국인 모두를 구하는 일이다. 인권의 힘이 진짜 빛나는 대목은 종국적으로 누구에게도 불이익이 없다는 데 있다.

그는 군인이었으면 되었지 개인이 지닌 젠더 정체성을 국가에게 인정받을 이유도, 국가가 이를 추인, 확인할 권리도, 나아가 처벌할 권리는 더구나 없다. 그가 일탈한 게 아니라 국가가 일탈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힘 없는 소수자인 그 군인에게 젠더 정체성을 묻고자 한다면 국가는 먼저 답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암컷인가, 수컷인가, 또는 동성애자인가. 물론 어떤 정체성을 지녔든 너를 차별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