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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이승구 PD “대한민국이 세월호 같아”[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136] 이승구 한국독립피디협회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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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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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17:04:49
수정 2017.04.28  19: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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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3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와 목포 신항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이 세월호 안에 있다. 때문에 가족들은 진도를 떠나지 못하고 미수습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습을 3년 동안 기록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독립피디협회의 이승구 PD다.

이 PD는 참사가 일어나고 며칠 안 되어 진도로 내려가 3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3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과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마침 서울에 올라온 이 PD를 신사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승구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이승구 <한국독립피디협회> PD ⓒ 이영광 기자

- 지난 16일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 되는 날이었는데 어떠셨어요?

“현실은 그대로인 것 같은 대 시간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라온 배는 우리가 상상했던 세월호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죠. 낡고 녹슬고 망가진 배가 사람들 눈앞에 보였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특히, 단원고 학생들과 어린 혁규가 어느 곳에 있을까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그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본 곳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더라고요. 배가 올라오는 순간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이 먼저 생각나서 잠시 기도를 했죠.” 

- 지난달 26일 세월호가 물 위로 떠올라서 지금은 목포 신항에 있잖아요. 인양과정 어떻게 보셨어요?

“인양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이 있었죠. 정부가 인양을 안 할 것이라는 말이나 선체를 훼손하고 있다거나 진실을 숨기기 위해 뭔가 작업을 한다는 루머도 돌았죠. 그러나 해수부가 그 부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오히려 그런 부분이 증폭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소통하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도 봤죠.

그러나 인양과정에서 상하이 샐비지가 도착해서 작업하고 중간 정도에 어머님들 모시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장위옌 부사장과 홍충(洪沖) 대표가 브리핑했는데 그 자리에서 세월호가 올라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홍충 대표도 자신의 딸이 세월호 희생 학생 또래래요. 때문에 엄마들의 고통과 마음을 알고, 미수습자 엄마들은 그들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믿어주고 응원해 줬거든요. 그런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그 자리에서 홍충 대표는 ‘우리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세월호는 반드시 올리겠다’고 했죠.

그런데 인양이 연기되고 늦어지니까 여러 의혹이 생기잖아요. 그러나 나중에 해수부가 국회에서 대국민 설명회를 했을 때, 세월호 선체에서 선미 쪽 지반이 암반으로 돼 있어서 그걸 깎아내리는데 특수 장비를 만들었다고 했고, 실제 저는 미수습자 엄마들과 같이 상하이샐비지 달리하오(DALIHAO). 바지선에 올라가서 실제 굴착하고 했던 장비를 직접 눈으로 봤거든요.

그런 걸 보니 그 사람들도 시도하는 건 처음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 한 번에 성공할 수 없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그걸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인양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미수습자 엄마들의 간절한 마음이 상하이샐비지와 해수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홍준표야말로 레퍼토리만 다를 뿐 2년간 우려먹고 있다”

- 세월호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올리는 건 금방 올리죠. 하지만 준비 작업이 오래 걸리잖아요. 선체가 어떤 상황인지부터 확인해야죠. 작년에 선수 들기를 했어요.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 와이어를 띄웠는데 생각하지 못한 너울이 굉장히 크게 왔어요. 원래 그쪽 바다에서 그렇게 큰 너울은 저도 처음 봤거든요, 그러나 세월호 선수를 들고 있는 바지선 크레인이 출렁출렁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당시 미수습자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 현장에서 봤는데 세월호 선수들기를 하고 리프팅 빔 설치를 위해 준비를 하는데 와이어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선체가 찢어졌다는 거예요. 보니 너울성 파도에 의해 선체에 세월호 무게가 실렸고 그 실린 무게는 와이어를 통해서 세월호를 파고들었던 거죠, 그래서 그걸 내려놓고 의혹이 많았잖아요. 지금도 선수에 선명하게 줄이 그어져 있죠.

올리지 못하고 이대로 세월호를 포기할 것인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리프팅 빔이라는 걸 만들어서 그 밑에 깔고 추가로 더 확장하고 리프팅 빔을 설치하는 데 선수 쪽에 암반이 나오면서 리프팅 빔이 들어가지 않아 굴착 작업만 5개월 했거든요.

그것을 제가 미수습자 엄마들 시각에서 보다 보니까 엄마들은 ‘전 세계 최초로 여객선을 인양하는데 어느 누가 해봤겠어? 하면서 실수할 수 있고 늦어질 수 있는 데 우린 그게 중요하지 않다. 올라오는 게 중요하지 작업을 어떻게 했다는 건 말 안 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세월호는 어찌 보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직 세월호 안에 있는 가족을 생각했을 때는 쉽게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진실규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에도 순서가 있듯이 먼저 해야 될 게 있잖아요. 세월호가 올라오면 그 안에 있는 9명의 미수습자를 찾는 게 우선이고 그 이후 그 선박을 가지고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규명해야죠. 이번에도 조타수 편지가 발견되어 세월호 선미 2층 외벽이 천막이란 사실이 알려졌잖아요.

어찌 보면 우리도 대한민국이라는 배 안에 우리가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고 선장도 탈출할 만큼 자기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 것처럼 승객을 버리고 도망갔잖아요. 우리 대한민국의 배도 선장이 탄핵된 상황이고 승객을 버리고 자기중심적 삶만 살다 보니 그런 모습은 대한민국과 세월호가 너무 똑같이 보이는 거예요.” 

   
▲ 지난 2014년 4월16일 침몰한 세월호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 주듯 찢기고 녹슨 채 3년여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제공=뉴시스>

- 3주기 당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세월호 사건으로 2년간 우려먹었으면 됐지”라고 했는데.

“말하는 사람도 레퍼토리만 다를 뿐 우려먹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세월호를 그렇게 보면 안 되죠. 세월호는 대한민국 현실이고 아픔이고 큰 참사거든요.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고 그 죽음의 현장을 생중계하다시피 우리는 듣고 보았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우려먹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이 가진 인간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를 너무 정치와 이념으로 보는 분들도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자기 자식이 세월호에 있다면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침몰한 스텔라 데이지호 화물선 했잖아요. 그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이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만 우려먹으라는 말을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정체성이 의심 되죠.” 

- 국민의당 시의원들이 세월호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논란이 있었어요.

“보여주기 관행이라는 게 한국 사회에 이런 일을 했다거나,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걸 뭔가 남기고 싶어 하는데,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남기기 전 우선 어떻게 남겨야 할지 그리고 상대방이 이것들을 접하면 기분이 어떨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남긴다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앞에서 찍은 걸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것이 마치 관광지에 온 것처럼 사진을 찍는 건 문제가 되죠. 세월호는 하나의 볼거리가 아니거든요. 참사의 실체이고 수많은 사람의 무덤이었고, 현실이고, 아픔이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죠.” 

“각자 삶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기록”

- 원래는 1년을 계획하셨는데 3년 동안 세월호를 기록하셨어요.

“네. 다큐멘터리 기록은 1년 정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1년하고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세월호는 계속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엄마들과 아이들 찾을 때까지 함께한다고 약속했어요. 전 다큐멘터리 감독이기 때문에 제가 함께하는 의미는 기록하는 것이거든요. 엄마들도 기록에 동의해서 요청하다 보니 제가 계속 그 곁에 남게 된 거죠.

사실 세월호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숨은 곳에서 봉사하시고 각자가 생각하는 세월호가 다 달라요. 3년을 지내다 보니 세월호는 한 가지 모습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각자 삶의 영역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잊지 않음, 그리고 함께함이 다른 것 같아요. 그 다름을 보았을 때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것도 미수습자 분들과 유가족분들에게 배려가 될 수 있는 함께 함과 잊지 않음의 모습으로요.” 

- 각자가 생각하는 세월호가 다 다르다고 하셨는데 PD님이 생각하는 세월호는 뭐죠?

“제가 생각하는 세월호는 엄마의 아픔과 상처, 고통, 눈물이 아닐까요. 평생 지울 수 없죠. 자식을 떠나보내면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그런데 엄마들 마음속에는 세월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세월호 안에서 죽은 수많은 이이와 일반인 등 많은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담긴 세월호라서 그것의 진실이 꼭 밝혀져야 하는, 남은 산 자들이 해야 할 마지막 세월호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매일 똑같은 생활이에요. 매일이 4월 16일이었죠. 왜냐면 아이 찾으려 기다리는 생활이었잖아요, 아이 찾기 위해 기다리는 엄마들이 4월 16일 내려와서 그 기다림에 대한 생활이었죠. 엄마들이 ‘우린 아직도 4월 16일에 살고 있다. 수학여행 간 딸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셨는데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팽목항의 삶이 쓸쓸하고 외롭더라고요. 아무도 찾지 않고 허허벌판의 방파제 위 컨테이너 안에서 여름엔 강렬한 태양으로 찜통 같은 컨테이너가 되고 겨울에는 냉동실 같은 컨테이너에서 자식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부모님들 모습을 보니 이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나는 생각이 들고 안타까운 시간이었죠. 제가 할 수 있을 게 없잖아요. 저는 그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게 제 사명이었죠.”

- 3년 동안 기록을 해가며 느끼는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세월호를 보며 느꼈던 게 한국 사회 안에는 박근혜 같은 사람도 많고요. 이준석 선장 같은 사람도 많고요. 선원 같은 사람도 많고 아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 같은 사람도 많아요. 즉 한국이라는 배 안에 이준석 선장 같은 사람도 있고 선원 같은 사람도 있고 자기 몸을 희생해서 도운 사람도 살고 힘없이 아무런 도움 없이 기다리란 말로 기다리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한국 자체가 세월호 같아요. 이런 세월호 같은 나라가 인양되고 진실이 밝혀져야겠죠.”

“잊지 않겠다..말이 아닌 삶속에서 행동으로 함께하고 기록하는 것”

- 미수습자 가족과 지내며 기억에 남는 일 소개해 주세요.

“기억에 남는 건 두 엄마의 입맛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거든요. 그 다름이 더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엄마들도 여잔데 예쁘고 싶고 꾸미고 싶지만 다른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오직 딸을 찾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살고 계시더라고요. 은화 엄마가 ‘은화 찾으면 은화 잘 보내고 은화 오빠와 아빠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우리 은화는 그러길 바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되게 좋았어요.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구보다 잘 사실 것 같아요. 다윤 엄마도 그러신 것 같아요.” 

   
▲ 지난 3월29일 오전 전남 진도 세월호 인양작업현장 앞 해역에서 다윤(오른쪽), 은화 어머니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세월호 지원법 통과 소식을 접하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다운이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신 거로 아는 데 어떠세요?

“네 두 분 다 안 좋으세요. 은화 엄마는 혈압도 있고 당뇨도 있고 관절도 안 좋고 발목도 수술하셔서 온몸이 종합 병원이에요. 그래서 하루에도 드시는 약이 여러 가지예요. 그리고 다윤엄마도 금방 지쳐 하셔요. 머리에 종양이 있어서 그 종양으로 왼쪽 귀가 안 들리시고 이명이 심하시거든요. 저도 왼쪽이 잘 안 들려서 둘이 앉는 방향이 있어요. 그래야 다윤 엄마나 저나 같이 듣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런 엄마들이 버티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엄마는 강하고, 정말 위대 한다는 말이 생각나요. 엄마니까 저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라는 단어가 약함이 아니더라고요. 전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 지난달 말 뼛조각이 발견되어 소동이 있었지만, 돼지 뼈였죠.

“그때 상황은 난리도 아니었었죠. 그날 저녁 팽목항에서 소식을 듣고 엄마들이 급히 배를 타고 현장에 가셨어요. 기대를 많이 하고 가셨죠. 유실됐다는 걱정도 많이 하셨어요. 그러나 다녀와서 은화 엄마가 ‘사람이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의미는 그렇게 유실됐다면 사람도 분명 유실됐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었고 단지 돼지 뼈로 나와서 그게 다행이라는 거죠. 식사도 못 하시고 현장에 가셨거든요. 다녀오셔서 겨우 밥 한 숟갈 뜨시더라고요.” 

- 3년 동안 기록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요. 위로한다고 건넨 말들이요. 우리는 입장에 대한 얘기를 하잖아요. 입장은 바뀌지 않잖아요. 그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아나요? 몰라요. 근데 알려고 노력하는 거도 알려고 함께 하는 것이거든요. 100% 이해는 못 하더라도 곁에서 함께하고 있어 주는 게 함께하는 것이잖아요. 많은 분은 진심으로 참여해주시고 뒤에서 도와주시고 하시는 분들이 참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 함께하겠다거나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함께한다는 말과 잊지 않겠다는 말이 지금 와서 봤을 땐 형식적인 말이 많았던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하겠다거나 잊지 않겠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이라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함께하고 있지 않은 방법이 각자 어떤 방법으로 함께 하고 잊지 않을지에 대한 것은 스스로의 몫이죠. 희생자 가족들과 같이해야 함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나름대로 있는 자리에서 잊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말이 아닌 삶 속에서 행동으로 함께하고 기록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몇 년 동안 지켜봤다거나 함께했다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몇 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뒤에서 그들을 지원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고 그들 손을 잡아주었고, 곁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분명 다른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엄마들에게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다라는 생각을 해요.” 

- PD님이 힘든 건요?

“저는 엄마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기록자 입장으로 보잖아요. 그러다 보니 엄마들의 시각과 시선, 엄마들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보고 느끼는 것은 똑같아요. 사람들은 때만 되면 찾아와요. 그리고 사라져요. 그런데 함께하겠다고 해요. 그러나 몰라요. 자기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 거지 곁에 와본 적이 없어요. 사실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이 팽목항에 왔었지만 때가 되면 빠져요. 그 빠지는 걸 보면 어떤 이슈가 있을 때만 찾는 것 같아요. 미수습자 엄마가 이제 세월호 올라오니 사람들 많이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사고 첫날처럼 팽목항이 꽉 찼죠. 그래서 4월 16일 갔다고 하시더라고요,” 

- 제작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제작비 만만치 않죠. 그건 차차 방법이 있겠죠. 지금까지 걸어왔고 기록 했는데 죽기야 하겠어요. 제작비 어렵죠. 진도를 매일 오가는 것도 비용이 들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 알바도 하고 촬영도 해주러 가고 편집도 하고 강의도 하고 저희 가족들이 십시일반 도와주기도 하죠. 그리고 동료나 친구들의 정성인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고 있어요.” 

- 가족이 불평은 없나요?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없어요. 정말 감사한 게 단 한 번도 경제적인 대한 얘기나 짜증 섞인 얘기 한마디도 안 했어요. 제가 현장에 있는 걸 누구보다 잘 알다 보니 거기에 대해 위로와 격려해 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3년을 못 버티죠. 3년이란 시간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의 연속성에서 본다면 그 순간, 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죠. 그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건 제 가족과 미수습자 엄마들의 그리고 저를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좋은 선배와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하죠.” 

   
▲ 20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에서 코리아쌀베지 작업자들이 육상거치 된 세월호 내부 진입을 위해 선체 우현 부분에 구멍을 뚫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기록은 누군가에게 보려 주려는 것도 있을 텐데 언제쯤 결과물을 볼 수 있나요?

“때가 되면 보여드릴게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지금 세월호 수습 중에 있고 그것이 우선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미수습자 엄마들에 약속은 했어요. 엄마들도 꼭 원하시는 부분이고요. ‘이승구 PD가 우리와 3년을 같이 했는데 다른 누가 만들 수 있어요? 이승구 PD가 만들어 줘야죠. 우리 아이들이 잊히지 않게 꼭 만들어주세요’라고 하세요. 이제 세월호 수색에서 아이들이 돌아오고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하나하나 정리가 되겠죠.”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세상에는 많은 뉴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뉴스 속에서 진실을 얘기하는 뉴스 그리고 사실을 전하는 뉴스를 보기 위한 시민의 의식과 눈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야만 모든 뉴스가 건강하고 바르게 사실적으로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GO발뉴스>를 애독해주시는 분들 <GO발뉴스>가 보다 건강한 매체로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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