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변침하던 밤

미세먼지 안개가 장막을 친다.

액자 같은 도회 아래쪽

흐린 등불을 켠 늦은 낮이

삽겹살집 화장실에 스며 들어와 손을 씻는다.

금간 유리창 뒤로

낡은 필름 같은 하루가 이울고

쓰지 않는 국궁처럼 굽은 골목 담벼락에 기대어 선

산수유꽃은

차라리 먼지 형태로 돋아난 오염물질 같다.

미국 항공모함이 머잖아 부산항께로 들어올거라는 뉴스를 쳐다보면서

영사 기사 아들은 마스크를 벗고 무심히 고기를 굽는다.

불판 위에서 살아나는 살코기들.

지글지글거리면서 소화불량의 하루가 탄다.

어머니의 보약은 활명수였다.

아버지의 강장제는 박카스였다.

물약 한 병으로도 만병이 통치되었던 그들의 위장에 평안 있으라.

목구멍에서 먼지를 씻어내기 위하여

팔짜 탁한 인생들이 휘적휘적 걸어와

공장형 축산 삼겹살을 씹는다.

일제히 일어서서 애국가를 합창하던

극장 영사막에도 자주 먼지가 끼고 비가 내렸다.

인생이란 철자법 안 맞는 영화 자막 같은 것.

잘려나간 필름 조각처럼 흩어지는 사람들.

이 밤 빌딩숲 단단한 어둠 속으로 누가 달려가는 것일까.

아무리 뉴스를 틀어도 소용없다.

부유먼지로 이름이 바뀌어도 먼지는 걷히질 않았다.

다만 전당포 간판 불빛은 마지막 구원자를 찾으면서 회색 안개 속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병든 피난민처럼 사내 두엇이 밥집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차례로 마른 기침을 하자

방사능 낙진 같은 미세먼지가 다시 끼쳐 왔을 때

민방공훈련 같은 하루가

비로소 고깃집 문턱에서

뿌옇게 내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