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가]

그는 환하게 웃어서 스스로 죄가 없다고 했고,
손을 흔들어 나의 쓰라린 건재를 지켜줄 이들에게 반갑다고 했고,
살짝 눈물을 비쳐서 그들만이 나의 신민이라는 걸 확인해주었고,
대리인을 통해 말을 전달해서 나머지들은 내 목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다고 박탈했다.

누군가는 기와 푸른집에서 나오질 않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자기애와 그의 자기애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기우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는 한가롭게 대중을 우롱할 마음 따위조차 없다.
불복할 뜻도 하물며 없다.
명료하게 밝혀두지만 불복이란 아랫것들이나 쓰는 말이다.
그는 순결한 자신을 배신한 자들과 국민들을 다만 용서하지 못할 뿐이다.
그가 말한 반드시 밝혀질 진실은 공적 진실과는 하등 무관하다.
그는 말한다.
내가 진실하므로 헌법 따위는 부정한 것이다.
그 헌법이 명토 박혀 있는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이나 문중의 역사이고, 따라서 사유물인 까닭이다.

오늘 귀가하는 길에 그는 압축적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사람들이 연산이라 부를 때 그는 믿었던 삼촌에게 내쫓기는 단종이라도 되는 양 밤길을 달려갔다.
그가 이 밤을 잠 못 들 것이라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먼저 집안에 변기를 바꾸어야 한다.
그가 아침 밥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직도 있다면
앞으로 족히 십팔 년은 혼자서 밥을 먹어봐야 하리라.
그가 법률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합리적인 이가 혹시라도 남아 있다면
기어이 육법전서를 베껴쓰는 형벌을 내려야 하리라.

확실한 건 그가 살아 있는 이들에게 몇 가지 증세를 분명히 남겨주게 되리라는 점이다.
걱정할 건 그대의 고막과 턱관절이다. 또 혀를 자주 내두르는 습성이 생긴 뒤 멈추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미리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
덧붙여 앞으로 죄와 벌이라는 단어는 자칫 뜻이 달라지거나 그를 설명하는 독특한 뜻을 지닌 채 한국어 사전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이제 새로운 연극이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하회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