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권력을!”
“지루함은 반혁명이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노동자, 당신은 25살이지만 노동조합은 지난 세기부터다!”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나를 해방시키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지도는 혁명의 새로운 암이다!”
“선거는 얼간이를 위한 덫이다!”
“혁명은 시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죽은 것은 미래일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권력교체가 없는 나라를 교체하자!”
-프랑스 68혁명 슬로건 또는 낙서, 발제자가 지어서 의도적으로 섞어 넣은 (당연히 사용되지 않은) 슬로건 또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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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 me libère pas, je m'en charge. 1968, France Sex workers & Supporters, 2016, Paris |
세계에서 가장 권력교체가 없는 나라를 교체하자
세계에서 가장 권력교체가 없는 나라를 아는가. 단군 이후 국가다운 국가가 성립한 이래 신라가 한반도 상당 부분을 통합한 지형과 권력이 무너지면서 고려가 탄생했다. 이는 진골 성골 지배세력이 6두품까지로 확대되는 체제였다. 조선은 승려계급을 현실 권력에서 추방해 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신진사대부들은 유학이라는 새 이념에 입각하였으되 기본적으로 고려의 지배세력 일부였다. 조선이 망한 것은 106년 전인 1910년 8월22일 오후, 망한 자리는 서울 남산 북쪽 기슭 통감부도 아니었고 통감관저 2층 침실 옆 응접실이었다. 거기서 조선(대한제국)은 부동산 거래하듯 도장을 찍어서 망했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한반도 통치권력 또는 국가가 송두리째 교체된 적은 없었다. 신라-고려-조선-일제에 의한 패망까지를 전면교체라고 말한다 해도 세 번 혹은 네 번이 고작이었다. 세계사에서 가장 권력(왕조) 교체가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필시 한국사 시험은 너무 쉽거나 쉬워야 한다!) 역사에서 한반도 권력의 지배체제는 완강했다. 다른 한편 이는 지배권력과 부패가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한다.
지금 대중은 그 권력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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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4년의 민주정 경험
지난 20세기 동안 한국인은 고작 4년 동안 민주통치를 경험했다. 이를 표로 작성해보면 간명하게 보인다.(표는 과연 정치적이다!)
왕정 10년
식민지 35년
미군정 3년
이승만 12년
민주당 1년
박정희 18년
전두환 8년
노태우 5년
김영삼 5년
김대중 3년
21세기 : 김대중 2년, 노무현 5년, 이명박 5년, 박근혜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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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포함한다고 해도 11년 민주정 통치가 전부다. 독재권력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통치가 31년, 김영삼 정권 지배세력을 구파시즘 세력이라고 보았을 때 의사(유사)민주정부라고 규정하고 포함시키면 36년, 이승만 정권을 넣으면 48년 동안을 통치했다. 미군정 3년은 군사통치였고, 일제강점 총독부 통치까지 20세기는 가히 전면적 독재통치체제였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기산점으로 삼는다고 해도 왕정만 늘어날 뿐이지 민주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굳이 이 시기에 임시 존립했던 집강소를 (통)치소로 간주한다면 다소 몇 개월 추가가 가능한데 이는 호남일대로 제한된다. 그러므로 총량에서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들’(68혁명 슬로건에 비춰본다면 구토가 나는 말이지 않은가!)이 역사에서 결정적인 성취를 이뤄내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는 버겁다. 솔직히 말하자. 100년 역사에서 4년 성취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백성, 인민, 민중 또는 시민은 어떠했는가.
5년 주기설! : 12월혁명의 전통, 저항의 전통
한국인은 1894년 이래 5년 주기로 역사를 바꿔왔다. 1894(동학봉기), 1895(을미의병), 1905(을사의병), 1907(정미의병), 1910(경술의병), 1919(3.1혁명), 1920(봉오동, 청산리전투), 1926(6.10만세운동), 1929(광주학생운동), 1945(광복), 1946(대구항쟁), 1948년(반분단저항), 1960(4.19혁명), 1965(한일회담반대투쟁), 1972(반유신투쟁), 1979(부마항쟁), 1980(5.18광주항쟁), 1987(6월항쟁), 1989(통일운동), 1991(5월투쟁), 1993(UR반대투쟁), 2008(촛불집회), 2013(강정생명평화행진), 2016(12월혁명).(이 참에 역사 공부 좀 하자! 5년 주기설!)
백성, 인민, 민중, 대중, 시민 등으로 바뀌어왔을 뿐 혁명 주체 또는 저항 주체는 한결같았다. 성격은 의병에서 항쟁과 혁명으로 근대적 의미를 지니면서 변화 발전해왔다. 객관화해서 말해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저항 전통, 자주 전통, 주권자 전통, 민주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언제나 대중이 스스로 나서서 세상을 바꿔왔다. 굳이 말해서 주변 국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창조적 역사를 생산해왔다. 전체적으로 사회변동이 선거라는 체제내화 형태로 안정화되고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5년 주기는 이완되어 왔다. 이번 겨울혁명 또는 12월혁명 또한 이 저항역사의 맥락을 잇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인은 이 혁명을 수습하는 능력에서는 세계적으로 미숙한 대목이 있다. 현대사에서 5번의 실패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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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혁명 : 6번째 기회 혹은 3번째 기회
한국인은 혁명을 어떻게 갈무리해왔는가. 이 또한 표로 살펴보는 게 명료하다.
1945년 기회 상실->분단
1960년 기회 상실->쿠데타와 군사독재 시작
1979년(1980년 서울의 봄과 5.18항쟁) 기회 상실->장기유신체제 연장
1987년 기회 상실->시민은 승리했으나 권력을 군부에 헌정
1997년(IMF와 민주정부 수립) 기회 상실-> 민주정부 수립 성공, 독재세력과 재벌 척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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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백년 역사를 통틀어서 한국인은 12월혁명을 통해 6번째 기회를 맞고 있다. 주권자가 광장에 나서서 직접 쟁취해낸 해방공간은 4.19와 6월항쟁이었다. 이 점에서 보자면 12월혁명은 세 번째, 80년을 포함하면 네 번째 기회다. 대중이 끈질지게 창조해낸 ‘5년주기 봉기’가 응집된 순간(들)이다.
세대별로 보자면 대략 30년 주기에 해당한다. 이는 비분단체제세대(식민지와 해방 경험)(대륙형세대, 교육 받은 ‘모국어’가 일본어, 증조부모), 4.19(분단세대, 최초로 한글을 모국어로 공부한 세대, 조부모), 6월항쟁(컬러TV세대, 부모), 12월혁명(디지털세대, 청년세대)로 나눌 수 있다. 괄호 안에서 보듯 세대별 표현방식과 인식형태의 차이, 문화적 인자와 기질은 분명한 차별성을 띄고 있다.
여기서 30년 주기란 12월혁명이 고도의 성과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다시 결정적 시기에 이르는데 3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12월혁명을 정치적으로, 일상적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토론과 투쟁이 항쟁과 저항을 닮지 않으면 성공에 귀착하기는 불가능할 게 틀림없다. 6번째 기회를 구조적으로 창조해내는 일은 지금부터다. 시민주권자회의가 우선 ‘대한민국, 다시 태어나라!’를 모토로 삼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12월혁명 주체의 성격
3.1혁명(‘3.1운동’은 해방 이후 사용) 당시 광장(장터)으로 쏟아져 나온 대중은 2백만 명을 헤아린다. 인구 대략 2천만 명에 이르렀을 때다. 이를 일러 나이가 든 노인과 젖먹이 빼고는 다 나왔다고 자랑스레 말해왔다. 3.1혁명 주체는 총인구 1/10이었다. 이를 통해 항일운동의 재구성 뿐 아니라 공화정(대한민국 림(임)시정부)이 처음 출현했다. 고종의 죽음은 왕조시대의 소멸을 뜻한다는 걸 당대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한국인은 세계사적으로 드물게도 추도를 통해 왕조를 해체해냈다. 여기서 비로소 근대적 ‘민’이 출현했다. 제헌헌법에서 현행 헌법까지 전문을 수식하는 첫 줄은 이렇게 탄생했다.
12월혁명은 대략 1천만 명 가까이가 광장을 창조해냈다. 총인구 적어도 1/6이 주체로 참여했다. 이는 3.1혁명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12월혁명 주체는 역사상 가장 폭이 넓다. 한반도 남쪽 거주자 9할 이상이 정치적으로 단일한 주제로 한 목소리를 낸 적 또한 없다. 이는 단군 이래 결코 없던 일이다.
12월혁명 동안 민주화운동세대들이 그토록 경멸과 우려를 금치 않았던 보수 청년세대는 소멸했다. 일단 30년을 확보한 셈이다. 그 동안 정치적 의제를 장악해온 민주화운동 세대는 은퇴를 서둘러야 할 때다. 이들을 포함해서 광장에서 대중이 보인 태도는 이전과는 판이했다. 간단히 말해서 시민들은 누군가의 지도를 거부했다. 68혁명 당시 파리 시민들처럼. 늘 지도부(부재 포함)를 욕해왔던 역사에 비춰 봐도 이는 놀랄만한 대목이다. 참여자 저마다가 주체로서 인식이 분명했다는 뜻이다. 대중은 권력 퇴진을 외쳤지만 그 문화적 양태는 다분히 아나키적 요소, 곧 탈권위적 특성이 강했다.(일본 대학생 게무야마 센타로가 번역(1902)이 처음 번역한 ‘무정부’라는 부정적 어감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광범한 대중이 광장(인터넷 포함)에서 형성해낸 이 분위기는 초유의 사태였다. 따라서 ‘전통적 지도부’들이 당황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집회와 시위 초기부터 나타났다.(11월3일 자로 기고한 발제자의 덧붙인 글 참조.)
이러한 자발성, 비정형성, 탈권위적, 비지도성, 곧 주체의 다원적 특성은 12월혁명이 나아갈 방향을 상당 부분 제시하고 있다.
3분 주권 : 주권재민은 허구다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12월혁명의 성과가 기성정치세력에게 고스란히 귀속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옛말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는데, 광복 이후 한국 정치인은 한강을 건너면 귀족(의회)이 되고 산 밑으로 가면 왕(대통령)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지독히도 철저한 대의제 국가인 한국정치체제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말이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한국에서 주권 위임절차는 대략 이러하다. 일단 집을 나와서 가까운 초등학교(투표소)로 가서 교실문을 열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기표소에서 표시를 하고 나올 때까지만 주권은 ‘군림’한다. 넉넉 잡아서 3분이면 족하다. 한국인은 고작 3분 동안만 주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혁명이 쿠데타로 무너지거나 군부독재 연장에 소비된 역사를 넘어서고, 기존정치세력에게 수렴되는 깔때기 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3분 주권’에 대해 거듭 환기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한국에서 정권교체는 한낱 기본권 허용과 제한에서 진보과 보수를 갈라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자본권력은 교체된 적이 없고, 부패 또한 달라진 적이 없고, 학력 권력 또한 바뀐 적이 없다. 이는 12월혁명이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가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권 뿐 아니라 주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말한다.
12월혁명의 과제 : 주권회수와 주권행사
'영국 인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다시 노예로 돌아가버린다.’(장 자크 루소) 국민의사(주권)은 결코 대표될 수 없다고 믿었던 루소의 말은 오늘날 한국 주권자에게 여전히 경고하고 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노예의 자유’를 벗어나야 하는 게 12월 광장 주권에서 확인된 핵심 주제다. 대의제란 솔직히 일종의 정치적 허구이지 않은가.
주권 대표자가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주권자가 이를 넘겨주어서가 아니라 헌법에서 통치원리를 정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이른바 이 무기속위임(자유위임)이란 것은 경험적 의사가 아닌 추정적 의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주권자 개개는 물론 결코 총체가 아니라 ‘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이라는 관념을 뜻하는데 이는 주권이 허공에 있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말이다. 어디선가 주권이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주권이 인민의 것이라면, 인민의 이익을 배반한 수탁자(의원)를 소환하여 책임을 추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Jean-François Varlet, 1837년 참수로 처형) 이 말은 놀랍게도 오늘 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수탁자를 일상적으로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위임만 있을 뿐 소환이 없다면 이를 온전한 민주정이라고 부르는 건 지배의 정당화만 주장하고 또 존재하는 논리다. 소환만이 아니라 (선거 말고도)주권자가 직접 주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야 한다. 12월혁명의 과제가 단순히 하야투쟁에서 그치거나 정권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12월혁명이야말로 주권 직접행사를 통해 성취한 것이지 않은가. 18세기 프랑스식 언어를 차용하자면 주권위임을 참수해야 한다.
빠리꼬뮌의 역사적 미학은 후대들이 어설프게 읆조리는 ‘꼬뮌’이라는 관념적 멋이나 소, 말, 개, 고양이에 이어 쥐를 잡아먹고 굶어가면서 72일 동안 치열하게 싸운 데만 있는 건 아니다. 권력의 보편화를 기치로 입법 행정 사법 등 공직자 직접 선출, 소환, 통제권을 기본권리로 선언했다는 점을 명념해야 한다. 프랑스혁명(1789)의 지배주체들이 곧이어 불특정 다수 대중이 달성한 혁명의 성과와 내용을 지배권력으로 형식화(1792)해낸 주권위임을 파기했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주권재민이라는 주권의 희미한 소재(소재자, 소재처)이기는 하지만 주권행사는 선거 뿐이다. 주권위임절차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12월혁명 현장에서 나타난 것이자 나아갈 방향의 핵심요체는 따라서 주권회수와 주권행사다.
이를 성취해내기 위해서는 광장 재구성 과정이 반드시 유사권력적 성격을 넘어서야 한다. 시민의회(논의 공개 뒤 사흘, 나흘 만에 문을 내림) 등이 재구성에 대한 고민 자체에서 어긋난 게 아니라 대중에게 모종의 의심을 받은 대목은 이 지점이다. 12월혁명이 입증한 것은 주권을 차압하고 있는 굴레를 해체할 때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진리다. 새로운 틀 없이 새로운 내용물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 틀의 성격은 주권의 직접성, 현장성, 현재성, 현존성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주권의 평등성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를 제7공화정 따위가 아니라 진정한 주권적 의미에서 전혀 다른 민주체제로 형성시켜내는 일은 12월혁명의 역사적 책무가 되었다. 단언하지만 간접주권은 주권이 아니다. 루소식 표현으로 이는 ‘노예의 주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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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성 작가 |
이 대목에서 프랑스 68혁명 구호를 한번 따라해보자. ‘선거는 얼간이를 위한 덫이다!’ 이제 위임의 덫을 풀어내야 할 때다. ‘혁명은 시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죽은 것은 미래일 수 없다.’ 죽은 주권이 산 주권을 얻어내게 하지는 않는다. 12월혁명이 성취해낸 고도의 성과인 살아있는 주권의 광장성을 생명력 있게 재창조해내야 할 때다. 요컨대 주권을 재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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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싸가지 없게 싸워라!’ ‘싸가지 없게 놀아라!’ ‘싸가지 없게 저항하라!’
-광장의 주인인 청년세대들에게
이 역사적 국면에서 청년세대들의 문제 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 생활에서 두루 분노는 광범위한데 승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대가 사회문제에서 자주 앞장서 올 수 있었던 까닭은 간명하다. 이들은 6월시민항쟁을 통해 전두환 체제를 사실상 무너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지난, 요컨대 87년 체제 30년을 맞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87년세대는 자기 경험에 입각해서 얼핏 비정형적으로 보이는 시민 대중의 주체화를 막거나 꺾어서는 안 된다. 민주화운동 세대가 새로운 세대인 것처럼 새 사회 건설의 주체는 단호히 말하지만 새로운 세대 출현 없이는 불가능하다. 회억컨대 민주화운동의 즐거움 중 뺄 수 없었던 건 모든 걸 건너뛰어 ‘제왕’과 맞짱을 뜨는 일이었다. 그것은 문학적 비유를 하자면 ‘회초리만 때리는 나쁜 의붓 아버지’(군사독재)를 내쫓는 일이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민주화세대는 사태와 상황을 장악한 채 대중의 자발성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형태 안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 결과 이는 당시 나타났던 창조적인 국면을 퇴행시켰다. 새 현상을 익숙하긴 하지만 옛 그릇에 넣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역사 이래로 시위 현장에서 나온 구호 중 뺄 수 없는 압권은 그때 출현했다. 인터넷 언어의 흔적이 강한 이 말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청계광장에 나온 여중생들은 처절하게 폐부를 찌르는 언어를 창조해냈다. ‘(미친 소)쥐박이, 너나 먹어!’ 모든 걸 생략해버린 이 짧은 언어는 듣는 이들에게 거역할 수 없게 하는 통쾌함을 주되 권력의 성격을 가볍게 제압하면서 본질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언어는 과거에 비해 비길 수 없이 비정치적이었고 일상 구어체였고 간명했다. 87년 6월항쟁 구호 ‘호헌철폐 독재타도’와는 현저하게 결이 다른 언어였다. 곧이어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효자동 들머리에서 경찰이 차가운 물대포를 쏘자 현장에서 시위(대)학생들 사이에서 즉각 터져 나온 언어는 경찰조차 웃음으로 이끌려나오게끔 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 명문은 단 세 글자였다. ‘온수 쏴!’ 이들은 하물며 진압 권력과 친교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직접적으로는 권력이 생략되어 있었다. 최고 명장면 중 하나는 정확하게 광화문 네거리 중심(이는 한반도의 중심이다!)에 굳이 강의실 책상을 끌고 와서 리포트를 쓰고 있던 학생이다.
이러한 일련의 저항 행태야말로 과거 세대에서 볼 수 없던 해방적 발상이자 광장문화행위다. 대중 스스로 즐거움을 창조해내던 순간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국가 창조의 주역이어야만 한다. 이 저항 언어와 해방 행위를 생산해낸 주체들은 어디로 갔는가. 집회가 장기화되고 있던 어느 순간 이윽고 이들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이들이 주도하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광장 없이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모든 저항은 창조적일 때만 새로운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상은 없다.
저 빛나는 4.19도 중고등학생이 창조했고, 6월시민항쟁 중심은 스물 갓 넘긴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은 물론 시위현장에서 아버지와 꼰대 세대를 전면 꺾어버리고 주역이 되었다. 이제 청년세대들이 승리의 기억을 창조해낼 시기다. 승리에 관한 기억의 축적이 바로 미래다. 미래란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청년세대의 기억과 근육으로 오늘 여기에 형성되는 것이다.
판에 박힌 지침과 지도는 걷어치워라. 이것 또한 자유 창조를 해내는데 ‘스펙’(노예 윤리)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광장을 빚어내는 데는 스펙 따위는 필요 없다. 자유에는 스펙이 없다. 비정형과 비지도성은 이 세대의 특성이지 비난 받을 지점이 전혀 아니다. 오더를 내지 말라. 이들의 자유로운 태도가 미래를 창조해낼 것이다. 청년들이 자유하게 두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묻지 마라. 나를 내버려둬. 지도하는 모든 지도를 금지한다. 나를 해방시키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Ne me libère pas, je m'en charge. Don’t liberate me! I’ll take care of that.(프랑스 68혁명 슬로건 또는 낙서) 분노만으로 세상은 창조되지 않는다. 싸가지 없게 싸워라. 싸가지 없게 놀아라. 싸가지 없게 저항하라. 즐거움과 창조는 거기서 용솟음친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씨앗이다.
-서해성. 2016. 11. 3. 고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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