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물대포에 맞아 올 9월 25일 사망한 농민 백남기 씨의 영결식이 지난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엄수됐다. 사망 41일 만에 민주 사회장으로 광화문광장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 등 만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 줬다.

영결식이 끝난 지 열흘만인 지난 14일 광화문 광장 근처 커피숍에서 손영준 백남기 투쟁본부 집행위원장을 만나 장례식을 마친 소회를 들어보았다. 손 위원장은 “소회라고 하기에는 40일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날부터 5일까지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있는 날이 없었다”면서도 여러 가지 사례를 언급하며 “40일간 거의 매일매일 기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손 집행위원장은 영결식 사회를 맡았었다. 이에 그는 “저는 장례식장에 40일 동안 있으면서 조문도 제대로 못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빈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거의 마지막 날 제대로 조문했다”면서 “장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투쟁본부 안에서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맞냐’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의 의견이 ‘진상규명 문제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것이 되어버렸고 책임자 처벌은 국회 특검에 맡기자’는 것이라서 ‘이만큼 백남기 회장이 싸워주셨으면 이제 우리가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으로 장례가 결정된 것”이라고 장례식 결정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대회의 백만 촛불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다. 이에 손 집행위원장은 “온갖 생각이 다 나더라. 제 눈에는 백만의 백남기가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모습이라서 회장님(백남기 씨)께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고 백만 촛불에 대한 느낌을 밝혔다.

앞으로 과제에 대해서는 “우선 책임자 처벌이 안 됐다. 가족과 투쟁본부는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거다. 또한, 주된 책임자는 경찰이지만 백선하 교수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백남기 씨의 삶과 뜻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등이다”라고 세 가지를 뽑았다.

▲ 손영준 백남기 투쟁본부 집행위원장 ⓒ go발뉴스

- 지난 5일 농민 백남기 씨의 장례식이 치러졌잖아요. 40일 만에 치러져서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소회라고 하기에는 40일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죠. 돌아가시기 전날부터 서울대병원에 경찰들이 배치됐잖아요. 그때부터 장례를 치룬 5일까지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있는 날이 없었어요. 실제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40일간 거의 매일매일 기적이었어요. 거의 8만여 명이 계속 조문했고 후원 물품도 어마어마했잖아요. 그리고 358일 동안 단 한 번도 미사가 끊어진 적이 없어요. 장례식장에서 계속 미사가 진행됐고 부검 영장 만료일 전까지 수녀님들이 9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신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에요. 또 30일 동안 밤낮으로 농민, 노동자, 시민, 변호사, 교수, 종교인 등 수 많은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백남기 회장님을 실제로 지켜낸 것이잖아요. 그런 게 다 기적이라 생각해요.

장례식장에서 있으면서 시민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국가폭력 사건을 자기 일로 생각한다는 확신이 들어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백남기 회장님은 11월 14일도 싸웠고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서 317일 동안 싸우셨고 돌아가신 이후에서 싸우고 계시는 데 이제 그만 백남기 회장님은 고이 보내드리고 ‘우리가 백남기가 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가족들, 358일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한번도 흔들리지 않아”

-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힘든 일이 너무 많았는데 그 안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잖아요. 예를 들어 사망 진단서 문제나 백선하 교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사인이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하고, 지병이 있었다는 거짓말, 가족이 연명 치료를 반대해서 돌아가시게 됐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가족이 너무 힘들어하셨고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튀어 나왔습니다.

중간에 빨간 우의도 있었잖아요. 부검 영장에 빨간 우의가 사망원인일 수 있으니 부검이 필요하다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 영장에 기재되어 있어서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 영상도 재편집하고 뉴스타파와 같이 연구해 가며 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걸 밝히고 나니 물대포만 남게 된 거지요. 아직은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걸 밝히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고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 6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옛 망월묘역)에서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故)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하관식'이 열린 가운데 유족이 성수를 뿌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사망 진단서는 안 달라졌죠?

“네 그대로지요. 그것과 관련해서는 가족과 투쟁본부가 백 교수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입장이에요. 백 교수가 사망원인을 병사로 한 것에 대해서 의과대 학생이나 현직 의사들, 법조인, 서울대병원에서 만든 특별위원회조차도 아니라고 밝혔잖아요. 실제로 주장이 무력화되긴 했지만, 병사로 기록된 사망진단서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투쟁본부나 가족은 백 교수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생각해서 법적 대응을 포함해서 어떻게든 반드시 책임지게 할 겁니다.”

- 영결식 사회를 보셨잖아요. 기분이 어떠셨어요?

“영결식 사회 볼 생각이 없었는데 많은 분이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셔서 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저는 장례식장에 40일 동안 있으면서 조문도 제대로 못 했어요.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빈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마지막 날 제대로 조문했습니다.

장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투쟁본부 안에 약간의 이견이 있었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맞냐’는 의견도 있었고 ‘조금만 더 우리가 노력하면 책임자 처벌이나 진상규명의 실질적인 걸 얻을 수 있는데 5일 장례식 하는 게 맞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의견이 ‘진상규명 문제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것이 되어버렸고 책임자 처벌은 국회 특검에 맡기자’는 것이 있었어요. 유가족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도 있고 ‘이만큼 백남기 회장이 싸워주셨으면 이제 우리가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으로 장례가 결정된 겁니다.

광화문 영결식 하는 내내 거기 모이신 많은 분에게 ‘장례가 끝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백남기 회장님 고이 보내드리고 남은 과제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합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살인 정권 퇴진하라’는 호소를 드린 거고 가족들도 마지막 인사에서 ‘그동안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이제 가족들이 나서겠다’고 한 겁니다.” 

-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이렇게 온 것도 모금도 기적이에요. 어려울 때마다 많은 분이 모금해 주셨어요. 개인들이 내주신 것도 단체들이 함께 모아준 후원금으로 병원비와 장례식장 비용을 냈고 일차적으로 거기까지 처리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 손해배상청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재판을 통해 반드시 받아낼 것이지만 가족들이 병원비나 장례식장비 때문에 고통받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원금으로 우선 병원비와 장례식장 비용을 처리했어요.”

▲ <사진출처=손영준 백남기 투쟁본부 집행위원장 제공>

- 오랫동안 가족들을 지켜보며 느끼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가족과 거의 같이 생활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가족에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거의 1년 동안 가족들이 정말 고통스러웠잖아요. 우선은 공권력에 의해 국민이 죽음으로 내몰린 상황인데도 사과는 물론 처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 상황 자체가 그랬죠.

가족들은 백남기 회장님이 회생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17일 동안 중환자실에 회장님 모셔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 거잖아요. 그것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돌아가시자마자 갑자기 가해자인 경찰이 부검해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까지 358일 동안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가족들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가족들의 요구는 ‘이런 억울한 일은 우리에게서 끝나야 한다,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고 투쟁본부와 같이해 오신 거예요.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자주 하신 말씀이 있는데 삼국지에 보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이걸 빗대서 ‘죽은 백남기가 산 박근혜를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는 말씀을 계속하셨어요. 또 하나는 사모님이 ‘평생을 살면서 저 양반이(백남기 회장) 하시려고 하는 일에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에는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다.’는 얘기를 웃으시면서 편안하게 하시더라고요. 백남기 회장님의 삶도 대단하지만 이런 훌륭한 사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백남기 회장님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박근혜 퇴진 정국 만드는데 불쏘시개 역할 충분히 한 것”

- 지난달 25일 영장기한이 만료되고 경찰이 재청구할 것이란 추측이 많았어요, 하지만 28일 밤늦게 재청구를 안 한다는 결정이 났어요. 그때 심정이 궁금해요.

“저는 그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마음은 복잡했어요. 10월 28일 경찰이 영장 재청구를 포기했잖아요. 24일 JTBC에서 최순실 보도가 나오면서 국민적 공분이 엄청났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도 본격화되었죠. 이런 상황에 재청구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또 부검 영장이 1차는 기각됐잖아요. 2차도 사상 유례없는 조건부 영장이었잖아요. 그것도 집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아무리 영장을 재청구해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죠. 설사 재청구가 된다 해도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다시 부검 영장을 발부하거나 집행을 시도한다면 그것으로 대형 시국사건이 되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장청구가 되든 안 되든 이건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재청구가 포기되니까 가족은 장례를 치르자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고 투쟁본부 내부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가 아니라는 약간의 이견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한마음으로 만들어낼까 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잘 마무리된 겁니다.

야3당이 백남기 특검을 약속했기 때문에 국회에 공을 던져놓고 우리가 챙기자는 명분으로 장례를 결정했고 이제 우리 모두 백남기가 돼서 남은 일을 해 나가자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11월 1일 장례가 결정됐고 남은 날이 4일뿐이었어요. 그 4일 동안 장례를 허투루 준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거의 밤을 샜죠. 함께 해 주신 그분들의 노력으로 무사히 장례가 치러진 겁니다.”

- 12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있었잖아요. 1년 전 생각도 났을 것 같은데.

“온갖 생각이 다 나더라고요. 회장님께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눈에는 백만의 백남기가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거 꼭 회장님이 보셔야 하는데란 아쉬움이 있었죠. 저희가 장례를 치르면서 얘기했던 ‘우리가 백남기가 되어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자. 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지금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으로 국가 폭력 사건도 해결하고 세월호, 사드, 노동개악, 쌀값 보장, 위안부, 국정교과서 문제도 해결해야 하므로 지금은 박근혜 퇴진 투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 고 했던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라고 생각했어요. 박근혜 퇴진 정국을 만드는데 백남기 회장님이 불쏘시개 역할을 충분히 하신 겁니다. 거기에 부응하여 백만 명의 백남기가 이 자리에 모인 겁니다. 덕분에 저도 마음이 좀 편해졌죠.”

▲ 서울대병원은 고(故)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를 신경외과 과장직에서 16일 보직 해임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제공=뉴시스>

- 앞으로 과제는 무엇이 있나요.

“해결할 일이 많죠. 내용적으로는 대부분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해결된 게 없어요. 우선 책임자처벌이 안 됐죠. 가족들과 투쟁본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권력이 시민을 희생시키고도 파렴치하게 사과, 책임, 처벌이 없는 걸 되풀이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제대로 되려면 반드시 책임자가 처벌돼야 합니다. 지금 검찰이 할 수 없다면 국회가 나서서 특검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가족과 투쟁본부는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또한, 주된 책임자는 경찰이지만 백선하 교수도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경찰이 패악한 짓을 했듯 백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백 교수 책임도 묻겠다는 것도 남은 과제입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수십 수백만 명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기록으로 잘 남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1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런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겁니다.

또한, 제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백남기 회장님의 삶과 뜻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예요. 특히 가톨릭 농민회는 회원으로 30년을 활동 하셨지만 저와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백남기 회장님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가톨릭농민회는 더욱 백남기 회장님의 삶과 뜻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가 큰 숙제죠. ‘백남기 농민의 삶과 정신’은 가톨릭농민회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도 앞으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