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에서 온 편지]
-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구의역 쪽글 모음집) 출간에 부쳐

나는 구의역입니다. 
기억하실는지요, 
지난 봄 2호선 구의역.
한 번만 궤도에서 이탈하면 서울 밖으로 벗어나고 마는
빙빙 도는 순환선 어디쯤 
당신의 안전문은 안전하신지요. 

나는 유리문입니다. 
다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그 봄날 오후에 승강장 께에서 잠깐 만났더랬지요.  
스크린도어,
영화를 보는 문이 아닌 건 아실 겁니다. 
당신이 내 유리 얼굴에 쪽지를 붙여놓고 갔던 
그 사람이 맞는지 가물가물하기는 합니다. 

나는 스무 살입니다. 
열아홉 살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 드리는데
나는 승강장에서 승강장으로 넘어갈 수 없는 역입니다. 
나는 나와 만날 수 없습니다. 
내 열아홉 스무 살 봄이
아직 내게로 온 적이 없듯이 말이지요.
그 5월도 비정규직이라서 임시로 머물다 가버렸을 따름이고요. 

나는 기억입니다. 
당신은 한 번 전동차에 오르면 나를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잊을 방도가 없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나는 닫힌 문으로 여기 서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그날 구의역입니다. 

*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스무 살의 봄, 구의역에서 쓰러진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

지난 봄 5월28일 저녁부터 구의역 유리벽에 여러 사람들이 써붙인 쪽글을 묶은 책이 나왔다. 페이스북  페이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운영진이 펴냈다. 출판사 이름 또한 ‘스무살의 봄’이다. 편집자가 그 봄밤에 쓴 ‘스크린도어 사이에서 -19살 지하철 안전문 노동자의 죽음에’라는 시를 책 앞 부분에 넣어서 묶어 주었다. 
그 아픔을 반복하지 않게끔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를 함께 읽고 새겨서 비정규직 현실을 고쳐나갈 수 있기를 빌면서 <구의역에서 온 편지>를 부친다. 
어른인 자로서 염치없게도 비굴하도록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