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없는 봄날]

연분홍 치맛자락을 입지 못해
봄날은 가지 못한다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연분홍 치마
찔레꽃 꺾어가면서 이별해보지 못해
봄날은 오도가도 못한다
탱자가시 울타리에 걸려 있는
녹슨 함석지붕 밑 봄날은 
감꽃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가지 못한다
감꽃이 시들어도 갈 수야 있지만
옷고름 붉은 댕기 씹어 물어 혀끝으로 맛보지 못하는 한
봄날은 간다지만
아주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동백 춘백 입시울 붉도록
쓰디쓴 노래 없이는 
조선 봄날은 가더라도 가지 못한다

* 우리네에게도 노래가 있었다. 연분홍 치마도 있었다. 찔레꽃 감꽃 동백 춘백 붉다지만 그대 노래 만큼 봄밤을 깊게 울린 건 일찍이 아무 것도 없었다. 노래가 없거든 봄이 온 것도 아니요, 가도 간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