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에서 "테러방지법안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테러에 대한 정의가 불투명하고 자의적일뿐더러 국정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면서도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손자병법의 병세편(兵勢篇)에는 상산의 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뱀은 누군가가 머리를 치면 꼬리로 반격하고, 꼬리를 치면 머리로 반격합니다. 손자는 군사조직이 바로 이와 같이 유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슬람국가(IS)를 보면 마치 손자의 병법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방이 이라크나 시리아의 테러 본거지로 의심되는 어느 한 곳을 치면 다른 쪽에서 보복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숱한 공습이 소용이 없고 설령 지상군을 파병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샤히드(Shahid·순교자)를 제거하고 나면 또 다른 샤히드가 생겨나는 현상에 대해 문정인 교수님께서는 ‘중앙시평’에서 “그러한 방법(공습)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다. IS와 알카에다를 물리적으로 섬멸한다고 해서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리적 보복을 가할수록 이들에 대한 동조 세력은 더 늘어난다. 샤히드를 제거하면 또 다른 샤히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는 게 이슬람 세계의 내재적 동학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서구의 사상은 완전한 형태를 갖춘 적의 군대를 상정하고 그 '중심(gravity)'을 타격하는 전쟁의 이미지에 몹시 집착합니다. 그 영향을 받은 한국군의 경우도 작전계획이 오와 열을 맞춰 통제선을 따라 진격하면서 적의 중심을 차례로 격파하는 질서정연한 이미지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전통적, 고전적 사고방식으로 전쟁을 ‘계획대로’ 수행한다고 믿는 서구의 사상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수백분의 일에 불과한 적 앞에서도 쩔쩔매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예쁘게 꾸미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고, 정확한 용어로 브리핑 잘 하는 군인이 엘리트가 되었지만, 막상 형체가 없는 실제 전쟁에서는 무능해지는 것입니다. 계획에 없고, 교범에 없으니까요. 배운 대로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이제는 전쟁을 현대적으로 이해할 때가 되었습니다. 산업시대에 근육과 기계에 의한 질서정연한 전쟁 따위는 이제 없습니다. 지금은 정보와 네트워크, 문화가 말하는 시대입니다. 군과 경찰을 투입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고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정상적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과거 미국의 네오콘식 사고방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테러를 막기 위해 테러방지법에 집착하는 것도 만능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는 정치와 군사를 아울러 통찰한 손자의 사상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2천년 전의 손자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통찰력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입니다.